권천학의 수필방

승희들아 나와라-우리도 로라스탠리처럼

천마리학 2007. 9. 7. 11:42

  

 

<버지니아 공대의 총격사건>

          


  
              승희들아 나오너라

                        -우리도 로라 스탠리처럼.

 

 

 

 

그날, 4월 16일 나는 프론트 스트리트를 걷고 있었다. 길가에 서 있는 신문 좌판대에 꽃힌 신문에서 커다란 얼굴 사진을 보았다. 'The Face of Death(죽음의 얼굴)'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인물사진이 붙어있었는데 얼핏 보기에 동양인 얼굴이었다. 또 누가 죽었나보다. 일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서 날마다 뉴스를 채우는 사건사고들 중 '죽음의 얼굴'이란 제목을 단 저 사건은 또 누구의 어떤 죽음일까 잠시 스치는 생각이었다. 

저녁에 TV 뉴스에서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총격으로 자살한 범인을 포함하여 33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범인이 한국계 이민 1.5세대인 조승희(23)라는 것이었다. 낮에 프론트 스트리트의 신문 좌판대에 꽂힌 신문에서 본 바로 그 얼굴이었다. 경악이었다.

 

연일 들끓었다. 미국과 한국이 들끓고 교포사회가 들끓었다. 사건 후 노대통령의 사과문이 발표되었고 조승희가 만들었다는 10분 분량의 동영상과 43장의 사진, 1,800단어의 선언문, 그가 쓴 씨나리오를 비롯해서 사생활이 속속 들춰지고, 국가 간의 감정문제와 총기규제까지 거론되었다. 따라서 이민청소년들의 문제가 제기 되었다.

 

 

 


이민청소년들의 문제는 단지 미국뿐만이 아니라 이곳 캐나다에서도 교포사회의 문제 초점이 되고 있다. 이민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이나 아직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적 문화와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 가정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이민 1세나 1.5세들은 사고의 차이, 부족한 언어실력, 자식에 대한 기대만으로 나머지 인생을 걸고 한국을 떠나온 부모의 기대, 인종차별, 미국사회에서의 성공해야한다는 압박감, 자신의 욕구 등 커다란 중압감에 쩌눌리고 있다. 미국인으로 뿌리 내리지도 못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각도 확실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바나나'라고 놀림 받는 그들은 결국 집안의 단절과 집밖의 현실 사이에서 혼란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소외감, 박탈감, 패배감에 빠지기 쉽고 결국은 우울증에 빠지거나 외톨이가 되어 정신적 방황을 겪게 된다.

 

몸담고 있는 미국사회에 다가가려해도 여러 가지의 장애가 도사리고 있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와도 역시 물에 기름 돌 듯 외톨이가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소외되면서 철저한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다. 결국 마약이나 인터넷 게임이나 폭행 등 사회적 범죄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만다.

잘 살아보겠다고 기를 쓰고 찾아온 미국에서의 길은 이처럼 멀고 험하다.


이번에 총격사건을 일으키고 자신도 죽음으로 마감한 조승희도 차별과 소외로부터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있었다. 문제는 조승희학생과 같은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승희들이 있을 것인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해 6~11월에 미국조기유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113명의 응답자 중 44.8%가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를 44.8%가 현지학교의 가장 나쁜 점으로 꼽았다고 한다. 사회의 나쁜 점으로는 '이웃 무관심과 가족 이기주의'를 34.6%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보아도 유학생 청소년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잖아도 친구가 필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이런 고통을 혼자 겪으며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속에서 친구조차 사귈 수 없는 그들은 정신적으로 병을 앓기 마련이다. 그 병은 여러 가지 이상증후를 보이다가 가족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홀로 깊어지다가 결국은 사고를 치는 것이다. 그들이 모두 조승희들이다.

조승희 역시 범죄 이전부터 각종 이상증후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거나 알아도 방치했다. 인터넷게임에 몰입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기환상이나 망상에 빠져들며 정서적인 감정이 매말라버리고 범죄를 모방하기에 이른다.

 

 

 

           영스트리트에 있는  <Tom Otterness 의   Immigrant Family>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지금도 보이지 않게 속앓이를 하는 더 많은 조승희들을 밝은 곳으로 불러내야한다. 승희들을 불러내는 일은 아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로라 스탠리의 생각처럼 어깨만 한번 툭 처주어도, 안녕! 하고 빙긋 웃어만 주어도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로라 스탠리는 버지니아 대학의 경영학과 3학년 학생이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며칠 후 사건의 현장인 버지니아 대학의 노리스 홀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회에 참석했다. 추모석에 마련된 조승희의 사진을 보고 '아, 교정에서 몇 번인가 마주쳤던 그 말없던 아이구나'하고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때 승희에세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야, 밥 먹으러 가자'하고 말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못 한 게 안타깝다고 말하는 로라 스탠리는 '앞으로 학교에서 말없는 외톨이를 만나면 입을 열 때까지 말을 걸어 친구로 만들겠습니다.' 하며 눈시울을 적시며 조승희의 추모석 앞에 꽃과 편지를 놓았다.

 

우리는 앞으로 승희들을 불러내는데 보다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 또한 우리의 소중한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승희들을 불러내는 일은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따뜻한 가슴으로, 진정어린 말 한 마디로, 따뜻한 체온의 악수로, 손톱만한 관심으로부터. 로라 스탠리처럼.


<2007년 4월 40일토론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