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88세, 왕할아버지의 춤

천마리학 2007. 9. 2. 13:49

 

 

 

 

                  88세,왕할아버지의 춤

 


딸아이와 함께 6개월 된 손자 '아리'를 데리고 부모님 댁을 방문한 날은 621. 이미 장마가 시작되어 여름의 첫 들머리가 후텁지근할 때였다.

부모님을 다시 뵙는 것이 작년 1123, 토론토로 출국하기 전에 뵈었으니까 딱 일곱 달만의 일이다.

 

그때 출산을 앞둔 딸을 보살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늙으신 부모님 때문이었다. 물론 한집에 모시고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가까이 살면서 자주 찾아가곤 했는데 캐나다로 떠나면 입국할 때까지는 뵈올 수가 없는 일이다. 말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내심 혹시 그 사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하는 그야말로 하기 싫은 생각이 스치기도 해서 일부러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도 했다.


늙으신 부모님과 출산을 앞둔 딸.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 곁에서 함께 하고 싶음에도 나는 딸의 출산을 도우러 떠나면서 한쪽 어깨가 내려앉는듯한 기분이었다.

외국에서 혼자 첫아기를 출산하는 딸이 더 걱정이 되었던가. 이런 것이 내리사랑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1221일 '아리'는 태어났다.

외할머니, 나는 드디어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6개월 후, 마침 딸아이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개최하는 한국학 워크샵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기회에 함께 귀국했다.

입국한 다음 날 부모님 댁을 방문한 것이다.


그동안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지만 그래도 막상 뵙게 되니 후~ 나도 모르게 뜻 모를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기분, 죄스러운 마음을 씻는 기분, 늙으신 모습에 가슴이 알싸한 기분이 다 포함되어있었다


'아리'는 나에게 외손자이므로 나의 아버지에겐 외손이긴 하나 4대 증손자, 그러니까 '아리'에겐 증조할아버지이시다. 나와 동항인 동생들이나 사촌들 모두가 '아리'에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 '아리'에겐 할아버지 할머니 천지다. 그래서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의 호칭은 '왕할아버지' '왕할머니'이시다.


 

 

 

왕할아버지께서는 '아리'를 받아 안으시자마자 찬찬히 뜯어보셨다. 나는 아버지가 행여 넘어지실까봐 어정쩡 곁에 다가섰다. '아리'를 살펴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저 반갑고 어여뻐서 보시는 거야 당연하지만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예리하게 살펴보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 아버지는 말씀이 적으시다. 과묵하신 대신 세상일이나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 옳바르시고, 늘 정확하게 짚어내시는 남다름을 나는 잘 안다. 혜안이 있으시다. 비록 연세는 높으시지만 아니, 오랜 경륜의 높은 연세가 빚어내는 특별한 능력이시리라.

 

요리조리 살펴보시더니 번쩍 안아 올리셨다.

", 고놈 모습이 참 좋구나. 네가 에메네게어 김 아리냐?"

그러나 '아리'는 아직도 뜨악한 표정으로 왕할아버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잘 길러라. 요놈이 커서 한국을 대표하는 큰 인물이 되겠구나"

그 말씀이 어찌나 진지하신지 예언처럼 들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 예언은 꼭 적중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 세계적인 인물은 아니구요?"

딸아이가 기분 좋아 되물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면 곧 세계적인 인물이지"

", 그러네요.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선 설명을 덧붙이셨다.

"봐라, 얼굴이 어디 한 군데 빠진데 없고 체격도 양동 갖으며 귀태가 흐르는구나"


오랜만의 만남으로 살갑게 반가운 시간.

왕할아버지와 왕할머니는 번갈아가며 '아리'를 안고 얼르신다.

"네가 캐나다로 떠날 때 내가 다시 너를 볼 수 있겠나 했는데 이렇게 '아리'까지 만나게 되다니. 정말 좋구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셨다.

"그러셨어요 아버지? 못 보긴 왜 못 봐요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세요? 앞으로도 오래 오래 함께 계실 건데요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부러 건성을 가장하여 말하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주검을 염두에 두신 아버지의 심정을 무능하고 무력하고 자식이 어찌 헤아릴까? 가슴 밑바닥에 묵직한 쇳덩이가 얹힌다.

 

그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며 과일을 깎고 차를 준비하다가 어느 한 순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숨이 멎듯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가 춤을 추고 계셨다.

'아리'를 내려다보며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춤을 추시는 아버지. 딸아이가 소파에 앉아 '아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고, '아리'는 제 어미의 무릎에 앉아서 왕할아버지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방글방글 함박웃음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서툴게 산토끼 곡조로 '아리야~ 아리야~'를 읊으시며  허리를 좌우로 굽히고 무릎까지 굴신해가며 두 팔을 연신 둥글게 만들어가며 춤사위를 지으시는 아버지.

87세의 왕할아버지가 6개월 된 증손자 앞에서 추는 춤.

감격,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울컥, 숨이 멎는 듯 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단 한 번도 나의 아버지가 춤을 추시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워낙 과묵하시기도 하고, 속수줍음이 많으셔서 놀이나 흥에는 어색해하신 분이시다. 그저 웃고 즐기실 뿐. 젊으셨을 때 친구들의 계모임이나 연회의 자리에서도 노래 한 소절, 어깨춤 한번 추신 일이 없는 분이시다. 노래 청을 받을 때마다  쑥스러워하시며 거절하셨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나 어렸을 적 언젠가? 아마 할머니의 회갑연이었을 것이다. 잔치 분위기가 무르녹아서 흥에 겨운 아버지의 친구들이 아버지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겨 춤을 추게 하자 마지못해 끌려서 두어 번 팔을 올렸다가 내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허수아비 모양이었다. 보는 사람이 어색할 정도였다.

 

그런 나의 아버지가 저렇게 휘청휘청 춤을 추시다니. 몸놀림이 날렵하지 못하고 동작이 단순하지만 여섯 달 된 증손자 앞에서 구부정 추시는 왕할아버지의 저 춤.

세상에 저보다 더 이상 아름다운 춤이 있을까?

세상에서 저렇게 행복한 춤이 있을까?

춤을 추시면서 얼굴 가득 표정 가득 기쁨을 담으시는 아버지.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제 곁에, 저희들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으로 저희들 곁에 계셔주십시오 아버지.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부르짖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나의 눈에선 눈자위가 아프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2007년 9월 1일 토론토에서>

 

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