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눈과 정전으로 상징되는...오르한 파묵의 <눈>을 읽고

천마리학 2007. 9. 6. 11:08
 
 


눈과 정전으로 상징되는 혼란기의 삶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을 읽고

              원제;KAR/2006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이난아 옮김/ 민음사 발행



한때 꽤 알려졌지만 절필상태의 세월을 보내던 한 시인이 슬럼프에서 헤어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서 드디어 영감을 얻어 시를 쓰게 되고, 결국은 암살당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그 시인의 친구인 오르한 파묵이 친구의 유고집을 내기위하여 그의 궤적을 찾아가는 형식의 소설이다.


이스탄불의 시인인 케림 갈라쿠쉬 오울루는 학생시절부터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첫 글자를 따서 그냥 카(KAR)로 사용해왔다. 그가 정치적 이유로 프랑크푸르트로 12년간 망명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이스탄불로 돌아온 후 그동안 절필상태였던 시작(詩作)의 영감을 얻기 위하여 줌 후리엣 신문사의 기자인 친구의 주선으로 카루스에서 자주 일어나는 소녀들의 자살사건과 시장 선거를 취재한다는 명분으로 줌 후리엣 신문사의 기자자격으로 고향인 작은 도시 카루스를 방문하게 된다

그 당시 카루스에서는 서구화의 물결로 인한 정치적 종교적 대립으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다. 학교에서는 이슬람의 상징인 '히잡'을 쓰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자살하는 소녀들의 자살사건 뒤에는 정치적 종교적 음모와 대립이 얽혀있다.

시장선거에서도 종교적 갈등 때문에 암투와 부정과 모략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카는 옛 대학친구인 무흐타르와 그의 이혼한 것을 알면서도 역시 대학 친구인 이펙을 사랑하게 되고, 이슬람교의 숨은 지도자인 라지베르트와도 연결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카루스의 국경도시신문사의 사장 세르다르씨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미리 써서 신문을 발행하게 되고, 거의 대개는 그 기사대로 현실이 맞아 들어가는 사실이 카루스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예를 들면 카 자신도 전혀 계획에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데 카가 밀렛극장의 연극공연에서 시를 낭송하게 된다는 기사가 발표된 것을 보고 카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부르짖지만 어찌어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면서 결국 극장에서 시낭송을 하게 된다.

또 문화계의 거물인 연극배우 수나이 자임이 자신의 연극공연에서 총에 맞아 죽을 거란 기사를 미리 쓰게 한 후 실제로 연극공연에서 카디페의 총을 맞고 죽게 된다.


카와 사랑을 나눈 이펙과 함께 프랑크프르트로 떠나서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무신론자였던 카는 이슬람교 동조자가 되어 정부 쪽의 감시를 받게 되고 결국은 추방당하게 된다. 이펙은 카가 결국 이중 첩자라는 의심을 하게 되고 그 불신으로 추방된 카를 따라 가지 않고, 혼자 프랑크 프르트에서 이펙을 기다리던 카는 암살당하는데 그가 카루스에서 동조했던 이슬람원리주의자의 총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슬람교의 숨은 지도자였던 라지베르트가 정부측으로부터 사살되자 이슬람교인들은 라지베르트의 은신처를 카가 정부 측에 밀고한 것으로 단정, 그를 정부 쪽의 이중첩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2권으로 된 <>을 읽는 동안 수시로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렸다. 일제치하의 36, 6,25전쟁과 그 후의 가난과 정치적 불안정기,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대중대통령 시기까지의 민주주의가 어렵사리 뿌리내리기 위하여 몸살을 앓던 시절..... 과연 지금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렸는가 하는 것까지 돌아봐지면서......

<>은 서양문화와의 충돌, 그로 인한 종교 간의 충돌, 그 속에 죄충우돌로 밀려가는 대중들의 모습을 그린 터키의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눈은 가난과 침묵과 길의 상징이었다.

눈이 민중들의 가난과 고달픈 삶을 덮어주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다. 또 억압과 감시로부터 입을 다물게 하는 침묵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많은 눈이 내려 눈 속에 갇혀있는 작은 도시 카루스가 눈이 멎으면 이스탄불로 혹은 다른 도시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카루스는 거의 매일 눈이 내린고 수시로 정전이 된다. 눈과 정전이 시민들의 가난하고 불안전한 삶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준다.


우리와는 정서가 다른 탓인지 아니면 번역 탓인지는 몰라도 읽어나가면서 어딘가 서걱이는 부분이 많았다. 번역가들이 흔히 주장하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라는 말에 전혀 부합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소설로선 매우 매끄럽지 못한 문장과 구성이었다.

이런 작품이, 혹은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하고 생각하다가 소설의 문장이나 짜임새 등 문학적인 면 보다는 그 소설에 담긴 묵직한 주제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하는구나 하는 짐작을 하게 했다.

나 역시 읽는 동안 좀 불편한 구석은 있었어도 사랑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 보다는 훨씬 생각하며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었고, 미리 예언한 기사가 맞아 들어가도록 현실을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고, 후반부의 극적인 전개가 돋보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특별한 주관이나 강인함이 없이 쉽게 물결을 타다가 결국은 이중첩자가 되고 마는 시인의 나약한 모습에서,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는 시인들의 단상을 소설 속 시인에게서도 보는 씁쓸함도 느꼈다.^*^. 하긴 시인은 사람 아닌가?    


(2007년 8월 10일 토론토에서/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