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가요반세기를 시청한 기분-공지영의 소설들

천마리학 2007. 6. 2. 14:22
 

               

                            '가요 반세기'를 시청한 기분


      공지영 읽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 <봉순이 언니> <착한 여자>를 읽고



얼마 전 나는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난 후 이어서 <인간에 대한 예의> <봉순이 언니> 그리고 지금 <착한 여자> 상 하의 읽기를 마쳤다.

이처럼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공지영 읽기를 계속한 것은 공지영이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한 작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내가 한국을 떠나올 무렵에 공지영의 소설을 영화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인기를 끌면서 이미 출간된 소설도 베스트 셀러를 장식하고 있다는 보도를 들었고 최근에 한 신문의 신문기사에서 '한국사회와 문화예술의 미래'라는 타이틀의 심포지움에서 공지영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는 보도도 보았다.

최근

그런 보도를 보면서 그동안 공지영에 대한 작품을 읽지 않은 나로선 공지영이라는 소설가가 그리고 그의 소설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토론토에 오자마자 공지영의 작품들을 골라잡았고 먼저 읽은 것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였다.


이미 독후감에서 밝힌 바 있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 나서 솔직히 말하면 실망했다. 너무나 대중소설적이었다.


그래도 한 작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식을 가지려면 여러 작품을 읽어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의 소설들을 읽은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사랑하는 당신께] [꿈] {인간에 대한 예의] [무엇을 할것인가] [무거운 가방] [절망을 건너는 법] [읽어버린 보석] [손님] [동트는 새벽]의 중단편을 엮은 것이고 <봉순이 언니>는 작가의 어린 시절에 작가를 돌봐 주었던 식모 '봉순이'에 대한 회상이었고 <착한 여자>는 정인이라는 고졸여성이 두 번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하고 각각의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를 기르면서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모두가 80년대나 90년대의 이야기들이고, 식모 또는 두 번씩 이혼하며 고통을 받는 삶이 고단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독후감에서 밝힌바 있지만, 매우 대중적이라는 느낌이다.

이 말은 전혀 새롭지도 않고 심각하지도 않고 솔직히 삶이나 일상에 자극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작품 자체가 쓰여진 지 오래된 것이라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그것과 다르다.

오래된 작품이라 해도 읽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작품들이 얼마든지 있고 우리는 그런 것을 원하고 또 그런 작품들이 좋은 작품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실삼아(?) 그의 최근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볼 요량이다. 만약 읽어서도 그런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는 최소한 나, 한 명의 독자에게는 지나간 이야기를 눈물샘을 적당히 자극하는 추억꺼리를 들려주는 소설가 정도로 인식 될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 때가 언제일진 모르지만 크게 변신하는 그를 보면서 많이 달라졌구나, 많이 성숙했구나 하는 반가움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이미 씌어진 기사에서 보면 출간될 때마다 그의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데 그 이유는 그의 소설이 매우 대중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학적이거나 교훈적이어서가 아니라 어렵게 산 사람들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감상적으로 풀어내어 현실에서 어려운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고나 할까......


공지영의 소설과 신경숙의 소설을 비교하자면 둘 다 쉽게 읽히는 것에서는 공통적이다. 감성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경숙은 개인의 추억을 개인의 감정과 감성이 닿은 수 있는 데까지 파고든다면 공지영은 추억을 다소 서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혹은 주변의 상황을 빗대어놓는다.

공지영의 작품들마다 80년대의 사회상을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민주화운동을 하거나 적으나마 관련 있는 사람들이 많다. <착한 여자>의 미송, 명수, 연주, 남호영이 그렇고,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도 편편 마다 민주화운동이나 그 시대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운동에 적극 가담하거나 주동적이거나 하지 못하고 그저 소설의 백그라운드로 그런 이야기들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어쨌거나 신경숙의 글이 감성적이라면 공지영의 글은 서사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지영은 불평등이나 편견 등으로 주눅 들어 사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 있어서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봉순이 언니>에서는 80년대까지 흔히 있었던 '식모'를 이야기 했고, <착한 여자>에서는 오정인이라는 고졸여성을 통하여 흔히 거론되고 있는 착한 여자 신드롬으로 교육되어지고 길러지는 그러면서 편견에 희생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충분히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게 무슨 이익이 있단 말인가?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있었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다.


더러 세간에 공지영을 2000년대의 한국 장편소설의 마지노선이라든가(?) 하는 말로 평가가 설왕설래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노~라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어쩌면 그것은 이 시대 우리의 소설의 수준을 말해주는 한 징표라고 한다면 모를까. 그렇게 평가하는 것 자체도 평가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과는 달리 대두되고 있는 평가, 공지영의 소설이 미성숙의 수준이라든가 대중적이라든가 하는 부정적 시각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시작으로 하여 일련의 책들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하여 지금은 별로 관심이 없는 흘러간 옛이야기를 시간 떼우기로 들은 기분이다. 만약 내가 담배 피우는 남자라면 그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담배한 대 피운 기분이다 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아니, 맞다. 이글을 쓰면서 떠오른 건데 마치 TV에서 흘러간 가수를 불러내어 흘러간 노래를 들려주는 "가요 반세기(?)'시간을 시청한 기분이다.

흘러간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그때를 생각하자' 뭐 이런 것과는 다른.

정리하자면 비 오고 꿀꿀한 날 부침개 부쳐 먹으며 가요 반세기를 들은 기분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무료함을 달래려고 옛날 이야기를 꺼내어 시간을 죽인 기분이랄까....... 그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건이나 힘들었던 상처는 지금은 벗어났으므로 별 소득도 별 피해도 없는 이야기이고, 단지 독서를 했다는 의미만을 줄 뿐이다.

 

공지영, 그에게 한 마디 한다면,

앞으로 전진하는 글을 써라.

이제 자신의 체험에서 벗어난 글에 도전하라.

  


<2007년 5월 31일 토론토에서><19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