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천마리학 2007. 6. 19. 10:40

 

 

 

 인간이 되고자 하는 똑똑한 여성의 절규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고

 

 


 

 

나는 오늘 똑똑한 여성이 되고자하는 똑똑한 소설을 읽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일들로부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는다.

상처, 다반사 아닐까?

그 다반사인 상처가 때로 어떤 사람에겐 보다 크게 영향을 미쳐서 사는 일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기도 한다.

왜 그럴까?

가장 간단한 대답으로는 특별히 예민해서? 혹은 운이 나빠서? 아니면 배부르고 등 따수워서? 그도 아니면 운명적으로?


남성과 여성, 두 가지의 성으로 나뉘어져있는 이 세상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기득권적 권력에 여성이 빌붙어 산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오래 전, 아주 오래전, 인간이 생겼을 때 그냥 한 가지 종류로 이루어졌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왜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이 권력구조로 유지되는가?

사이좋은 공존은 과연 불가능할까?

참 부질없는 질문이고 부질없는 생각들이라고, 그야말로 배부르고 등 따수우니까 영양가 없는 별 생각을 다 한다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이 가득 들어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태연하게, 태연한 척 살고 있다.

 

하여튼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으면서 나는 저절로 정신분석을 받은 셈이 되었다. 두 주인공 중의 하나인 박세진을 따라서.

여성 건축설계사로 잘 나가는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인 박세진은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무엇인가로부터 �기고 시달림을 받는 정신적 병을 앓는다. 그 병으로 인하여 사는 일이 팍팍하다. 그래서 풍수, 법사, 무당, 스님...등을 거쳐 정신분석을 받는다.

위의 질문들을 풀어내기 위하여.


또 한 사람의 주인공 한인혜 또한 30대 중반의 광고 카피라이터, 두 사람은 오랜 친구이다. 한인혜 역시 한번 이혼을 하고나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나름대로의 인식전환을 하게 되고,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연애만을 즐기며 여러 남자를 섭렵한다.

연애나 사랑에 있어서 흔히 남자들이 주체가 되어 여자를 차거나 버리거나 하는 현실을 뒤 바꿔, 남자를 버리는 쪽이 인혜이다. 인혜는 이혼 후에 사랑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고 현실적인 정의를 내리게 되고 그에 따라서 남자를 일정 수준까지 사귀기만 할뿐, 더 이상 지속하지 않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섹스 파트너일 뿐, 결혼으로 이을 생각을 하지 않는 말하자면 사랑불능이다.

 

세진이나 인혜, 두 사람 다 우리 사회에선 인텔리 여성이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생활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늘 결핍에 시달리면서 뭔가 사는 일이 허방 같이 느낀다. 사회라는 호수에 여성이라는 물고기로 헤엄치면서 남성이라는 물고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단하다.

이 소설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존재는 권력구조로 나뉘고 있다. 남성이 권력을 쥐고있는 사회에서 여성은 권력을 누리기 위하여 집권자인 남성의 권력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분석 한다.

   

세진과 인혜, 두 사람이 서로 매우 다른 유형같이 그려지고 있지만 결국은 같은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셈이고 다 같이 권력집단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다. 두 사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들, 특히 자아를 가지고 독립적, 주체적, 또는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런 정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독 두 사람만이 그럴까? 등 따숩고 배불러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읽는 내내 모든 여성을 크게 나누면 모두가 벗어나지 않고 두 사람 중의 어느 한쪽에 속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거의 단정이나 다름이 없다.

  

나 자신은 세진 쪽이다.

소설을 읽어갈수록 나는 철저하게 세진과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세진이 나를 닮아있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세진의 자잘한 습관, 예를 들면 자신의 일로는 전화를 하지 않는 버릇이나 그 나이에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와 어렸을 때의 일로 밤늦게까지 다툰다든지..... 거의 모두가 흡사했다. 이 작가가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맞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그런 사람들이 참 많은가 보구나하고 끄덕여졌다.


다만 내가 세진의 세대보다 조금 앞선 세대라는 것뿐, 나이가 이십년쯤 많다는 점을 미루어서 그리고 지금의 내 경험을 비교해가면서 읽어졌다.

읽으면서 가끔씩 세진에게

"별 걸 가지고 다 정신분석까지 하고 난리를 치냐?" 하면서.

"사노라면 터득이 되는 일들이다. 알겠니? 세진아" 하고 안쓰러워하면서.

하여튼,

얼마 전까지 나도 세진이처럼 그랬으니까. 이 나이쯤 되니까, '이 나이쯤'이라고 말 한 '이 나이쯤'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이 나이쯤 되도록 사니까 한 가지씩 터득이 되었고, 터득이 되니까 한 가지씩 매듭이 저절로 풀려나갔다. 어머니의 입장을 수용하게 되고 또 팔십 노인인 어머니의 나이를 수용하게 되고..... 다 삭았다고는 못하겠지만 어떤 면으로는 오히려 어머니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어머니의 켜켜이 쌓인 속 얘기를 듣느라고 밤을 새우기도 한다.

이 나이쯤 되어서 터득이 될 때까지는 내게도 상처였다. 그렇게 보면 세진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용감하다. 아직 어린 30대 중반이니까.^*^


세진이가 그런 과정을 계속 겪어나가는 것은 소설을 위한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내 체험에 의하면 굳이 정신분석을 받지 않아도 사노라면 스스로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고 그 경지에 이르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삶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져서 과거의 맺힌 부분을 스스로 끄집어내어 매듭을 풀게 되는 것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경지'라는 말을 '나이'로 바꿔 써도 좋다. 아니 바꿔 쓰는 게 더 적당하다. 왜냐하면 나는 잘난 사람이 못되기 때문이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자.

세진의 아니 모든 사람들의 특히 여성으로 길러질 수밖에 없는 우리시대의 모든 여성들의 정신앓이는 어렸을 적의 환경이나 체험으로 인한 깊고 깊은 상처들이다. 억압된 과거, 과거 속의 과거, 더 먼 과거로부터 원인이 있고 이유가 있고...... 무의식의 세계에 갈앉아있는 그 모든 것들이 완벽주의자이고 착한여자이고 능력 있는 여자로 살고자하는 여성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결국은 마음의 상처가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일 뿐이고, 알게 모르게 형성된 무의식의 세계가 정신세계를 지배하면서 흐트러뜨리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바로 세우기 위하여 과거의 기억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치료법이 정신분석이다.


정신분석을 받는 과정이 자세하게 지루할 만큼 세밀하게 그려져서 읽는 동안 나 자신도 함께 정신분석을 받은 결과가 되었다.

 

라캉이 나오고, 융이 나오고, 심리학이 나오고, 남성중심의 사회와 그 권력에 편승하려는 여성의 심리, 페미니즘, 정신과 관련된 이론과 학문이 거론되는..... 등 말하자면 똑똑한 작가이며 똑똑한 소설이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어디 있느냐는 말로 부모의 사랑을 표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 때문에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생겨나고, 그 상처로 인하여 갈등하고 관계가 허물어져가고 인생이 소모, 또는 낭비되고 절망의 벼랑에 서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든 친구 사이의 사랑이든 간에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서로 알아야하고, 사랑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사랑하는 방법에 따라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사실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땅에서 딸로 태어나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딸이 여자가 되고, 여자가 다시 여성이 되고, 사랑을 만끽하는 여성이 되기까지 얼마나 고단해야 하는가.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세진과 수많은 인혜들이 가엾어진다.

결국 여성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여성이 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이다.


 <2007년 6월 13일 토론토에서> <2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