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박민규의 마지막 팬클럽-얄미운수다 새로운 기법의 소설

천마리학 2007. 4. 28. 05:27
 
 

얄미운 수다, 개그형식의 새로운 스타일


박민규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클럽>을 읽고.

 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처음에 제목을 보고 만화 제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기도 하거니와 내용도 그랬다. 애들이나 좋아하는 말하자면 애들 이야기같았다.

읽기시작하면서부터는 개그를 듣는 것 같았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후후후 하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으면서, 정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기는 처음이다. 물론 간혹 읽다가 잠깐씩 웃은 적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처럼 소리 내어서, 그리고 참을 수가 없어서 계속 웃기는 처음이다. 내가 그치질 않고 웃은 소리를 듣고 거실에 있던 하나와 페트릭이 무슨 일인가? 하고 쫒아오기까지 했다.

얄미울 정도로 수다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학교 가기가 싫었다.....'로 시작되는 겉표지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글에서부터 얄미웠다. 나는 이런 식의 작가 소개글 형식에 대해서 언뜻언뜻 실증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풀어쓰는 형식은 좋으나 '학교가기 싫었다'거나 '공부가 하기 싫었다'는 등 칭찬받지 못할 이야기들을 재미 섞어 써놓고는 그게 무슨 특별한 형식이나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행동 말하자면 학교가기 싫다거나 공부하기 싫었다거나 하는 행동들이 무슨 천재들이나 하는 것처럼, 특별한 개성이나 지닌 것처럼 은근히 내세우는 것도 속이 보였다. 유행처럼 따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박민규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뭘 못해'라고 모두를 방심시킨 후 정말이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라고 끝낸 소개글에서부터 얼마나 얄미운지, 그러면서도 그 속에 칼날을 드러내는 솔직함이 느껴졌다.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엔 만화를 활자로 본다는 생각을 했다.

글이 수다스럽고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고 쓰잘 데 없는 말들로 지면을 채워나가는 솜씨가 있다고도 여겨졌고 개그 같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그 수다 속에 은근이 비꼼이 들어있고, 자유분방한 젊음의 문화코드가 들어있고, 간지러운 데를 긁어주는 시원함도 있었다. 무게감이 없어서 신중하게 읽지 않아도 될 그저 맘 편하게 읽어나가도 될 것처럼 느껴져서 편했다. 그런데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개그 같기도 한 수다가 재미있어서 읽어나갔는데 읽어나가다 보니까 그 속에 감춰진 맛깔스런 해학이 들어있고 그냥 지나쳐버리기엔 좀 날카로운 비난이 들어있었다. 점점 빨려 들어갔다.


인천지역의 프로야구팀인 삼미슈퍼스타즈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야구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휩쓸리고 물들어야하는 자본주의의 경고가 들어있었다. 다 알면서도 부질없이 따라하는 우리들의 어눌하고 부질없는 삶을 꼬집는 젊은 세대의 솔직함도 있었다. 프로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피나는 경쟁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살아야하는 현실이 교직되어있다. 경쟁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벌여야하는 피 튀기는 경쟁,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에서의 허무한 성공, 보이지 않게 거대몸짓으로 개인을 말살하는 제도적 장치로 인하여 몰락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재치가 뭉클했다.


새로운 기법의 소설쓰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명멸하는 빛, 넘쳐나는 빛 가운데서 사라지는 빛, 어둠의 부피가 훨씬 크다.

잘 나가는 사람보다는 넘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세상엔 잘나가는 사람의 숫자보다는넘어지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공감도가 크고 많다.

성공만이 삶의 표본이 아니다. 그 무너짐 또한 삶이라는 것. 실패한 삶에서 더욱 귀중한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는 것을 웃기면서 들려준다.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서서 박수갈채와 함성으로 휩쌓이는 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너져가는 삼미슈퍼스타즈의 이야기로 풀어 낸 재치는 이미 재치가 아니라 촌철살인의 칼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야하는 것과 같다.

만화 같은 제목과 애들 이야기 같은 이야기가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무거운 주제를 만화처럼 가볍게 보이도록 했고 애들 이야기 같지만 마음 곳곳에 파편이 박히게 하는 이야기였다.


박민규는 분명 새로운 스타일의 이야기꾼이다.

'말로는 뭘 못해'라고 모두를 방심시킨 후, 정말이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는 그가 다시 터트리기 위하여 폭죽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그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된다.


<2007년 3월, 토론토에서><12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2003년 8월 5일 초판/한겨레 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