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시 [춘분,春分]에 얽힌 사연-목련이 아득하게 지고 있다!

천마리학 2021. 4. 27. 05:22

 

 

시 [춘분,春分]에 얽힌 사연 * 권 천 학

-목련이 아득하게 지고 있다!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사진 시인목사 박영봉님

 

 

뜻밖의 요청을 받았다. 춘분을 열흘 쯤 앞둔 어느 날이었다.

제일기획의 사내 웹콘텐츠 제작 담당자로부터 나의 시 [춘분(春分)]을 인트라넷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요청메일이었다. 녹스포탈에 게시하여 삼성 30만 임직원들의 아침시간을 유쾌한 마음으로 시작하도록 한다는 설명도 들어있었다.

시를 쓰면서 그 시가 날개를 달고 날아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굳이 덧 설명을 하지 않아도 시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시 [춘분(春分)]은 이미 오래 전에 발표했던 시(詩)로, 1994년에 초판, 1995년에 재판(再版)된 제4집 [고독바이러스]에 수록되어있는 작품이다.

 

살아있었구나!

살아서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있었구나!

잊고 있던 시의 안부를 들어 정말 기뻤다. 마치 타지(他地)에 자식을 떠나 보내놓고 소식이 끊긴 채 오래 동안 소식을 모르던 자식의 소식을 들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기꺼이 수락을 하면서, 다시 한 번 기억을 상기해보고 싶어서 옛 파일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퀘퀘하게 묵어있는 파일들 속에서 [춘분(春分)]을 찾아내었다.

다시 한 번 놀랐다.

시 [춘분]에 붙여서 적어놓은 관련 기록에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들이 들어있었다. 그 중에 단순히 망각으로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두 가지 내용이 솟아올랐다.

‘독도’와 ‘H선생님’의 이야기였다.

 

2008.10.22.에 주고받은 선배시인 김**님의 메일로 보내온 편지 속에는 '독도이야기'가 있었다. ‘예술촌촌장’이라는 별칭을 갖고 활동하셨던 분으로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다. 독도관련 모녀(母女)기사를 보았노라고, ‘(김)하나’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워 당신의 카페에 퍼 날랐다는 말과 함께 나랑 잘 아는 몇몇 시인들의 안부와 반응도 함께 전해왔다.

 

독도!

그 해, 2008년의 여름은 정말 뜨거웠다.

그 이야기를 다 풀어낼 수는 없지만, 그 사건에 서린 고통스러웠던 감정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독도이야기'는 간단히 말하면, 사라질 뻔했던 했던 이름 독도, 그 ‘독도’라는 명칭을 지켜낸 사건이다.

2008년, ‘하나’가 토론토대학교의 한국학 책임자로 있을 때였다.

‘독도(獨島,Dokdo)의 이름을 ‘리안쿠르 롹’(Liancourt Rocks)으로 바꾸려던 미일간의 계획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지체할 짬도 없이 저지에 나섰다. 그 계획이 미의회의 지도위원회에서 의사결정으로 통과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시점이었다. 너무나 급박했다.

한국정부를 비롯하여 외교통상부, 한미대사관, 등 외교채널을 동원하느라고 고군분투하는 사이(당연히 토론토 영사관도 포함 그러나...씁쓸!),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한미 양국 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번졌다. 그런 가운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전체가 발칵 뒤집혀 들끓었고 ‘김하나’가 인터넷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좋은 결과를 얻어낼 때까지의 두어 달 동안, 그 일을 해내느라 고군분투한 ‘하나’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펄펄 끓었고, 그해 여름마저 내내 끓었다. 그 속에서 우리 온가족은 몇 달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보냈었다. 세살짜리 아기 몸에 땀띠가 나고 나는 입술이 부르트고...

이제 시간이 흘러 아득하지만 그때 경험했던 일 중에는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뒤틀린 현실, 각박한 세상인심... 등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앙금이 되어 가슴에 박혀있는 티눈이 있다. 그만큼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두 번째 들춰진 사실은 어느 독자와 주고받은 내용이었는데, 나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시를 발표 하고 나면 가끔 독자들의 반응이 오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 이야기도 그런 중의 하나이지만 당시엔 매우 진지하게 임했던 기억이 새롭다.

 

H선생님!

그분은 그때 암투병중이었다. 오랜 교직생활 끝에 교장선생님이 되었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위암선고를 받았다. 오래 몸담았던 교단과 도시생활(전주)을 떠나 노모(老母)와 함께 고향(남원)으로 돌아가 농촌생활을 하며 투병 중이었다. 우연히 어디선가 나의 시 [춘분(春分)]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면서 첫 말문을 터왔다.

그렇게 시작되어서 수시로 농사일을 간단히 적은 농촌생활 일기와 함께 많은 이미지들을 보내왔다.

꽃 계절엔 꽃 사진, 산촌생활 이야기를 담은 사진, 농사철엔 농작물사진... ‘오늘은 엄니랑 같이 마당에 차일을 펴놓고 깨를 털었습니다...’ ‘벌써 콩잎이 노랗게 시들어갑니다....’ 하는 식이었다, 그때마다 맞춤한 대답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이어지는 동안에 우린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나는 그분의 건강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늘 염려하는 마음때문에 메일을 쓸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일주일 뒤엔 검진 받으러 서울대학병원에 다녀와야 합니다....’ ‘지금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인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대학병원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무섭습니다...’ 라고 보내온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떨지 마세요.’ ‘두려워마세요.’ ‘저는 믿습니다. 이겨내시리라는 것을’ ‘그렇게 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답을 보냈던 기억도 아스라이 난다. 무섭습니다! 라는 말에 어떻게 도울까, 어떻게 위로가 될까 하며 얼마나 전전긍긍했던가.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소식이 멎고, 그럭저럭 소식이 끊겼고, 소식이 끊어졌다는 사실조차 안중에 없이 지금까지 지내오다가...  오늘 [춘분(春分)]으로 하여금 들춰진 메모, 앗차!! 이럴 수가! 내가 잊고 있었구나! 나의 이 무심함과 무정함이라니!!

 

그분은 지금 어떻게 되셨을까?

궁금증이 이는 끝자락에 퍼뜩, 혹시?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부랴부랴 묵은 메일을 뒤졌다. 지금이라도 다시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안타깝게도 메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장 오래된 메일은 2006년 12월 24일자까지였다. 그렇다면 그분과의 주고받은 시절이 그 이전이라는 뜻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식이 끊긴 건 어쩌면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가서 ‘무섭습니다’ 라고 보낸 이후가 아닌가 싶다.

아!

 

다시 뒤졌다. 뒤지고 또 뒤졌다. 어느 귀퉁이에선가 그분이 보낸 글이 발견되었다. 화려한 꽃사진들을 보내온 것 중의 하나로, 그 사진 앞에 붙여 써 보낸 글이었다. 그 글 첫머리에 ‘...계사년이 시작되었습니다....’란 구절이 있어서 계산해보았더니 최근의 계사년은 2013년이었다. 가장 오래 보존되어있는 메일이 2006년 12월 24일이었으니까 2006년과 2013년 사이의 내용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 기간의 묵은 메일들을 다 뒤졌다.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계사년인 2001년의 이야기란 말인가? 그렇게나 오래전 일이었던가. 그 분이 보내준 이미지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데... 헤깔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헤깔리고 있다. 

오, 못믿을 나의 멍청한 기억력! 오, 잔인한 망각! 무심! 무정!..... 그리고 쏘아놓은 화살같은 세월!!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던 H선생님.

나는 지금도 H선생님께 보낼 마땅한 안부의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냥 아득하다.

 

다시 봄을 맞았고, 엊그제 4월의 눈도 다녀갔다. 목련도 아득하게 지고 있는데, 살아가면서 아득할 날들이 또 얼마나 있어질까?

 

<2021년 4월 26일>

 

---------------------------------------------------------


                                                     춘분   *   권 천 학
                                                           -4시집 <고독 바이러스>에서



                                               봄이면
                                               눈이 없어도
                                               눈 뜰 줄 아는 나무처럼


                                               땅심 깊숙이 물관부를 열고
                                               투명한 물길을 여는 나무처럼


                                               먼 가지 끝 잎새까지 초록등불 밝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나무처럼


                                               눈 감고 있으면서
                                               속 눈 틔우는 나무처럼


                                               실버들 가지 연두 빛으로
                                               몸 트기 시작하는 춘분 때 쯤
                                               환절기의 몸살감기를 앓는
                                               내 삶의 낮과 밤

                                               일교차 심한 봄추위 속에서

                                               어느 새 새 촉을 뽑아 올리며
                                               푸릇푸릇 몸을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