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설날을 考察하다 <2>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과 그 의미

천마리학 2021. 3. 23. 03:14

시니어 칼럼 3월호- 설날을 考察하다 <2>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과 그 의미 * 權 千 鶴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지난 호에 이어, 정월대보름과 관련 있는 풍속들을 더듬어 본다.

대개는 다들 아는 것들이지만, 고국을 떠나 멀리 온 지 오래됐고, 홑바지에 동동거리며 기다리던 어린 시절로부터도 멀어진 지 오래인 지금, 완행열차를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보는 시간이 되기 바라는 마음이다.

 

 

차례(茶禮), 세배(歲拜), 설빔, 덕담(德談), 세찬(歲饌설음식, 떡국 손으로만듬.) 첨세병(添歲餠·나이를 더 먹는 떡), 세주((-봄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데우지 않고 차게 마심), 문안비(問安婢) 보내기, 청참(聽讖), 야광귀 쫒기, 등 설날을 중심으로 한 것과 정월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오곡밥, 오색나물, 부럼깨기, 귀밝이술, 더위팔기, 달맞이,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연날리기, 복조리걸기, 윷놀이 널뛰기, 팽이치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통틀어 정월의 세시풍속이다. 이 외에도 지방마다 다른 풍속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농업국이었다. 농사는 노동과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직종이다. 노동은 노비들이나 일반 농민들이 제공한다. 일반 농민이라 해도 주로 소작농들이기 때문에 처지는 비슷하다. 이른바 노동자 농민이다. 농사일이 시작되는 봄부터 수확기인 가을까지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 파종부터 모내기 김매기 수확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협업이다. 당연히 대동단결이 중요덕목일 수밖에 없다.

정월은 농민들에게 정월은 모처럼 즐길 수 있는 휴식의 기간이고, 상류층에게는 평소의 엄격했던 규율에서 벗어나 선심을 베풀며 넉넉해져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새해의 농사를 도모해야하는 기간이다. 일 년 동안의 새경에 맞먹는 쌀 몇 가마니, 혹은 황소 한 마리... 등의 부상을 걸고 씨름판을 벌이게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윷놀이 판도 벌이게 한다. 드물게는 예쁜 상류층의 딸을 내걸기도 해서 신분상승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정월의 풍속들도 새겨보면 모두가 농사와 직결되어있고, 거기에 더하여 건강과 놀이와 생활습관개선 등 교육적 의미가 가미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당위성을 강요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하여 재미를 더하고 모두가 함께 즐기며 대동단결을 이루는 지혜와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해학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그 시대의 놀이문화의 근원이 되었음도 알 수 있다.

놀이를 통하여 사회적 차별과 벗어날 수 없는 가난, 고단한 삶의 스트레스도 씻어내고, 겨울 내내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던 영양도 보충하여 부실해진 체력을 다지는 정월. 그런 의미에서 상류층이나 하류층 모두에게 배려와 화해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풍속의 의미를 살펴본다.

 

 

복조리 걸기-이것은 노동력의 분산도 되고 시간의 효율적 이용도 된다. 겨울철 농한기에 마을 사랑방에 모여 내기화투나 노름(도박)으로 일년 내내 번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국정을 실시할 때 도박근절, 마약사범근절, 등의 국정(國政)이 있었다. 한가한 겨울철에 도박이 성행했고 그로 인한 패가망신의 사례가 많았던 것과 같다.

그런 폐해를 막는 방책의 하나가 복조리 걸기다. 정월에 내다 팔기 위해서 일이 적은 농한기를 이용하여 복조리를 만들어야 한다. 농한기에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서 농사철 대비를 하는데, 복조리도 그런 종류의 하나이다. 특히 토산품을 이용하여 부수입을 벌어들이는 경제적 효과도 있었다.

 

 

쥐불놀이-쥐가 들끓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놀이 겸한 방책이다.

번식력이 강한 쥐는 논두렁 밭두렁에 숨어 살며 물구멍을 내어 농사를 방해하고, 둑을 무너지게도 한다. 또 농작물들을 먹어치워 수확을 감소시킨다. 쥐들이 새끼를 까고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논두렁 밭두렁에 있는 쥐구멍에 불을 놓고, 아울러 논두렁 밭두렁의 마른 풀잎들을 태운다. 이것은 마른 풀잎이나 땅속에 숨어들어 겨울을 나고 있는 벌레들을 사전에 박멸하는 효과도 있다.

한때 쥐잡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할당된 쥐꼬리를 채우기 위해 오징어다리를 그슬려 갖다내었던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달집태우기-마른 볏짚으로 달집을 만들어 태우는 놀이로 쥐불놀이처럼 해충 박멸을 의도한 행위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땅속이나 나무의 표피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알을 까서 부화하기 시작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목적이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땅에서 1m 정도의 높이의 나무 밑둥을 짚으로 둘러싼다. 벌레들을 유인하기 위한 짚이불인 셈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벌레들은 그 짚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추위를 견딘다. 날씨가 풀리면 알을 낳고 부화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벌레집이 된 짚이불을 풀어다 달집과 함께 태운다.

()을 태워버린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기도 한다.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는 밤에 하는데 어두운 밤에 불꽃이 더욱 강렬한 재미를 주어 마음의 카타르시스가 되는 효과가 있다. 덩달아 흥분한 아이들은 깡통에 불을 넣어 돌리며 즐긴다.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 등은 현대사회의 화려한 불꽃놀이가 없던 그 시절에 즐기는 밤놀이문화의 시초이기도 하다.

 

 

팽이치기와 재기차기-놀이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팽이치기는 언 땅이나 얼음위에서 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재기차기 역시 특별한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집중력과 운동신경을 다스릴 수 있는 놀이다. 아이스 하키를 보면 팽이치기가 생각난다.

 

연날리기-방패연, 가오리연 등 여러 종류의 연을 만들어 방위표시, 소원성취글귀 등을 써넣고, 연자세와 연실도 준비한다. 연실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아교와 사금파리 조각들을 짓이겨 바른다. 하늘 높이 소원을 실어 올리면서 바람을 타고 높이 올리는 기술도 익힌다. 놀이 끝에는 액()를 띄워 보낸다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낸다. 어릴 적 꾸었던 꿈이 지금은 어디쯤 날아가고 있을까.

 

 

야광귀(夜光鬼)-눈에 빨간불을 켠 귀신이 돌아다니다 문간에 있는 신발들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가 버린다고 한다. 아이들은 설빔으로 마련한 신발들을 간수하느라 바쁘다. 아이들에게 신발정리습관과 함께 물건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하려는 방편이었다.



 

 

윷놀이-다섯 부족으로 형성된 고대 부여족의 조정에서는 정초가 되면 중요 5가지 가축, 돼지 개 양 소 말을 다섯 마을에 나눠주었다. 서로 분열하지 말고 협동하여 풍년을 이루기를 촉구하는 뜻이었다. 그 풍속에서 유래한 윷놀이, (돼지) () () () ()로 규칙이 정해졌다. 마을사람들이 합동으로 즐길 수도 있고 가족단위의 적은 모임에서도 즐길 수 있는 놀이로 화합을 꾀한다. 도박성이 강한 카드게임나 슬럿머신, 파칭코 등의 서양식 놀이에 비하면 훨씬 개방된 곳에서 건전하게 즐길 수 있어 권장할 만 한 놀이라고 생각한다.

 

 

오곡밥과 오색나물 먹기 혹은 일곱집 밥을 나눠먹기-쌀 조, 수수, ,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밥과 지난해에 준비해놓은 마른채소들, 고구마순, 도라지, 호박고지, 시래기, 고사리, 아주까리 잎, 고추잎나물, 가지나물, 취나물...등 묵은 나물로 철분함량이 높고 영양분이 응집되어 생채보다 높다.

일곱 집 또는 그 이상의 집 밥들을 나눠 먹는 것은 겨울철의 부실한 영양섭취에 더하여 이웃 간의 화목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부럼깨기-호두, , 땅콩, 밤 등의 견과류는 습한 겨울철의 이와 피부건강에 좋다고 한다. 이병이나 피부병의 예방 효과가 있다. 단단한 호두껍질이 깨어지는 소리에 도깨비가 달아난다고 하여 재미를 겸했다.

 

 

더위팔기-이른 아침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더위를 팔면 그해여름의 더위를 면할 수 있다는 속설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이름을 불러 말을 거는데 녜~, ~, 하고 대답하면 내 더위 네 더위, 몽땅 더위하고 말해서 여름더위를 판다. 이름을 불리운 사람이 알아채고 녜~, ~, 하는 대답 대신 내 더위 네 더위, 몽땅 더위하고 먼저 말하면 이름을 불렀던 사람에게 판 것이 된다.

정말 믿어서가 아니라 이웃 아낙들끼리 담 너머로 나누는 아침인사로 재치와 재미를 더한 애교스러운 인사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머리카락 태우기-집안의 위생을 깨끗이 유지하는데 목적이 있다. 머리카락만이 아니라 구석구석 쌓여있는 묵은 먼지를 쓸어 모아 태우는 것인데, 그 냄새로 귀신을 쫒는다고 하고 때로는 집 주변의 뱀들도 몰아낸다고도 한다. 그런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꼭 실행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귀신이 엿듣고 온다든가, 제사음식이나 제사상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죽은 이에게는 머리카락이 뱀으로 보인다고 하는 것과 같다.

코비드-19가 창궐한 지금상황에도 걸 맞는 생활위생관념을 심어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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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화권에 살고 있긴 하지만 무조건 서양 문화에만 빠져들지 말고 우리의 건전한 전통문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완행열차여행이 즐거웠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