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돌파(突破)와 갱신(更新)

천마리학 2021. 3. 12. 04:04

 돌파(突破)와 갱신(更新) * 권 천 학

시인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Painter : Dori Emmenegger-Kim

 

어느 날 돌파(突破)라는 단어가 코로나 기사의 제목에서 튀어나와 눈에 티처럼 박혔다.

코로나 이후 가장 많이, 지속적으로 관심 있게 보는 뉴스가 COVID-19 관련뉴스일 터이지만, 중심매체에서 보도하는 원문기사들을 다 접할 수는 없다. 2, 3...의 매체 또는 단계를 거쳐 우리에게 도달한다. 이메일, 페이스 북, 카톡...이 뉴스의 최종소비자에게 가장 쉽게 접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 기사들을 받아보면, 원문기사의 링크 앞에 영어제목을 한글로 번역한 제목을 붙여놓았다. 영어이해에 불편한 한국사람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워싱턴주 코로나 감염자 10만명 돌파 코앞http://www.../전세계 코로나 사망자 150 돌파 9초당 1명 숨져http://www.../‘신규 감염자 사상 첫 20만명 돌파http://www.../이런 식이다.(게제일이나 매체이름은 생략했음) ’9초당 1명 숨져라는 말이 더욱 관심을 끌며 초긴장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가 수없이 복사, 전달되고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첫머리에 쓰여 있는 한글번역의 제목을 먼저 보면서 그 기사의 링크를 열게 된다.

 

 

여기서 돌파는 잘못 사용된 단어이다.

 

돌파(突破)의 사전적 의미는 <-쳐서 깨뜨려 뚫고 나아감./-일정한 기준이나 기록 따위를 지나서 넘어섬./-장애나 어려움 따위를 이겨 냄>이다.

 

기사에서 튀어나와 눈의 티가 된 돌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원문기사들을 검색해보았다.

연결된 영어 원문을 살펴보면 어디에도 돌파라는 뜻의 영어단어는 없었다.

한 예로, <코로나 속보>온타리오 마침내 1천명 돌파...http://www... 클릭해보면 Ontario, records more than 1,000 new COVID-19 cases for the first time ever’이다. (온타리오, 사상 처음 1,000건 이상의 새로운 COVID-19 사례 기록.)이다.

 

제시한 바와 같이 원문기사의 제목은 물론 전체 기사 어디에도 돌파라는 뜻의 단어는 없었다. 급증’, ‘넘어서’, ‘줄었다’, 넘어섰다’, ‘많아졌다’...등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영어인들은 정확하게 맞는 영어단어들을 구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한국어인(번역자)이 한국어인(독자)들에게 잘못 번역된 한글 단어로 전달하고 있다. 잘못된 인식을 하게하고, 한글에 손상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왜 잘못 사용되었는가!

돌파가 사용되는 기사의 이슈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이고, 이슈의 주체는 당연히 사람이다. 바이러스와 사람은 서로 적대적 관계이다. 기사는 당연히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하고, 사람의 처지에서 써야 한다. 그런데, ‘돌파는 사람들을 무찌르려는 바이러스가 기세 좋게 목표달성이 이루어나가고 있음을 표현한 단어이다. 바이러스세상에서 바이러스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펴내는 바이러스신문에 보도할 내용이다. 바이러스 처지에서 한 표현이다. 침략을 당하고 있는 사람세계의 처지에선 돌파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마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껄끄럽다.

 

친절도 좋지만, 제대로 된 안내여야 하고, 굳이 마땅찮은 단어를 사용하느니 원문대로 전하는 것이 좋다. 지면사용의 용량에도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번역이 어렵다.

원문대로 급증’, ‘넘어서’, ‘줄었다’...등의 쉬운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이 원문에도 충실하고, 듣기에도 자연스러워 뜻 전달이 쉽다. 한글로 충분하다. 굳이 한자를 사용하려면 돌파(突破) 대신 갱신(更新)’ 또는 경신更新이 맞다.(한자  다시 갱 고칠 경의 두 가지로 쓰인다) 언 듯, 한자를 사용하면 유식해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던 과거의 한때가 스쳐간다.

 

가끔 잘못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해주면 아 그런가 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떠나온 지 오래 돼서... 변명하며 안색을 붉히기도 한다. 말은 이미 성장기에 완성이 되고, 고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고학력을 내세우는 사람이 그럴 때는 아쉬움을 넘어 한심할 때도 있다. 인품의 바탕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 하더라도 여러 번 무심코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동화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눈에 티가 된 돌파(突破)도 처음엔 어쩌다 실수려니 했지만 심심찮게 이어져 나왔고,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그런 제목을 또 보았다. 부디 우리에게 주어진 빛나는 소통의 도구인 한글을 잘 사용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