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슬픈 이정표와 마일스톤

천마리학 2021. 1. 1. 03:10

 

슬픈 이정표와 마일스톤

권천학 | 시인,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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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 30 Dec 2020 04:22 PM

 

 

WHO의 유엔 보고에서 작년 말 우한에서 시작된 COVID-19의 누적사망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로이터 통신, 9월29일)를 하면서 가족과 격리된 상태에서 사망하는 ‘슬픈 이정표’라고 표현했다. 100만 명 중 미국인이 20만 명일 때였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백신이 나왔지만 확신하기에 아직은 이르다. 좋아졌다는 이정표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정표 즉 마일스톤 milestone, mile과 stone이 합쳐진 영어조어(造語)이다.
‘슬픈 이정표!’,
그 말속에는 격리상태에서 사망하는 슬픔만이 아니라 하루빨리 위험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기원과 함께 고비를 넘는 이정표로 삼자는 촉구 의지를 담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채 세계로 뻗어가려는 야망을 품은 작은 나라가 있었다. 국가의 이념에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 군대를 진두지휘해가며 인근의 작은 부족국가들을 점령해나간다. 그에게는 행군할 때마다 애를 먹게 하는 도시 외곽의 늪지대가 골칫거리였다. 군대의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희생자도 생겼다. 군수물품의 수송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작전이 더뎌지고 국고손실도 클 수밖에 없다. 해결책을 찾는 궁리 끝에 묘안을 찾았다. 군사들에게 그 늪지대를 자갈과 모래흙으로 메우게 했다. 오래 걸리고 힘든 일이었지만 계속해서 늪을 덮어나갔다. 범위가 넓어지자 어느 만큼인지, 어디쯤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위치표시가 필요했다. 군데군데 몇 번째 돌인지,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새긴 표식 돌을 1,000보가 되는 곳마다 세우게 했다. 서양식 거리 단위의 기본인 걸음 수에 따른 것이다. 1,000보는 1 마일, 그래서 마일스톤이 되었다. 고대 로마시대의 아피아누스 장군 이야기다.
늪은 광장이 되고 길이 되었다. 군대의 진군과 물자 수송도 빨라졌다. 당연히 비용이 절감되었다. 사방으로 통했다. 문화문물의 교환도 신속히 이루어져 국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소통이 잘 되니 유대감도 커졌다. 유럽남부도시들과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문명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초석(礎石)이 되어 로마의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큰 몫을 했다. 드디어, ‘모든 길은 로마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차가 다니지 못하던 시골에 땅을 다듬어 길을 만들거나 구불구불한 길을 곧게 펴서 고속도로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길은 인체의 핏줄과 같다. 혈관이 막히면 동맥경화증이 생기고, 수도관도 내부에 녹이 슬면 국민병을 만든다. 길이 막히면 국가 발전도 느려져 국력에 손상이 커질 수밖에 없다. 
마일스톤의 개념은 현대에 와서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이용한다. 비즈니스나 마케팅에 있어서 마일스톤 관리론이다. 경영부문에서는 key date, event, 등의 용어와 함께 사용한다. 사업프로젝트를 세운다음 그 목표를 향해서 잘 진행이 되고 있는지, 방향이 제대로 잡혔는지, 효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알맞은 속도를 내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고 점검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에 기준이 될 만한 지점을 설정해 놓고 점검하는 체계이다. 일반적으로 10, 50, 100, 1,000을 단위로 삼는다. 


캐나다 정부는 2017년, ‘건국150주년’을 기념하는 계획을 세워 대대적인 행사를 했다. 건국 149주년이나 151주년도 햇수 세기로는 다를 바 없지만 150이라는 숫자에 특별히 의미를 붙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해방70주년’을 맞이하여 다른 해보다 더 성대하고 다양하게 행사를 치른 것과도 같다. 
개인 생활에 있어서도 만보걷기, 천일의 약속, 천일 기도... 등 혹은 10년 후의 내 모습, 20년 후의 나, 등으로 표지를 세우고 삶을 운영해나가고 있는 사람 많을 것이다. 이처럼 마일스톤은 단순히 거리나 방향의 표시만이 아니라 삶을 경영하는데 있어서도 새로운 각성과 다짐으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우리는 지금 조금씩 지쳐있는 것이 사실이다. 독감과 겨울 그리고 멈추지 않는 바이러스의 기세 때문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지치고 무뎌져서 오히려 만성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염려해야 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소소해 보이는 개인위생과 마스크착용, 거리두기 등을 철저히 지켜서 활력과 회복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슬픈 이정표’가 ‘승리의 이정표’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 더욱 가열차다.

 

권천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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