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빼앗긴 악수(握手)

천마리학 2020. 10. 7. 00:01

빼앗긴 악수(握手) * 권 천 학

시인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기원 전 고대 바빌론에서는 통치자의 손에 대단한 권위를 부여했다. 즉위식이나 중요한 국가의식(儀式)을 행할 때, 오른 손으로 성상(聖像)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통치자는 하늘로부터 신성한 신의 힘을 전달 받는다는 상징이다. 로마의 카이사르 장군은 그 의미를 살려 악수하는 인사법을 만들어 군대에게 가르쳤고 그것을 전통으로 삼았다. 악수는 신뢰와 다짐을 뜻하는 몸짓이다.

 

2020 10 1 한국일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전쟁으로 점철되어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의 어느 곳인가는 전쟁으로 평화가 불타고 있다. 겉으로는 전쟁이 없는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평화의 시기라고 할 수 없다. 서로를 견제하고 뺏고 빼앗기는 욕망의 힘겨루기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는 없다. 평화롭게 보일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평화로워 보이는 그 시기는 잠정적 전쟁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작전타임이기도 하고, 전장(戰場)의 피로를 씻고 힘을 축적하기 위한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총칼만이 무기가 아니다. 돈도 무기이고 핵폭탄도 무기이고 세균도 무기다. 온갖 것을 동원하는 권력의 힘, 그 힘이 여러 형태의 전쟁으로 나타난다. 민족과 민족사이, 국가와 국가사이, 지역과 지역사이... 언제 어느 구석에서 치고 나올지 모른다. 그 긴장감은 강자이건 약자이건 또는 침략자이건 피침략자이건 공통의 감정이다. 살얼음 같은 평화가 언제 깨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경고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씨 비스 파셈 파라벨룸!

 

긴장의 완화를 위하여 협정도 맺고 동맹도 맺는다. 잠시 싸움을 멈추자는 약속의 뜻으로, 서로 손에 무기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 무장해제의 표시다. 손을 잡고 좀더 강하게 흔들기도 한다. 소매 속에도 무기를 감추지 않았다는 표시다. 칼이 무기이던 중세, 기사끼리 마주쳤을 때, 왼손에 쥐 칼집의 손잡이에 오른손을 얹으면 적의(敵意)의 표현이다. 칼집을 오른손에 쥐고 있으면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이다. 왼손보다 오른 손을 더 잘 쓰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인 동작이다. 악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화해와 약속의 몸 언어가 되었다.

 

한때,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논란이 되었다. 칼집을 오른 손에 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군은 모름지기 왼손에 칼집을 들고 있어야 유사시에 재빨리 오른 손으로 칼집 속의 장검을 뽑아 휘두를 수 있다는 논리다. 이순신 장군은 왼손잡이? 그러나 사료(史料) 어디에도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라는 증거는 없다. 난중일기를 비롯한 필적들을 살펴보아도 왼손잡이일 가능성은 없다. 다른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에는 왼손에 들고 있다. 결국 조각가의 실수로 결론지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악수의 동작에서 예전처럼 응전(應戰)이나 도전의 의미는 사라졌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함부로 악수를 청하는 것, 특히 아랫사람이나 여성이 먼저 청하는 것은 무례(無禮)한 금기사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경영이나 비즈니스, 남녀노소 모두 친분과 존중을 표현하는 동작으로 편하게 사용한다. 문화적 차이나 지역의 전통에 따라 인식이나 풀이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어떻든 악수는 친근함을 나타내는 세계인 공통의 인사방법이기도 하다.

 

악수의 포즈를 보여주는 국가수반의 모습에 우리는 익숙하다. 남녀를 가리지도 않는다. 박근혜대통령 시절 방한(訪韓)한 빌게이츠가 박대통령과 악수할 때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해서 잠시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보통의 인사정도로 생각하는 서양과 중요한 예절로 생각하는 동양의 문화차이에서 빚어진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오른손으로 하는 악수의 방법만은 변하지 않았다. 맨처음 신의 힘을 전수받을 때처럼 오른 손을 사용해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략을 받은 새해 초부터 우리는 악수를 금지 당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로부터 손을 맞잡는 사소한 동작까지도 제한 당하다니, 어이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라는 것. 그 사이 잠시 멈추는 손의 체온을 마음 깊이 축적해두었다가 전쟁이 끝나는 날, 더욱 뜨겁게 맞잡기를 기약하면서, 빼앗긴 악수를 하루 속히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 (씨 비스 파켐 파라 벨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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