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조금만 더 참아요

천마리학 2020. 9. 5. 04:15

조금만 더 참아요 * 권 천 학

시인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날씨 화창한 지난 주 어느 날 인파로 가득차서 붐볐던 트리니티 벨우드공원이 오늘은 텅 비었다고 한다. 소풍 나온 두어 가족의 모습이 되레 짠해 보인다. 벌써 넉 달째, 학교에도 못가는 손주들도 수시로 밖으로 나가자고 보채지만 고작 앞뜰 뒤뜰행차로 끝을 내는 나의 심정이다. 장기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느라고 힘들었던 시민들이 모처럼 햇볕이 좋았던 그 날,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긍하면서도 어쩌려고 저럴까. 걱정되기도 했다. 노상방뇨와 자잘한 소란으로 인근주민을 불편하게 한 시민의식의 허점도 보였다고 한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 줌의 자유, 한줌의 해방감을 참을 수 없었으리라.

 

그 다음 날, 뉴스는 갑자기 더 많아진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을 전했다. 연일 바이러스 방지대책에 몰두하는 당국의 고심이 더욱 깊어졌다. 덕 포드(Doug Ford) 총리는 공원에 인파가 가득 찬 그날, 롹 페스티발이 열린 줄 알았다고 혀를 차며 대책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며칠 후 파란 잔디위에 하얀 페인트로 동그라미를 그린 모습이 등장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구나 싶어 씁쓸했다. 격리기간을 연장하고 문을 여는 가게들의 숫자도 줄였다. 예방책을 강화하면 할수록 우리들의 생활은 더욱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제한당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구속당하는 압박감도 부풀어 오르기 쉽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서 다시 증가하는 확진자 소식이 들려오고...

 

볼 멘 소리를 하면서도 잘 견뎌주는 손주녀석들이 안스럽다. 그 마음 달래느라고 이야기 하나를 꺼내었다. 있잖아, 캔디보이말야...

캔디보이는 서툰 언어소통으로 우리 녀석들과 놀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캔디를 한줌씩 포켓에서 꺼내어 나눠주어서 손녀가 붙인 닉네임이다.

한국에 사는 지인의 중학생 아들인 캔디보이는 토론토에 와서 몇 달간 영어공부를 하고 코로나사태 직전에 돌아갔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도 취미인 실내암벽타기를 틈틈이 즐겼다. 한국으로 돌아간 그 아이의 한 마디, 캐나다는 참 좋은 나라야!

이유는 한국에선 암벽타기를 할 때마다 너무 늦은 나이잖아, 공부안하고 웬 암벽타기냐, 시간을 아껴라, 등등 핀잔하는 말만 들어서 눈치가 보였는데, 토론토에서는 참 잘 타는구나 엄지 척, 와 멋져 엄지 척... 칭찬하는 소리만 들어 놀랐다면서, 캐나다는 좋은 나라!라고 했다는 것.

 

, 우리는 지금 캔디보이가 부러워하는 좋은 나라에 살고 있잖아. 끄덕끄덕.

이 좋은 나라, 이 좋은 토론토를 누가 지키겠어? 우리가 지켜야지. 끄덕끄덕.

그래야 하루빨리 학교에도 가게 되고. 그렇지? 끄덕끄덕,

우리 조금만 더 참자! 끄덕끄덕.

손주들에게 노래 글을 만들어 조근조근 읽어주었다. 손벽을 치며 반복해서 따라 읽게 하는 사이, 나지막하게 즉흥적으로 창작멜로디도 넣어가며 흥얼흥얼, 읊조리는 어색한 노래가 어색한 한국말만큼 사랑스러웠다.

 

우리, 조금만 더 참아요 지치고 힘들더라도

우리, 조금만 더 견뎌요 지키기 어렵더라도

당신이 지치면 내 손을 잡아요

내가 지치면 당신 손을 주세요

서로 서로 위로하면 이런 날 길지 않아요

서로 서로 지키면 이런 날 오래 가지 않아요

 

짜증나고 힘들 때 함께 이 노래 불러요

우리 조금만 더 참아요 지치고 힘들더라도

우리 조금만 더 견뎌요 지키기 어렵더라도

공원의 맑은 햇살 아래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는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자유로운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참아요 힘들고 짜증나더라도

조금만 더 견뎌요 웃을 날 멀지 않아요

 

우리집 손주녀석들만이 아니다. 마음 울적하거나 어수선 할 때 글 한 줄, 노래 한 소절이 힐링의 약재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로 불편을 겪고 있는 우리 교민들에게도 잠시 시름을 걷어내고 복잡한 마음을 토닥이는 위안의 노래가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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