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예사롭지않다

천마리학 2020. 7. 22. 04:18

 

 

이번 글엔 십장생도를 곁들입니다.

위태로운 시기에 모두들 건강을 지키셔서 십장생처럼 오래오래 사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예사롭지 않다 * 권 천 학

안녕하십니까 회원여러분!
우리의 목숨을 위협받는 COVID-19으로 활동이 제한된지 석달째입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스스로 건강과 위생수칙을 지켜 목숨을 부지해야할 상황입니다. 

예로부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홍복이라 했습니다. 
건강장수를 기원하며 그린 그림이 십장생도입니다.
맨 아래에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상기해보시기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십장생 병풍 1~4폭(해, 불로초(영지버섯), 거북, 사슴, 그리고 학(출처:한민족대백과사전)



얼마 전까지 뜰 앞에 피어 봄이 와있음을 꿋꿋하게 보이던 수선화,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져서 우리를 어지럽게 해도 기어이 봄을 피워내기라도 한다는 듯, 청순한 꽃송이를 피어내더니, 이제는 가장 상큼하던 고비를 넘어섰음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싱그럽던 모습이 줄어들면서 지친 기색을 보인다. 4월과 함께 떠난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기운을 잃어가는 수선화 주변에서 돋아나기 시작하던 튤립들이 어느 새 싱싱한 꽃송이들을 열고 봄의 바톤을 이어받아 5월을 펼쳐내고 있다. 아직은 송이가 작지만 힘찬 초록의 잎과 갖가지 색의 싱싱함이 반갑다. 예년 같으면 다가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입맞춤도 했을 텐데 지금은 멀리서 피고 지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어야만 하니, 애잔하다. 창가에 서서 나날이 변해가는 봄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썩 좋기만 할 수는 없다. 어쩌겠는가. 어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불길한 소식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기만을, 갇혀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는 무력함에 젖어들기도 한다.

 

자고새면 확진자, 사망자... 안테나에 걸리는 소식들은 이명으로 귓가에 딱지로 앉을 지경이다. 총소리 한 방 나지 않는데 죽어나가는 사람들 소식은 끊이지 않으니 전시(戰時)수준인 이 상황을 지금 우리는 숨죽이며 견뎌내고 있다. 경제가 무너지고, 생활이 무너지고, 안보가 무너지고, 건강이 무너지고, 미래가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지고... 의 연속이다. 그런 속에서 맞이하는 5월인데도 우리는 5월처럼 싱그러울 수가 없다.

 

 

봄이 왔다고 서둘러 핀 꽃들이

필만큼 피었으나,

코로나 꽃이 피었던 거리에서

뒤엉켜 앞 다퉈 피느라고

유달리 외로웠겠으나,

지금은 자리를 비워낼 때

뒤이어 피어날 꽃들을 위해서

이제 고만 물러갈 때가 되었으니

 

순교하는 4월의 꽃과 함께

가라, 코로나꽃!

5월엔 5월의 꽃이 피어야하니

 

시 <5월이 예사롭지 않다 – 코로나 풍경>



예사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제나 저제나 눈과 귀를 열어놓는다. 여전히 확진자 추가, 사망자 추가... 소식은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꺼끔해진 듯 해서 다소 안심하면서 조심스럽게 기대도 해본다. 코로나 TF(태스크 포스)가 한 달 내로 해체할 것이라는 마이크 펜스 미국부통령의 발표는 그런 기대를 부추겼다. 그런데 이내 그 발표가 번복되어버렸다. 코로나 TF를 무기한 유지하면서 백신개발에 주력하겠다고. 언제 해체할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확진자나 사망자 숫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으므로 아직도 긴장을 풀면 안 된다는 경고인 셈이다.

갇혀있는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니 그 뜻도 맞춰야 하고, 멈춰선 경제의 숨통을 열어야하는 당국으로선 부분적으로나마 개방을 시도하는 일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COVID-19의 전염속도가 다소 느려진 듯하고, 숫자도 다소 줄어드는 듯하나 안심할 수는 없다. 어느 곳에서 복병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조금씩 놓이던 마음의 끈을 다시 묶곤 한다.

 

코로나사태로 숨죽이는 와중에서도 세계도처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이어졌고, 고국에서는 대형화재까지 났었다. 그 중에서도 지난달에 38명의 사망자까지 낸 이천 물류창고의 화재와 강원도 고성의 산불, 엎친데 덮진 격이었다. 고성산불은 작년에도 났던 곳의 인근으로 이번에는 바람덕분에 많이 번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바람의 강도도 약했지만 부는 방향이 마을 쪽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하니, 바람 때문에 불이 나고 바람 때문에 불이 꺼지기도 한다. 그래도 산림 피해면적이 85핵터 이상이 되고 주택1채 등 시설물 6개 동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자연재해든 전염병이든 사람의 뜻대로 조정하기 어려운 일이니 상황에 맞는 대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고비를 넘어섰다고는 하나 아직은 확신할 수도 없어 마음 놓기에 이르다. 코로나 TF 해체를 무기연기하는 것도 그런 뜻이다.

화재에서 꺼진 불도 다시 봐야하는 잔불정리가 중요하듯, 코로나사태도 뒤처리가 중요하다. 다소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잔불 처리하듯, 잔불정리가 완전하게 될 때까지 긴장을 풀지 말고 끝까지 잘 견뎌내야 한다.

머뭇머뭇 입맞춤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봄이 떠밀리듯 여름으로 간다. 봄마중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떠나보내는 우리는 한 계절을 잃어버렸다. 한 계절 쯤 손해봤다 치더라도 더 많은 계절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긴장을 풀지 말고 끝까지 잘 견뎌내야 한다. 마음의 끈, 다시 묶자 ♠


십장생을 그린 8폭 병풍, (출처:국립고궁박물관소장)

예로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삼는 10가지를 '십장생'이라고 합니다.
해, 산, 물, 학, 구름, 소나무, 불로초(영지), 거북, 사슴, 복숭아입니다.   
임금님의 용상 뒤나, 어르신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많이 이용합니다. 
이 그림 속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권천학의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교회와 야단법석  (0) 2020.09.15
조금만 더 참아요  (0) 2020.09.05
낙엽칙서  (0) 2020.06.07
함께, 공부 더 하자!  (0) 2020.04.03
2020 신춘문예심사평 함께 더 공부하자!  (0) 2020.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