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인생낭비죄

천마리학 2019. 8. 7. 08:05





인생낭비죄 * 권 천 학

시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종심(從心)


  

                                     통통한 몸 만드는 데 오십 년

                                

                                     흰 머리칼 만드는 데 육십 년


                                     손바닥에 고인 물 들여다보는 데


                                     칠십 년 !

                             

                              





2019 7 11일 오전 10 20, 서울 문정동 서울동부지법 401호 법정. 여든 한 살의 노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피고인석에 앉아있다. 죄목은 상습절도범. 한때 대도(大盜)로 불리던 조세형씨다. 1970~1980년대 주로 강남의 고위관료나 부유층의 집들을 터는 절도행각으로 큰도둑(大盜)이라고 불리었고, 가끔은 훔친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줬다해서 의적(義賊)홍길동이라는 별명도 붙었었다.

대도라는 말에는 은근히 도둑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포함되어있다. 도둑은 도둑일 뿐, 그런데도 그렇게 부른 것은 고위층이 되지 못한 사람들, 부유층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콤플렉스와 고위관료나 부유층의 부패에 대해서 느끼는 염증이 버무려진 언더 도그마(Under Dogma)적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이 80을 말하는 산수(傘壽)를 지나 망구(望九)에 이르러서도 도둑질을 멈추지 못했다. 망구는 81세를 가르키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 장조(杖朝)’라고도 하는데 이는 여든 한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 짚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다. 지팡이를 짚을 수 있는 나이에 법정에 앉아있으니...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있다. 그는 떡잎시절부터 불우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행방불명,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형의 등에 업혀 구걸 젖을 먹고 자라다가 6·25 동란이 터지자 고아가 되어버린다. 형과 함께 전주로 피난을 갔고 전국의 보육원을 전전하며 소년기를 보내면서 각종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을 20여 차례나 드나든다. 성년이 되어서는 절도 행각이 더욱 과감해졌고 대도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 것.


사람은 백 번 된다는 말도 있다. 그에게 그런 기회가 비켜갔을 리 없다. 소년기에는 바꾸지 못했더라도 성인이 된 후에 마음만 고쳐먹으면 인생의 판도를 바꿀 수 있었다. 한 때 반짝했다. 1982년에 구속돼서 15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뒤, 기독교에 귀의하여 선교 활동을 시작했고, 옥바라지를 해준 여성과 가정도 꾸린다. 경비보안업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고,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범죄학 특강을 하거나 교도소 인권개선운동 등을 펼쳐 개과천선의 대명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가 그에게는 기회였다. 그러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1년에 선교활동을 하러 방문한 일본에서 빈집털이를 하다 체포된다. 세 살 버릇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에는 서울 마포에서 치과의사 집을 털다 덜미를 잡혔고, 2010년에는 장물 알선으로 다시 철창신세를 졌다. 70대가 된 2013년에는 노루발못뽑이(속칭 '빠루') 등을 이용해 강남 고급 빌라를 털어서 실형을 받고 출소한 후 5개월 만인 2015년 용산의 고급 빌라에서 재차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말에 출소했다. 14번째의 감옥행이었다. 2019 7 9일 또다시 붙잡혔다. 서울 광진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 침입하여 650만원치의 금품을 훔쳐 특수절도혐의로 구속되었다. 이쯤 되면 사람이 백 번 된다는 기회를 다 놓치고 만 셈이다. 인간의 본성(本性)이라고 해야 할지 불가에서 말하는 습()이라고 해야 할지...





탈피중인 매미



젊은 시절에는 도둑질 밖에는 다른 생활 수단이 없었고, 노인인 지금은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야하는 생활고 때문이니 관용을 베풀어달라는 변론은 과연 타당할까. 그만큼 어려운 환경, 그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이 다 그처럼 도둑으로 생계를 잇고 평생을 소모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가운데 올바르고 굳건히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라면서 며칠 후면 입대하는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읍소하는 여든한 살 노인의 궁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새김질하게 된다.


앙리 샤리에르의 유명한 소설 빠삐옹’, 독방에 갇혀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그에게 배심원들과 재판관이 그에게 심판. “너는 살인죄로 기소된 것이 아니다. 네가 저지른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다, 너는 네 인생을 낭비한 죄로 기소됐다!” 인생을 낭비한 죄! 그 추상같은 한마디에 자신의 유죄를 받아들인다. 평생을 도둑질로 보낸 조세형,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친 게 아니라 결국 자신의 인생을 도둑질 한 것이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 인생낭비죄! 그 법망은 매우 촘촘하고 유동적이다.

돌아보자. 인생낭비죄의 법망(法網)에 걸리지 않는지. 아무리 삶이 괴롭고 힘든다 해도 변론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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