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라과디아 공항에 가고 싶다!

천마리학 2019. 6. 22. 22:29



라과디아 공항에 가고 싶다!


라과디아 공항에 가고 싶다!


-한국일보

https://www.koreatimes.net/ArticleViewer/Article/119620 ㅠ   


  • 오피니언 관리자 (opinion@koreatimes.net) -- 
  •  
  • 11 Jun 2019
  •                      


라과디아 공항에 가고 싶다! * 권 천 학


시인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의 분위기가 수상했다. 커튼을 열자 촉촉하게 젖어있는 새벽이 아슴하게 눈에 들어온다. 밤새 비가 내린 모양이다. 지금도 실비가 내리는 듯, 오는 듯 마는 듯, 발소리 죽여가며 살금거리는 비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가라앉은 새벽의 모습을 응시하고 선 내 마음도 촉촉해진다.

!

젖은 대지에 가득 내려앉아 어둠을 밀어내는 빛. 미세하게 스며드는 청보라 빛의 입자가 보인다. 르노와르라면 어떤 색체로 이 새벽시간을 그려낼까.

오늘도 제발 무사히!

나지막하게 기도문이 새어나온다. 나의 일상이 무사하길 바라는 기도가 결코 아니다. 세상의 일상이,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흔들리는 사람들의 일상이, 조국 대한민국의 오늘 하루가 제발 무사하길 바라는 내 마음의 기도이다.

특히 자고새면 비난의 소리들이 뒤엉키는 불협화음의 현장, 기울어진 천칭으로 죄의 무게를 달고, 비뚤어진 권력의 칼날이 난무하는 현실. 막말을 막말로 덮씌우고,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비난하는 손가락질, 단죄(斷罪)에 단죄를 부르짖는 조국소식이 걱정이다. 핵과 미사일은 여전히 미궁인데, 사법부 수장이 길 건너편에서 방송중인 유투버가 계란 두 개를 들고 벌이는 퍼포먼스로도 살의(殺意)를 느끼다니. 그 어이없음에 마치 살얼음을 딛고 선 기분이다.


세상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몸짓으로 끌고 가는 거대한 수레다. 한 시도 조용할 리 없고, 한 줌의 침묵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눈만 뜨면 시끄러운 요즘 세상은 너무나 각박하고 살벌해서 그저 듣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수레가 아니라 용광로 같다.

불현 듯, 라과디아 공항에 가고 싶어진다.






1930, 화려한 도시 뉴욕의 어느 길모퉁이 빵집, 누추한 차림의 한 노인이 빵 한 덩이를 훔치다가 현장에서 절도범으로 고발되어 법정에 끌려 나왔다.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처음입니다.’ 판사의 질문에 노인이 답한다.

왜 훔쳤나요?’

비는 오는데 갈 곳도 마땅찮고, 젊음은 가고 없는데, 돈도 바닥난 지 오래고, 배는 고프고...’

노인은 고개를 떨어뜨린다. 소설속의 쟌발장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심문을 마친 재판장의 논고가 시작되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곳 재판장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방치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겐 10달러를, 방청석에 앉아 있는 여러 시민들께도 50센트씩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논고를 마친 재판장 라과디아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담는다. 방청객들도 서둘러 벌금을 내었다. 57달러 50센트가 모아졌다. 그 돈에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노인의 손에 쥐어졌다.

 

한때는 선량한 시민이었을, 한때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성실한 납세자였을 그 노인, 나이는 들어가고 주머니는 비어 늘 배가 고픈 노숙자신세가 된 노인에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이 칡넝쿨만 우거진 정글이었을 것이다.

그 판결의 감동은 이 새벽의 비와 빛이 나의 마음을 적셔주듯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피어렐로 헨리 나 과디아(Fiorello Henry La Guardia) 재판장. 그의 이름은 뉴욕 퀸스의 라과디아 공항( LaGuardia Airport)’ 이름이 되었다.

정치혼란과 안보불안과 경제내리막으로 곤두박질치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 각박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런 속에서도 안일함과 달콤한 이상론에 유혹되어가는 우리들 자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원유매장량 세계 1위이면서도 빈사상태에 빠져버린 베네수엘라의 현실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대립과 갈등과 분열이 끊임없이 부추겨지고, 배려심이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헤아림 같은 따뜻함이 메말라가는 현실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봄비 같은 명약은 없을까. 칼날 위에 선 듯 살벌한 세상을 바로잡아줄 정의와 공익의 칼잡이는 없을까. 당리당략(黨利黨略)을 벗어난 공명정대함은 없을까. 막무가내의 응징보다는 수용과 용서로 모두가 체온을 공감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누군가는 진부한 이상론이거나 공허한 공염불이라고 할지 모른다.


과연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고,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할 수 있을까. 멜로드라마라도 좋으니 눈물 나게 가슴 적시는 인간드라마는 없을까. 내가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공허한 공염불 같은 생각들이 이어진다.

비에 젖는 라과디아 공항에 가서 훈훈했던 그 법정의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싶다. 모르는 사이에 저질러진 공범의식과 무책임을 떠올려 반성하며, 따뜻하고 밝은 세상으로 바꾸는 새벽빛 같은 생각에 잠겨보고 싶다.

 






'권천학의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과평화  (0) 2019.07.24
호국보훈의 달에-6월의시  (0) 2019.07.01
장미의 이름으로  (0) 2019.06.11
가우디건축물에 한글주기도문  (0) 2019.05.15
우즈에게서 아버지를 보았다  (0) 2019.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