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우즈에게서 아버지를 보았다

천마리학 2019. 5. 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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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에게서 아버지를 보았다



  • 오피니언 관리자 (opinion@koreatimes.net) --
  •  
  • 18 Apr 2019

권천학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시인


그는 한 때 ‘골프황제’로 불리웠던 남자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골프선수였고, 골프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이 되었던 남자, 타이거 우즈(Eldrick Tiger Woods). 미국의 프로 골프선수인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그가 지난 4월 15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3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라운드에서 역전 우승, 다섯 번째 그린재킷을 걸쳤다. 그린재킷(Green Jacket)은 골프분야의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대회(PGA)의 우승자에게 입혀주는 우승의 상징이다.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다. 잘나가고 있던 2009년 어느 날 갑자기 불륜과 이혼 등, 각종 스캔들이 터지며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어 교통사고, 고질적인 허리 부상 등 나락의 길로 빠져들어 좌절과 은퇴의 기로에 섰던 그가 모질게 일궈낸 쾌거이기에 세상은 ‘골프황제의 부활’‘22년만의 우승’ ‘막장드라마 빠져나온 우즈’ 등의 타이틀로 떠들썩하다.
1997년, 그가 처음으로 마스터스 우승트로피를 거머쥐고, 첫 그린재킷을 입게 되었을 때 22세의 앳된 흑인 청년이었다. ‘흑인은 오직 캐디로서만 땅을 밟을 수 있다’는 백인 부자들의 놀이터로 알려진 오거스타 내셔날 골프클럽에 입성하여 첫 깃발을 꽂은 후 2001년, 2002년, 2005년에 걸쳐 총 4번의 그린자켓을 입었고, 막강골퍼로서의 명성을 날리며 ‘골프황제’가 되었다.

무적함대였던 등판과 막강했던 어깨가 아버지였다
힘없는 두 다리 사이,
습하고 냄새나는 아버지의 부자지를 주물럭거려가며
내가 태어난 DNA의 통로가 되어준 흔적과
씨앗주머니의 주름 사이사이를 닦는다
퀴퀴한 역사의 어두운 길을 더듬어 들어간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윽하게 나를 들여다보시는
아버지, 부끄러움도 없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
생명의 시원을 찾아 바이칼 어디쯤을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어디쯤을 찾아 헤매며
원시 이전의 시간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응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회로의 어디쯤에서 우린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돌아오세요!

-나의 시 『아버지의 흔적』


그가 처음으로 마스터스에서 우승했을 때 아버지와 함께였다고 한다. 이번에 통산 81번째 우승트로피를 차지하고 그린재킷을 입고 자녀들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모습에 그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 그랬을 모습이 오버랩되어 찡하다. 아버지의 응원을 받으며 출전했던 22세의 앳된 청년이었던 그가 이제는 44세의 젊은 아버지가 되어 고백한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아팠고... 그간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니 수많은 감정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늘 도전이 우리 앞에 기다리지만 계속 싸우고 헤쳐 나가세요.” 그는 지금 우승의 골프선수로서보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의미를 더 두고 있으리라.
마침, 떠도는 이야기 한 토막을 배달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10개’를 고르는 조사였다. 1위는 Mother, 어머니였다. 이의(異意) 없다. 그런데 2위는? 궁금했다. Passion, 정열이었다. 그럼 3위는? Smile 미소였다. 다음 순위를 읽어 내렸다. 4위는 Love, 사랑, 5위는 Eternity, 영원, 6위는 Fantastic, 환상적, 아버지이겠거니 하는 생각은 계속 빗나갔다. 7위는 Destiny, 운명, 8위는 Freedom, 자유, 9위는 Liberty, 자유, 그럼 마지막에라도? 그런데 아니었다. Tranquility,평온이었다. Father, 아버지는 10단어 중에 없다. 허탈했다.


세상이 바뀌어 요즘은 ‘아버지’라는 존재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 사회적 경향에 따라 ‘아버지 교육’, ‘아버지 모임’등 소소한 모임들도 생겨나고 있다. 의기소침해지는 아버지들을 응원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아무리 아버지의 존재의미가 예전 세상에 비해 희미해졌다고 해도, 아름다운 10단어에서 제외되긴 했어도 우리에게 아버지는 소중한 존재다. 지금은 아버지들이 나이 들어 늙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흔들릴 때 듬직한 중심을 잡아주는 저울추(錘)였으며, 풍랑 심한 바다에서 심지를 잡아주는 닻이었으며, 어두운 길 밝혀주는 등대였으며, 외롭고 지칠 때 등 두들겨주던 응원군이었다. 굴곡진 인생을 묵묵히 견디며, 우즈처럼 힘들게 재기(再起)를 했던 어른들이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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