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절대금물 2 가지

천마리학 2018. 12. 15. 08:47




절대금물 2 가지   *   권 천 학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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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응급실에서 나온 다음날, 아침 신문에서 우연하게도 나와 연관되는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미국 메인주의 한 식당에서 ‘바닷가재를 요리할 때 끓는 물에 넣기 전에 마리화나 연기를 쏘여 고통을 줄여준다는 내용이다. 마리화나? 나도 방금 마약의 일종인 몰핀을 사용하고 응급실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응급실로 실려 간 것은 통증 때문이다. 한번 시작되면 숨이 멎어버릴 만큼 아파서 소리조차 낼 수가 없다. 입술이 터지도록 앙다물고 견뎌내지만 결국은 몰핀 주사를 맞아야만 진정이 된다.
이민 온 첫해에 처음으로 시작된 통증은 이후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찾아왔다. 통증의 정도가 너무나 심해서 ‘앓는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멀쩡하다가도 통증이 시작되면 초죽음이 된다. 갑자기 공격해 와서 초토화시키는 칼의 전쟁과 같다. 올해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얼음 딛 듯 조마조마했는데 습격을 받고 말았다. 


이민 첫해, 처음 통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몰핀을 주사하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떨떠름했었다. 마피아, 전쟁, 중독, 패가망신, 매춘, 밀수, 범죄.....등과 함께 마약에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먼 기억도 떠올랐다. 기차통학을 하던 중고등학생 시절, 노리끼리하게 핼쑥한 얼굴로 기차 안이나 역 주변에 어슬렁거리던 아편장이 아저씨들이었다. 의사가 알아서 사용하니 믿는 구석이 있으면서도 껄적지근했다. 통증을 제압하는 데는 몰핀밖에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몰핀 치료가 이번까지 이어져왔다. 지금도 나의 주변에서는 아무리 의사 처방이라 해도 계속 사용하면 좋을 리 없으니 다른 진통제로 바꿔달라고 해보라지만 그만큼 모두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반증일 뿐, 나는 전문가인 의사를 믿는다.


의사들은 아직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병원차트에는 통증의 기록만 쌓여가고 있다. 그동안 몇 차례씩 피를 뽑고, 수시로 혈압을 재고, CT촬영이며 엑스레이며 검사란 검사는 다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의사들 자신이 이유를 찾아내기 위하여 장기(臟器)란 장기를 다 뒤진다. 심지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췌장검사까지 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정상 판정.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의사에게 짜증을 내면, 되레 자기들이 더 답답하다며 싱겁게 웃는다. 통증으로 죽을 것 같다고 하면 통증으로는 절대 죽지 않는다면서 추측성 설명을 할 뿐이다. 처치방법은 오로지 몰핀 투여, 그리고 지켜보는 것이 전부다. 엄살도 부리지 못하는 성미라 통증만 가시면 퇴원하겠다고 나서지만 더 지켜봐야한다면서 풀어주지 않는다. 퇴원할 때 고작 소식(小食)을 권하고, 섬유소가 많은 음식을 조심하라는, 늘 똑같은 말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민망함을 덮는다.
최근엔 오락용 사용이 합법화 되어 시중판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발표가 있자, 마약관련 사업에 대한 투자로 자본시장까지 술렁인다니 그것까지야 내 힘으로 막을 순 없지만 이 기회에 나의 경험을 토대로 마약에 대한 절대금물 두 가지를 말해야겠다.


첫 번째 절대금물은 꼭 의사의 처방 없이 음지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나에겐 최초수단이자 최후 처방이 되는 몰핀, 나 역시 의사를 믿고 사용했다.
나나 바닷가재나 마약류를 사용한 건 맞지만 바닷가재도 나처럼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통 없이 죽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는 노인들에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 역시 의사들에게 맡긴다.


두 번째 절대금물은 호기심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퍼지고 있는 현실이 사뭇 염려된다. 일시적인 고난과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약한 청춘이 염려된다. 마약의 기능 자체가 환각이고 환상이라는 걸 그들도 알면서 사용한다. 의지박약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확고한 인식과, 호기심이나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는 절대적 자기의지이다. 순간의 호기심에 이끌리다보면 통증도 없이 죽어버리는 바닷가재 꼴이 될 수 있다.
환각의 쾌락은 파멸의 통증일뿐,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통증은 쾌락보다 훨씬 유의미한 차원 높은 통증이다. 두려워말라! 통증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그것을 깨달아가며 헤쳐 나가는 삶이 성공적인 삶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 한국일보 23 Nov 2018 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