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세월의강물앞에서

천마리학 2019. 1. 22. 11:24


-반구대암각화이미지입니다.


세월의 강물 앞에서 * 권 천 학

시인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새해, 겨울 한 가운데, 볕 좋은 아침이다.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여는 모닝커피를 내려 창 앞에 섰다. 간밤에 내린 눈이 히끗히끗한 발코니 주변을 에워싼 그윽한 겨울풍경을 음미하듯 짚어나간다. 잎을 다 떨구어내고 맨몸으로 서있는 키 큰 나무들을 배경으로 검초록 빛을 더하는 전나무와 측백나무들이 마음을 편안케 매만진다. 새해맞이로 정연해진 마음이 그윽한 풍경 따라 더욱 그윽해진다.

코끝에 맴도는 커피 향을 흠향하며, 한 모금 소중하게 마신다. 정연하게 고여 있는 시간이 소중해서다. 따끈한 목 넘김. 문득 나지막하게 노래가 흘러나온다.

 


소년은 이노하고 학난성하니

일촌의 광음인들 불가경이라 

지당의 춘초목이 미각하여서

계전의 오엽들이 기추성이라

 





느닷없다

마치 물고랑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듯,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노래가 흘러나오다니. 더듬거리지도 않고 막힘도 없이 술술 끝까지 마친 것이 놀랍다.

기억컨대, 이 노래, 권학가(勸學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아버지로부터인 듯 싶다. 그 시절 목각(木刻) 닭 이야기며, 금도야지 이야기...도 들려주셨으니까. 노래의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자주 입에 올렸다. 그러다가 노랫말 한자(漢字)의 해석정도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복도청소를 하면서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지나가시던 한문선생님이 너 그 뜻을 아느냐?’ 하고 물으셨다. 언제나 푸세 빳빳하게 각을 세운 한복을 입고, 특유의 몸짓과 어색한 억양이 우스꽝스러워 킥킥거리면 버럭 고함을 질러대고, 호령하듯 하늘 천 따지를 앞세워서 별명이 고리타분호랑이선생님이었다. 누구라도 지목(指目)을 받으면 벌벌 떨었다. 지목은커녕 눈길만 받아도 오싹 얼음이 되곤 하던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고 긴장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애초부터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은 듯,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이내 돌아서서 가버리셨다. 그리고 그 다음 한문시간, 교실에 들어 오시자마자 칠판에 한자를 휘갈겨 쓰셨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기추성






그때 한자(漢字), 한문의 뜻을 대충 알게 되었으나 의미의 중요함 보다 회초리를 번뜩이며 호령조 고함 소리를 지를 때마다 오르내리던 선생님의 목젖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그러던 노래가 의미 있는 교훈으로 다가와 새겨진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성년(成年)이 되는 나이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다섯 수레의 책을 읽는데 왜 꼭 남자여야 하는가! ‘남아(男兒)’라는 표현에 일어나는 의구심과 불평을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아버지께서는 공부하는데 남녀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으로 불평을 풀어주시면서 공부(工夫)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셨고, 그 후로 내내 생활의 지침이 되었다.



소년은 쉬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매우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 써야 한다.

연못가의 봄풀이 미쳐 다 깨우치기도 전에

계단 앞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낸다.



 



공부에 때가 따로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극히 적은 몫이다. 세상에서, 인생살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더 크고 더 깊은 진리를 터득하는 큰 공부를 하게 된다. 지성의 체계가 새로워져야 우주의 섭리를 담을 수 있고, 섭리를 깨닫는 개안(開眼)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삶의 의미가 진국으로 깊어지기 때문에 살아갈수록 공부의 의미는 깊어진다. 기존의 지식들, 지적(知的), 지성적 트랜드...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삶의 패턴도 그에 합당하게 바꾸어나가는 것이 요즘 세상의 공부다.

나이 들어갈수록 공부의 필요성이 더욱 새록새록 하다. 젊은이는 젊다는 이유로 열심히 해야 하고, 노령은 노령대로,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멈추지 말아야 할 공부. 그 의미가 여전히 유효한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알게 된 권학가가 반세기(半世紀)가 넘는 세월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 아침 다시 찾아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살아갈수록 미흡함이 부끄럽고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빨라지는데, 공부의 끈을 놓지 말자! 새해의 지침삼아 새롭게 출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