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당신이 버린 1초들

천마리학 2018. 12. 18. 09:54





당신이 버린 1초들


권천학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시인


잠깐, 당신이 낭비한 1초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셨나요? 당신이 버린 1초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아시나요? 당신은 지금 1초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채 시간을 소비하고 계시진 않나요?
이 질문은 나 자신에게 던짐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연말연시, 빼곡한 스케줄들을 소화해 내느라고 분주하게 보냈다. 빈곳이 거의 없이, 두 세 개의 스케줄이 겹쳐있는 달력을 수시로 들여다본다. 매일 뻐근해진 다리와 탱탱해진 종아리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곤 한다. 과연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


반성도 따라와 머리맡에 오도카니 앉는다. 쇠털같이 많은 날이라고 여유를 부리고, 너무 바빠서 아플 시간이 없다고 희희낙락 해가면서 동동거리며 연말연시를 보내는데, 과연 그 바쁨이 나의 인생에 유의미한 일이던가, 공익적인가. 실속 없이 관행에 따르지 않았는가. 정말 낭비해도 될 만큼 주어진 시간이 많은가... 시간 소모에 대한 반성이 꼬리를 문다. 시간은 준엄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비정하기 짝이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은 더욱 다급해서 1초도 아찔하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1년 9개월 동안 갈고 닦으며 별러왔던 UFC 복귀전에서 멕시코의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 있다. 펀치와 킥을 섞은 변칙 공격을 잘도 받아 넘기며 유리하게 경기를 끌고 간다. 체력도 우위이고, 유효타 숫자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5라운드의 막판에서 상대인 로드리게스와 악수를 한 뒤 마지막 공방에서 자신감을 실은 레프트 훅을 터트린다. 경기 종료 10초 전, 삐끗, 웅크리고 있던 로드리게스의 오른쪽 팔꿈치가 솟아오른다. 예상치 못한 가격에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그 순간 버저가 울린다. 경기종료 1초전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트 500m에서 일본의 고다이라보다 이상화는 0.39초 늦어서 은메달에 머물렀고, 체코의 카롤리나 데르바노바는 이상화보다 0.01초 늦어서 동메달을 땄다. 이상화 처지에서 보면 0.39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카롤리나 데르바노바 처지에서 보면 0.01초로 은메달을 놓쳤다. 0.39초나 0.01초는 우리의 일상에서 시간으로 쳐지지도 않는다. 지난 가을 토론토의 평화마라톤에서 1등과 2등은 1초 차이였다.
1초 혹은 1초도 채 안 되는 시간,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그 1초가 빚어내는 희비쌍곡선은 극적일 뿐만 아니라 삶의 판을 뒤집기도 한다. 찰나는 0.013초, 불교에서는 그 0.013초 사이에 생(生)과 멸(滅)이 반복된다고 한다. 이처럼 단 1초의 간극은 엄청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루는 8만6400초, 1년은 3153만6000초... 이렇게 초 단위로 쪼개어 나열하면 좀 놀랄까?


오래 전 웹진 ‘불루노트’를 발행할 때, 발행일인 매월 1일에 1년을 기준으로 하여 초단위로 계산하여 월(月)마다 감산된 숫자로 표시한 일이 있었다. <0000만0000초 남았습니다>하고. 촌음을 실감하자는 의도였는데 독자들의 반향이 남달랐었다.
물리학의 1초는 빛이 30만km를 날아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사고를 당한 사람은 죽고 사는 경계를 넘기도 하고, 지구는 윤초(閏秒)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구의 불규칙한 자전속도 때문에 변하지 않는 1초의 기준이 필요했고, 그 1초는 세슘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시간이라고 1967년에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정의했다. 우주의 시간 150억년을 1년으로 축소하면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진 시간은 0.150초라고 한다.


이래도 실감되지 않는다면 지식채널의 설명을 빌릴 수밖에 없다. 1초는 재채기 할 때터져 나오는 침이 공기저항이 없는 상황에서 100m를 날아가고, 총구를 떠난 총알이900m를 날아가서 표적을 관통하고, 벌이 200번의 날갯질을 하고, 승용차가 1.3대, TV가 4.2대가 만들어지고,.. 자, 이렇게 말해도 1초가 하찮게 여길 수 있나요? 여전히 재깍재깍 변함없는 속도로 1초는 흐르는데요. 바쁘게 시간들을 보내놓고도 돌이켜보면, 삶이 허망함을, 인생이 무상함을, 결국은 명분 없는 명분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냈음을 저리도록 곱씹기 마련이다.


각박하고 처절한 우리 삶의 어느 귀퉁이에서 바로 당신들이 무의미하게 버린 1초의 시간들이 쓰레기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방금 놓친 기차를 바라보는 심정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허재비로 보낸 1초들을 붙잡아 알뜰하게 써야한다. 1초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나는 당신 자신을 생각하며, 

부디, 더 늦기 전에 당신들이 놓친 1초를 붙잡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