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배째라이즘

천마리학 2019. 2. 3. 08:06


 *이미지는 2018년 개통되어 명소가 되고 있는 베트남의 황금빛 다리, 카우방입니다.


배째라이즘’ * 권 천 학

 

 

근래에 한국의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보면 자꾸만 복수극을 떠올리게 된다. 왜 그런지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짐작되고 추측되는 것으로 족할 것 같다. 그러므로 다 같이 공감하면서도 멀리 서있고 싶은 정치 얘기는 저만치 두고, 대신 살아오는 동안 내가 품었던 복수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복수심으로 가득 찬 한 때가 있었으니까.


복수(復讐)! 누구라고 살기가 고단하고 팍팍한 때가 없었을까만, 젊어 한 때 복수심으로 들끓었다. 배신 잘 때리는 세상인심, 가난, 기회상실... 주변에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눈뜨고 겪어야 하는 부조리, 불평등, 편견... 에 절망하고, 분노하며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었다. 시멘트처럼 굳어있는 현실의 벽,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음을 절감하면서도 비참함에 매몰되거나 비굴해질 수는 없었다. 당장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현실에서 대하여 막연한 보복심이 생기고, 그 보복심은 출구마저 없어 보이는 막막함으로 굳어져 끝내는 응어리기 되어버린 복수심, ‘좋다! 잘 사는 것이 복수다!’ 아드득, 이를 갈면서 이른 결론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무능한 자신을 안으로 담금질 해가며 연마해낼 수밖에. 그것은 벼르고 품었던 젊은 날의 비수였고 현실을 타개해나가는 최고의 무기였다.






어린 시절에 읽은 간디를 생각했다. 위인으로 칭송하기 위하여 필요이상으로 미화(美化) 확대하고 있음이 불편했다. 체격도 왜소했고, 내성적 성격에 특별한 능력이나 안목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닌 보통사람일 뿐, 오히려 결핍을 안고, 그 결핍 때문에 나약한 간디가 위대한 간디일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견해였다

그는 배째라이스트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위인화(偉人化)하는 일반적 시각과는 다른 나의 인식이었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식민지나라의 엘리트인 그는 변호사 일을 시작하며 정의를 실현하려 했지만 차별과 편견의 현실에 대적할 수는 없는 무력함을 통감한다. 힘도 없고 경험도 부족한 젊은 그가 지배국가의 부조리한 힘과 거대자본에 맞설 수 없는 현실을 뼈아프게 자각한다.

때리면 맞아가며 배째라! 밟으면 밟히면서 배째라! 막으면 막히면서 배째라! 엎디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의 막무가내, 그것이 최선의 몸부림이었고 결국은 비폭력 무저항주의가 되었다. 그 상황에서 그가 강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배째라이즘뿐이었다. ‘배째라이즘은 물론 내가 만든 말이지만 비폭력 무저항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배째라이즘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선의도 있고 악성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배째라! 식의 막무가내 앞에선 힘 센 쪽이 되레 헛김을 빼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막무가내는 잇속 따지는 계산보다는 오기로 뭉친 뚝심, 오만한 뱃장일 뿐이다. 그저 밀어붙여 하면 된다는 뚝심으로 이익이든 체면이든, 때로는 목숨까지도 몽땅 내려놓고 견디기 때문에 평균적인 힘보다 힘이 세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내식으로 내 갈 길을 간다! 하고 목표에 닿을 때까지 내닫는다. 그리하여 선의(善意)배째라이즘약한 것이 강하다거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논리를 성립시킨다. 가끔은 무지(無知)와 무모(無謀)가 겹쳐 감당 못할 악의적인 악성 막무가내도 있다. 그런 배째라이스트들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똥에 불과하다.


언젠가 형제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잘 사는 것이 복수야하고 나의 의견을 말했다. 여간해서는 나를 두둔하지 않는 엄마가 웬일로 그 말은 큰누나 말이 맞다!’하시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칭찬을 들어본 일이 거의 없다. 아들과 딸에 대한 편견이 곧이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경도(傾倒)되어있는 어머니였다.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며, 때로는 주저앉기도 하고, 곤두박질치기도 하며 젊음을 보내었다. 결코 멈추지 않는 시간에 실려 나의 치열한 삶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백세를 구가하는 시대가 열렸다. 옛날 같으면 생()의 마디로 삼던 환갑(還甲)이 유야무야 되고, 육십도 청춘이 되어, 이모작(二毛作)에 이어 삼모작(三毛作)을 꿈꾸는 세상이 되었는데, 나는 이제 노년에 들었다.






처음 겪는 노년이라서 얼떨떨한 중에도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잘 견뎌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살아내고 싶다. 그런 궁리를 하다 보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다. 물론 좋은 글을 쓰는 것이 해야 할 최대의 일이고, 인생 최종의 목표이지만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깊은 독서와 깊은 명상쯤이야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멈추지 않고 이어나가면 될 일이지만, 그 외에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던 일그 중에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이제라도 도전해보고 싶은데 망설여진다. 이유는 나이와 체력 그리고 주변의 시선이다. 선 듯 결심이 서지 않는다. 아쉬움만 짙어진 채 물러서보지만, 포기가 되지 않는다. 체력이야 맞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고, 하다보면 적응되지 않을까 하다가, 그렇지만 이 나이에... 망설이다가, 나이? 남을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하는 일도 아닌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도전하지 않으면 끝내 이루지 못할 꿈

나이 핑계 삼다니, 누추하지 않은가. 끊임없이 생각만 굴리고 있다.

 

젊은 날을 버텨온 복수심. 이젠 날 선 복수심이라기보다는 느긋한 관조의 복수심으로 남아있는 시간을 채우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젊은 날은 복수심으로 인생을 개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먼 성공, 취하고 싶은 욕망, 따라잡기 어려운 변화에 자꾸만 무너지려고 하는 자신의 운명에... 칼을 갈 듯 복수심으로 버텨내는 한 때, 그 한 때가 인생파노라마의 절정인 셈이다.


인생? 나의 유일한 자산 아닌가. 마치 잘 사는 것이 젊은 날의 복수이듯, 도전이 곧 노년의 무기라는 생각이다. 맞다! 노년이라 해서 도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뱃장으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복수도전이란 말로 바꾸면 되겠다. 젊은 날의 복수, 노년의 도전, 좋다! 못 이룬 꿈을 향한 도전!

아직은 결단하기 전이라서 밝힐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또 한 번 배째라이즘을 실천하는 배째라이스트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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