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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덕종어보' 이미 2년전 문제제기..문화재청 '쉬쉬'

천마리학 2017. 8. 19. 09:36







 문화재청이 "1471년 제작된 것"이라면서 반환받은 덕종어보. 알고 보니 1924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모조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  문화재청이 "1471년 제작된 것"이라면서 반환받은 덕종어보. 알고 보니 1924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모조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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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김종진 청장)이 1471년 제작된 것이라면서 반환받은 덕종어보가 알고 보니 1924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모조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2015년 4월, 미국 시애틀 미술관으로부터 덕종어보를 반환받은 바 있다. 당시 대대적인 홍보가 있었음은 당연했다. 

문화재 실태조사 및 반환 협상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문화재청은 공식 사과를 하지 않은 채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국립고궁박물관, 8월 19일부터)에 덕종어보 전시를 강행하고 있다. 덕종어보는 문정왕후어보·현종어보와 함께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문화재청의 '이상한' 해명... "재제작한 것도 공식 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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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별전의 메인 전시품인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는 지난 7월 초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반환된 문화재다. 덕종어보 전시 강행에 대해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한미외교의 성과로 돌아온 진품 어보들과 함께 덕종어보를 전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지난 21일 덕종어보 전시 철거 요청서를 국립고궁박물관에 제출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18일 '덕종어보 모조품' 보도에 대한 해명을 내놨다. 문화재청은 "(재제작품이라 할지라도) 당시 순종이 어보 분실에 대해 염려해 경찰서장을 계속 불러 조사를 촉구(<동아일보> 1924. 4. 12.)했고 어보를 재제작해 정식으로 종묘에 위안제를 지내고 봉안(<매일신보> 1924. 5. 2)했으므로 '모조품'이 아닌 왕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어보다"라고 밝혔다. 이어 "덕종어보는 1924년에 제작된 것이지만 친일파가 만든 이른바 '짝퉁'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1924년 종묘 어보 분실 기사 동아일보 1924년 4월 12일자 기사로 순종이 어보를 잃어버려 초초해했다는 내용은 있으나 어보 재제작을 지시했다는 내용은 없다.
▲ 1924년 종묘 어보 분실 기사 동아일보 1924년 4월 12일자 기사로 순종이 어보를 잃어버려 초초해했다는 내용은 있으나 어보 재제작을 지시했다는 내용은 없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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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문화재청이 해명 자료에 첨부한 내용을 근거로 <동아일보> <매일신보> 등을 확인해봤다. 확인 결과 '순종이 어보를 잃어버려 초초해했다'는 기사는 있지만, '순종의 지시로 어보 제작이 이뤄졌다'는 보도는 없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순종이 제작 지시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을 사실로 여기고 해명한 것이다. 

또한 "종묘를 관리하고 있던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어보 분실의 책임을 지고 징계대상이 되었다, 어보를 제재작할 리 없다"는 국립고궁박물관의 해명도 다시 확인해봐야 할 사항이다. 당시 이항구의 징계는 '계고'(戒告)로 일종의 경고 조치에 머물렀다. 

이항구는 1932년 '이왕직'(李王職) 차관으로 승격됐다가 장관까지 역임했다. 이왕직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대한제국 황족 의전 및 관련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다. 이왕직 장관은 대신급이었으나, 일본 궁내부 대신의 지휘를 받았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덕종어보, '구리 70% 이상 함유' '친일 제작소 제작'

 이완용 가족 사진. 뒷줄 가운데 사람이 이항구다.
▲  이완용 가족 사진. 뒷줄 가운데 사람이 이항구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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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어보를 다시 만든 곳도 문제다. 1924년 어보를 만든 '조선미술품제작소'는 친일반민족행위자였던 김갑순 등이 주주로 참여한 곳으로 운영주체는 일본인이었다. 이들은 2주 만에 졸속으로 어보를 제작했고, 일반적으로 금이 60% 이상 함유되는 어보들과 달리 덕종어보는 구리가 70% 이상 함유됐다. "(현재 덕종어보는) 재제작품이지 '모조품'이나 '짝퉁'이 아니"라는 문화재청의 변명이 궁색해지는 대목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침탈 등의 기록에 왜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실록은 1927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덕종어보의 경우도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돼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 2월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 지정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럼에도 박물관 측은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된 덕종어보가 비록 문화재는 아니지만, 반출됐던 것을 환수했다는 데 의의를 두는 전시회'라면서 전시를 강행하고 있다. 

덕종어보 전시 철회 그리고 문화재청장 공식 사과 있어야

 김종진 문화재청장이 지난 21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김종진 문화재청장이 지난 21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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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환수는 논공행상을 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강제로 빼앗긴 우리 민족의 정신을 문화재에 담아 찾아오는 과정에서 상처 입은 우리의 정신을 치유하는 행위다. 문화재청이 그런 철학은 생각하지 않고, 문화재 한 점 한 점에 집착하다 보니 덕종어보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한 게 아닐까. 

문화재제자리찾기에서 문화재 환수 일을 하는 사람으로 1924년에 제작된 어보가 1471년에 제작된 어보로 둔갑돼 대대적으로 홍보됐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난다. 동시에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변명만 하는 문화재청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재 환수는 '지금 이 시대'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기에 그들에게 제대로 된 정신을 물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재청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서 덕종어보 전시를 철회하길 바란다. 또한 1924년 제작된 어보를 1471년 제작된 어보라고 홍보한 것에 대해 문화재청장의 공식 사과가 있길 바란다.




'짝퉁 덕종어보' 이미 2년전 문제제기..문화재청 '쉬쉬'

CBS노컷뉴스 김명지 기자 입력 2017.08.19. 08:03 수정 2017.08.19. 09:07 
"기증자 언짢을까봐","문정왕후어보 돌아오면".. 눈치 보며 검증 안해

지난 2015년 미국에서 반환된 덕종어보가 1924년 일본인 소유의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만든 '모조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어보를 반환받은 그해, 관련 전문가가 문화재청에 직접 해당 어보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무려 2년 동안 문제를 쉬쉬해왔다.

◇ 덕종어보에 치명적 오자… "엄격한 왕실, 이런 실수할 리가"

덕종어보의 인문. (사진=한국전각협회 이정호 이사 제공)
지난 2015년, 이정호 한국전각협회 이사 겸 관인위원장은 한 수업에서 학생이 따라 새기는 전각 모양을 살펴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잘못된 글자였다.

해당 전각은 다름 아닌 그해 4월 대대적인 반환식을 치른 덕종어보였다.

덕종어보에 쓰인 글자는 정확히 '온문의경왕지보(溫文懿敬王之寶)'의 7자. 이 이사는 여기서 특히 공경할 경(敬)자를 지적했다. 글자의 왼편 아래쪽에 있는 입 구(口)자(①)를 전서로 새길 땐 보통 口자 그대로, 혹은 양 옆의 세로획을 길게 세워 'ㅂ' 모양으로, 혹은 그 세로획을 약간 기울되 완전히 닫지 않은 절구 구(臼)자 모양으로 쓴다는 것이 이 이사의 설명이다.

관련 자료를 집요하게 파헤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특히 지난 2009년 문화재청 산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행한 <조선왕조의 관인>에 나오는 총 104자의 모든 '공경할 경'자를 살펴본 결과, 이 같은 사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 같은 사실을 문화재청이 모를 리가 없었다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이 이사는 지인인 중국 작가에게서도 “이런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이 이사는 "어보엔 직인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여러 번 획을 구부려 쓰는 기법, 즉 '구첩전'이 쓰이는데, 이것이 완전히 잘못 사용된 것"이라며 "붙이지 말아야 할 선을 붙여 엉뚱한 날 일(日)자를 만든 건데, 이는 전각의 법칙에 맞지 않는 오자"라고 설명했다.

따뜻할 온(溫)자 역시 의심쩍기는 마찬가지였다. 맨 위의 날 일(日)자의 가운데 획이 붙여지지 않은 것(②)이나 물 수(氵)자를 표현하는 세로자 3획 중 가운데 획이 끊겨있는 것(③) 역시 매우 생소한 사례였다.

이 이사에 따르면, 조선왕조에선 예조의 '계제사'에서 모든 어보와 관청 직인을 도맡아 만들어냈으며 이곳에선 글자를 써내는 부서, 주물을 만드는 부서 등이 따로 존재해 철저한 분업이 이뤄졌다. 또 최종적으론 '왕의 윤허'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사는 "아주 철저한 시스템"이라며 "직인을 위조한 자에겐 엄벌이 내려지는 등 위조나 잘못 만들어지는 것에 엄격한 조치를 취했는데, 왕의 어보에 이 같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며 의구심을 품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왕실의 예법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 글자가 새겨진 일차적인 이유는 문화재청도 인정했듯이 덕종어보가 1471년 제작된 진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뿐 아니라 모조품 덕정어보가 일본인이 운영하고 김갑순 등 친일파가 지분을 보유한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제작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관련기사 : 짝퉁 덕종어보, 일본인 운영 '조선미술품제작소' 제품)

문화재청 측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1924년 왕실 업무를 관장한 '이왕직'이 조선미술품제작소에 모조품 제작을 맡겼다고 밝혔다. 당시 이왕직 예식과장은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였다.

◇ 침묵의 시작은 "기증자가 언짢아할까봐…"

지난 2009년 문화재청 산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행한 <조선왕조의 관인>에 등장하는 총 104자의 공경할 경(敬) 중 일부. (사진=한국전각협회 이정호 이사 제공)
이 이사는 2015년 7월 직접 문화재청에 전화를 걸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공식적인 답변 없이 약 2년을 '묵묵부답'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달 이 이사께 전화를 드려 '덕종어보 관련 성분을 분석해보니 당시 의문을 제기하셨던 그 내용이 맞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무려 2년이 지난 후였다.

그사이 문화재청은 덕종어보가 실제 1471년 만들어진 진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해당 관계자는 "처음 문제가 제기됐을 때 얘기하지 못한 것은 불찰"이라며 "덕종어보가 반환된 지 얼마 안 됐던 당시, 선의로 어보를 준 기증자가 언짢을 것 같은 것을 고려한 부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기증자의 '언짢음'이 긴 침묵의 원인 중 하나였단 것이다.

그럼에도 '2년'씩이나 입을 다문 데 대해서는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곧 돌아올 것으로 예상되던 때라 그때 함께 제작 연대를 정확히 밝히려 했다"며 "곧 돌아온다, 돌아온다 하던 것이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고 해명했다.

원인은 결국 문화재청의 깜깜이 행정 자체로 귀결된다. 문화재 관련 자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화재청엔 환수 관련 법적 전문가가 한두 명 정도뿐"이라며 "문화재 검증 등 적절한 절차가 지켜졌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등 환수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한편 문제가 생겼을 때 쉬쉬하지 않도록 할 존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BS노컷뉴스 김명지 기자] divine@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