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4월,우리를밟고간4월의 재앙들.....설타나호(Sultana

천마리학 2016. 5. 17. 06:45

 

  

 

 

4월, 우리를 밟고 지나간 4월의 재앙들    *    權 千 鶴

-세월호, 체르노빌.....그리고 설타나호(Sultana).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일찍 피어 지고 있는 꽃들처럼 4월이 지고 있다. 지금 어디쯤에선 목련도 지고 있으리라.

일찍이 잔인한 달로 낙인찍힌 4! 4월이 올해에도 우리 곁은 지나고 있지만 누군가의 가슴 한 곳에선 아픔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을 것이다. 잊어지지 않는 상처 때문이다. 잊혀져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잊어야 할 것들은 잊히지 않기도 하고, 잊지 말아야할 것들이 쉽게 잊어지기도 한다. 잊어지는 아픔은 더 아프다. 목련이 피고 다시 피어도 우리 가슴에 한 번 새겨진 아픔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매듭이 풀리지 않은 채 우리가슴을 긁고 있는 세월호..... 그리고 설타나호(Sultana).

 

크든 작든 모든 존재는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도 함께 품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의 시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존재해 나갈 미래와 이어져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모든 사고는 철저하고 정확하게 파악되고 마무리 되는 과정에서 교과서여야 하고, 그것이 미래를 위한 화살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모퉁이가 길의 끝이 아니라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4월을 보내면서, 베르테르의 편지 대신 4월에 우리를 덮친 사고들을 떠올려본다. 당장에 구마모토의 지진도 심각하고, 이미 지나간 네팔지진도 4월의 일이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사고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다. 천재지변이야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지만,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불상사는 우리를 더욱 절망시킨다. 2년 전 우리의 가슴을 훑고 지나간 세월호 침몰사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그리고 설타나호 침몰사고. 모두 4월의 재앙이다. 이 사고들이 잊어지지 않아야할 이유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人災), 바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사고이기 때문이다.

 

2014416,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 근처에서 청해진 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사고(世越號 沈沒 事故)는 바로 우리의 일이기도 하고 일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이 선명하다.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이 사고는 아직도 풀지 못한 매듭들로 엉클어져 있어 더욱 답답하다. 낡은 배, 무리한 승선, 인간성을 잃은 승무원..... 곳곳에 스며있는 탐욕과 부패의 증거들이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한다.

 

기억 속에 박혀있는 또 다른 재앙인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는 1986년의 426일이었다. 점검을 위해 다음날로 가동중단이 예정되어있던 원자로4호기. 냉각펌프와 다른 제어장치들을 돌리는 발전기가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1분이 더 필요한 구조적 문제점이 있었다. 1분의 시차를 보완하기 위해, 차석 엔지니어였던 아나톨리 댜틀로프가 전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전력공급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출력을 낮추는 실험을 감행하려 하자 다른 과학자들이 반대했다. 그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강행한 결과 원자로 4호기는 폭발했고,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어 구소련 일대는 물론 유럽 전체가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아나톨리 댜틀로프가 무리하게 강행한 이유는 공산당과 사이가 좋지 않은 그가 실험 업적을 앞세워 수석엔지니어로 승진하기 위한 욕망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과욕과 비틀어진 판단이 그 한 사람의 운명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나아가서 인류의 미래에까지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왜곡보도다. 발표된 사망자 4천명이라는 숫자는 허위이다. 훨씬 많다. 피해 상황도 훨씬 심각하다. 정부의 의도적인 축소, 왜곡 보도로 인하여 사람들은 더 많은 정신적 고통까지 당했다. 몇 해가 지난 후 한국의 시중에서 판매되는 유명식품회사의 토마토케찹이 체르노빌 산()이라는 것이 밝혀져 한 때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내 잦아들고 말았다.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체르노빌레츠들은 심각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여파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잊어가고 있다. 사고 자체도 잊어서는 안 될 인재이지만 물리적 힘에 의한 축소, 왜곡은 그것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것인지를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처절하게 일러주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가려진 그러나 우리가 돌이켜봐야 하는 또 하나의 4월의 재앙. 1865427, 미국의 설타나(Sultana) 침몰사고이다. 타이타닉사고보다 더 많은 1547명의 인명피해를 낸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희석되고 결국은 기억 저편으로 침몰되어버려 아는 이 드물다.

그 해 49, 4년간의 남북전쟁이 끝 나고, 닷새 후에 섬터요새(Fort Sumter)에 걸려있던 반군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간다. 축하의 종이 울린 그날 밤 저격당한 링컨대통령이 다음날 새벽에 사망하고 만다. 426일에 링컨대통령 암살범 부스가 암살됐다는 보도로 흥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음 날 새벽 설타나호가 미시시피강에서 침몰한다. 메스컴은 21일부터 워싱턴DC를 출발하여 52일에 장지(葬地)인 스프링필드에 도착하는 링컨대통령의 장례식 보도에 열을 올린다. 설타나호 사고는 수면으로 떠올랐다가 그럭저럭 묻히고 만다. 역사는 늘 강자 편에 서고 메스컴은 그 수발에 바쁘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이 더 이상 사망소식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된다. 정황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주목할 것은 타이타닉의 승객들은 대부분 부자나 유명인사들이고 설타나호의 희생자들은 가난한 시골사람들과 5달러의 귀가비용을 받고 귀향하는 전쟁포로들이라는데 있다여분의 배가 3척이나 있었는데도 선주와 군부가 결탁해서 승선인원을 훨씬 초과한 2400명을 한 배에 몰아 실었다. 돈 욕심 때문이었다. 낡은 배에 보일러까지 고쳐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의 목숨보다는 돈이 더 우선이었던 바로 그 점이 세월호와 닮아서 굳이 설타나호 침몰사고를 들춰낸 것이다. 약자의 삶도 귀중한 삶이고 약자의 역사도 중요한 역사다. 우리의 세월호는 꽃다운 청춘들이었기 때문에, 설타나호엔 젊음을 전쟁에 바친 청춘들이기 때문에 더욱 아리고 아프다.

어떤 이유로든 사실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사람의 목숨과 관련되어있는 사건사고는 우선 돼야한다. 권력의 힘이나 일부의 탐욕에 의해서 사고가 왜곡되어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묵살, 무시되는 것은 또 하나의 사건사고를 끌고 오는 것이며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모퉁이를 돌아도 길은 이어진다.

4월이 모퉁이를 돌고 있다.

세월호의 매듭들도 제대로 풀리고,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사고들을 상기해가며 모든 일들을 순리대로 풀어내어 우리들의 미래가 보다 밝아질 수 있어야겠다. 올 봄에 진 목련이 다시 필 내년 봄, 목련이 지고 또 져도 4월이 참담하지 않도록, 진정 봄다운 봄으로 다시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4월을 보낸다.

 

* 2016412일 

* 한국일보 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