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중뿔나게 살자-로빈 윌리암스

천마리학 2014. 8. 18. 21:34

 

 

 

2014-08-15
“중뿔나게 살자” -당신을 기억 할께요, 로빈 윌리엄스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했다는 뜻밖의 소식에 지난 기억들을 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티뷰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정황상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우울증이 우리의 기억에 남은 또 한 사람을 데려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는 외계인으로 우리 삶에 도착했다. 그리고 인간 영혼의 모든 요소를 고루 어루만지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우리를 웃게 하고 울게 했다.”고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로빈 윌리엄스는 나에게도 특별한 존재로 남아 있다. 더 정확히 따지면 나에게보다는 나의 딸에게다. 그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로 널리 알려질 무렵, 딸은 고등학생이었다. 그 영화를 보며 열광하는 사춘기 팬 중의 한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딸은 대학교 입학시험과 진로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문과? 이과? 어느 대학?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물음표의 연속이던 중요한 시기에, 결정의 갈림길에서 잇달아지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까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외국유학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다. 실력도 문제지만 경비가 만만찮아서 또한 문제였다. 고민 끝에 딸이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그, 로빈 윌리엄스였다. 딸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짐작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진로문제에 대한 고민과 대학의 진학을 고려한 결과 당신이 있는 당신 나라로 유학을 가고 싶은데 돈이 없다.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비용을 장학금으로 대주면 당신 나라에서 성공하여 갚겠다.”는 일종의 흥정이었다. 


 비밀편지를 보내놓고 기다리던 딸에게 그에게서 직접 쓴 손글씨의 답이 왔다. 그래서 나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사진과 함께 동봉해온 사진은 A4용지 크기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답의 내용은 “너의 뜻은 잘 알았다. 너는 충분히 너의 노력으로 대학에도 가고 너의 인생길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믿는다. 너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바란다. 나중에 성공했다는 너의 소식과 함께 너를 만나기를 원한다. 지금 돕지 않은 것이 미안하다.” 


 딸은 그의 편지와 사진을 셀로판지로 싸서 고이 간직했다. 지금도 딸의 과거 보따리들 속에 들어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전 세계로부터 그에게 날아드는 편지가 얼마나 많을까(그의 답 편지 속에 하루에 몇백 통의 편지를 받는다는 말도 적혀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편지들 중에는 나의 딸과 같이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살하지 않고 손글씨로 답을 써 보낸 그의 성의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때부터 그는 우리 모녀에게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 ‘미세스 다웃 파이어’를 보면서 정말 이웃에 살면서 어려움을 의논하는 아저씨 같은 친근함으로 웃어 제치면서 딸은 농담을 날렸다.


 “윌리엄스 아저씨. 기다려요.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찾아갈 테니!” 


 이제 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제 힘으로 서는 삼십대 후반의 어른이 되었다. 로빈 윌리엄스가 막을 내린 지금이 63세라니. 그렇다면 딸이 편지를 보낸 그 무렵엔 그는 갓 사십대 초반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이미 그는 수많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요청과 부탁과 도움에 답해야 했을 부담감을 갖게 되고,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굳어지지 않았을까? 그러다보니 그의 삶은 나날이 보람 있어야 하고, 의미 있어야 하고, 발전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왜 없었을까. 


 주변의 기대와 호응이 많으면 많을수록, 크면 클수록, 삶은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는 삶을 짊어지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 역시 잘 안다. 주변의 기대와 호응이 삶의 의욕도 되지만 장애도 된다는 것도 안다. 겉으로 보기보다는 내면으로 스며드는 중압감과 사명감, 현실적으로 그 사명감에 완벽하게 충실할 수 없다는 자괴감도 따를 것이고, 그것이 늘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우울증의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결국 자살에 이르지 않았을까.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대사처럼, 나처럼 그리고 누구나처럼, 그는 삶의 목적으로 시와 미, 낭만, 사랑으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윌트 휘트먼의 시를 들려주며 획일적인 교육에 찌든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자유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던 키팅 선생님, 나처럼 그리고 누구나처럼 그도 늘 영화 속의 키팅 선생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마따나, 그가 외계인으로 우리 삶에 도착했듯이, 욕구도 많고 충동도 많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각자가 외계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위의 바람이나 경향에 휩쓸리지 않을 단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나 또한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간에…” 학생들을 부추겨주던 영화 속 키팅 선생님의 말처럼 되기 위해서, 되지 못해서 끝내 우울해졌는 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그렇듯이, 누구라도 그렇듯이.


 이제 그를 추억으로만 기억해야 한다. “그가 기억될 때면, 초점이 로빈의 죽음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줬던 셀 수 없이 많은 기쁨과 웃음의 순간에 맞춰지기를 희망한다고 한 그의 아내 슈나이더의 말처럼 그를 다정하고 선량한 웃음꾼으로 기억함과 동시에 외계인처럼 살아야하겠다는 다짐도 한다. 

 

 외계인이란 사람과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 그래서 특이한 모습과 특이한 사고를 가진 중뿔난 존재이다. 그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무슨 문제가 그의 삶을 63세로 멈추게 했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지만, 아직은 젊을 수 있고, 아직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 나이에서 마감하다니, 그는 끝내 외계인이 될 수 없었을 지도 모를 그의 죽음 앞에서, 각자의 삶을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외계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삶, 나만의 유일한 세계를 구축해나가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중뿔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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