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드디어 답을 찾았다

천마리학 2014. 4. 5. 06:16

 

 

 

 

 

드디어 답을 찾았다 * 權 千 鶴

-모기 잘 물리는 이유

 

 

신문을 살펴보다가 엇! 눈길이 머문 곳, 피부에 콜레스테롤 정도 높으면이라는 중간제목 아래에 큰 활자 고딕으로 모기에 잘 물린다라는 큰 제목이 있고, 그 두 줄 옆의 여백에 자리 잡은 길쑴한 다리와 더듬이의 모기 삽화. 바로 이거다! 얼마나 궁금해 하던 일인가. 다른 기사 제치고 그것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모기나 벌레에 유난히 잘 물린다. 풀에도 잘 베인다. 햇볕에도 잘 익는다. 그런데, 그동안 모기에 잘 물리는 이유로 알려지기론 땀을 많이 흘리거나, 몸을 깨끗이 씻지 않거나, 향수나 화장품 등 자극적인 냄새 때문이라고 해왔다. 몸을 자주 씻지 않아서라니, 들을 때마다 민망했다. 거기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도 아니다. 가려워서 긁는 일도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목욕이나 샤워를 자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도매금에 넘어가는 것이 찜찜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과학이나 의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의학이나 과학이 그렇다는데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럴듯한 다른 이유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부정하기엔 역부족이다.

피가 달아서 그렇다고도 한다. 피가 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피가 산성이라는 의미쯤으로 짐작만 할 뿐, 속 시원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믿을지 모르지만 몇 해 전 피검사에서 청소년기의 맑은 피를 가졌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었는데, 여전히 나만 골라 무는 모기가 얄밉고 무섭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나는 벌써 모기에 물리고, 가려워서 쩔쩔 매면 좌중에선 처방이랍시고 또 그 말, 땀이 많이 나서, 샤워를 잘하지 않아서라니 내참! 그럴 때마다 목욕도 자주 한다, 샤워도 방금 했다고 변명처럼 대꾸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왠지 듣는 둥 마는 둥,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궁색도 한두 번, 그래서 결국 그래, 나는 드런 년이야!’ 하고 우스개로 일찌감치 분위기를 무질러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누군가는 틀림없이 숫모기일 거야하고 받아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마뜩찮다. 의학적, 과학적으로 뒷받침될만한 답이 없으니 억울해도 모기 물린 자리에 침을 발라가며 견디는 수밖에.

 

언제부턴가 스스로 또 하나의 답이 찾았다. 피부가 약하다는 것. 그러나 아직까지는 공인(共認)이 안 된 나 혼자의 생각일 뿐. 의학적 과학적 증명이 발표되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피부만이 아니라 손톱도 약하다. 손톱이 다른 사람에 비해 붉다. 친구들은 붉은 내 손톱이 예쁘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은근히 기분 좋았지만 그때는 피부든 손톱이든 약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난히 잘 찢어지는 손톱 때문에 불편할 때가 많았다. 옷을 입다가, 가방의 지퍼를 열다가, 부엌일을 하다가…… 걸핏하면 뒤집히고 걸핏하면 찢어지는 손톱. 어느 한 손가락의 손톱이라도 성한 날이 없이 보내는 기간이 잦다.

찢어진 손톱이 다 자랄 때까지 밴드로 감싸야 안전했다. 밴드 붙인 것 자체도 깔끔해 보이지 않고, 더러움도 쉬 타서 수시로 갈아붙여야 한다. 불결해 보일까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손을 내밀기가 저어될 때가 많다. 특히 식사준비를 하고 식탁을 차릴 때도 아무리 정갈하게 관리한다 해도 더럽게 생각할까봐서 밴드를 떼어내기도 했다.

보통 여성들이 뜨거운 그릇을 잘 든다. 살림으로 단련되어서다. 그런데 나는 뜨거운 국물그릇이나 컵을 들지 못해서 마치 엄살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쓰는 컵들은 모두 손잡이가 달려있어야 한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호강스럽게 사는 탓이라고 했다. 나 스스로도 몸으로 하는 노동이란 원고를 쓰느라고 컴퓨터 자판을 치는 일 외에는 손을 쓰는 작업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다. 실정을 잘 아는 딸은 밖에 나가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공주병 환자로 아니까요 하고 농담 섞인 충고를 하면서도 커피숖의 커피 컵조차 이중삼중으로 겹쳐서 받아온다.

 

뒤늦게야 손톱과 피부가 얇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모기 잘 물리는 이유로 삼긴 했지만 여전히 땀을 많이 흘리거나, 냄새가 나는 사람이 모기에 잘 물린다고 굳어져있는 일반적인 상식에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 못내 억울하지만 그래 나는 드런 년이다!’를 농담으로 던지며 웃어넘기는 수밖에. 내 생각엔 틀림없이 다른 이유가 있을 법 한데, 있어야 하는데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그저 모기에게 안 물리도록 애초부터 방편을 쓰는 수밖에 없다. 긴 소매의 옷을 입던지, 아예 풀밭근처에 가지 않는다던지.

 

 

 

 

몇 해 전 또 물것 때문에 곤욕을 치룬 일이 있다. 사돈내외와 함께 온 가족이 타두삭으로 고래 구경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배를 타고 대서양으로 나가 바닷물 속에서 언듯언듯, 고래가 그 미끈한 등허리와 날렵하게 꼬리로 물을 쳐 올리는 장면을 보며 시원하게 즐기고 돌아올 때까진 좋았다. 구경을 마치고 바닷가 언덕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결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목뒤가 뜨끔뜨끔. 또 물렸다. 조그만 파리였다. 서너 군데가 금새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려워졌다. 안사돈이 핸드백에서 스위스제 비상용 연고를 꺼내어 발라줬다. 아예 그 연고를 받아 계속 발랐지만 삼사일 고생을 했다. 그런데 그 여파가 길었다.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게 나았는데, 시간이 가도 가끔 그 자리가 찌릇찌릇 날카로운 통증이 번개처럼 금을 긋고 지나가곤 했다. 그 증상이 오륙년 계속되었다. 나중에야 그게 모래파리(sandfly, 샌드플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유증이 남았던 몇 년 동안까지도 피부 약한 댓가를 단단히 치룬 셈이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모기 잘 물리는 사람은 피부에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아서라는 것. 다분히 학문적인 위엄을 지닌 답이 아닌가. 왜 피부에 왜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은지,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지만 일단 의학적 과학적 연구결과일 테니까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은 아니지만 최소한 샤워 잘 안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증 샷을 받은 셈이다. , 그동안 과학은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언제쯤 인간성 좋고 열정적인 사람이 모기에 잘 물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올 날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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