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一鳥(일조)

천마리학 2014. 3. 26. 01:42

 

 

 

一鳥 * 權 千 鶴

 

 

一鳥에게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一鳥(일조)는 최근에 나의 최고령 독자인 어르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호다. 메일의 끝에 춘악 ◌◌◌ 로 마감되어 있어서 어르신의 호가 춘악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춘악’, ‘봄산이라는 의미의 春岳이지 않을까 짐작하며 이제 앞으로는 어르신춘악이라는 말을 섞어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 난감한 일이 생겼다.

지금까지 2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보내던 부동산 캐나다에 이제 그만 원고를 멈출까 계획 중이었다. 너무나 바빠서다. 실은 작년 연말로 그만 둘 작정이었는데, 펄쩍 뛰는 이 사장의 반대에 멈추지 못한 채 두 달을 끌어오고 있었다.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이다. 수시로 한국에 원고를 보낼 일도 이어지고, 올해엔 출판할 책의 원고도 준비해야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뤄만 오던 나의 개인적인 일을 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까지만 이번 주까지만, 하며 미루다가 벌써 3월이 되었다. 그런데 또 며칠 전에 일본에서 나의 시집이 번역 출판될 계획으로 원고청탁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자잘한 일들을 잘라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던 차였다. 마침 삼일절인 오늘 아침, 애국시 한 편을 신문사에 보내고, 월간지의 화보용 시를 보내고, 부동산 캐나다에 매주 보내는 것은 끝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는데, 어르신으로부터 보내 온 메일 내용을 보고 난감해지며 또 다시 갈등하고 있다.

 

소식이 없어 일조가 그동안 어디론지 날아 가버린 줄 알았다는 말씀과 함께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228일의 부동산 캐나다에서 실린 글을 읽고 비로소 돌아왔구나하셨다는 것이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소식을 알게 되어 여하튼 반갑다는 말씀과 함께 휴대폰을 새로 샀다니 번호를 알려 달라. 기다리겠다고도 하셨다. 바로 지난 주 나간 [느리게 살기]를 읽으신 모양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느리게 살기]는 한국에 살 때부터 느리게 살기를 작정하고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가 토론토로 와서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차를 사지 않고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겪은 이야기와 함께, 핸드 폰 없이 지내다가 작년 여름에야 데이케어에 다니는 손자들의 연락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만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글을 쓴 시점이 작년 여름이고, 내용 또한 작년 여름의 이야기다. 초벌만 써놓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들은 많은데, 시간이 촉박하여 비교적 손 안대고도 보낼 수 있는 글이 그 글이어서 보낸 것이다. 그런데, 어르신, 춘악 선생님께서는 글의 내용을 현재로 이해하시는 것이다. 워낙 연로하시니 글을 정확하게 옴니암니 따져가며 읽으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발표된 지금의 시점으로 받아들이시고는 핸드폰 번호를 알려 달라 하셨으니, 그간 알려드리지 않은 것이 들통 난 셈이다. 얼마 전에도 다른 글을 읽으시고도 그동안 여행 다녀오느라고 소식이 없었구나 하고 받아들이시기에 가만히 있었다. 다소 틀리게 받아들인다 해도 중요한 요점이 아니거나 문제가 되는 내용이 아닌 이상, 90세의 독자가 내 글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읽으신다는 이유만으로 일일이 지적한다거나 제동을 걸 수가 없는 것이 나의 처신이다.

그건 그렇지만, 난감한 것은 앞으로 원고를 계속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려는 찰나에 또 다시 나의 뒷덜미를 잡는 것과 같아서다. 원고 보내기를 멈추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 어르신께는 나의 글이 유일한 소통방식이다. 나와의 소통만이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이기도 하다. 물론 메일이 있긴 하지만, 또 핸드 폰 번호를 알려드리면 소통방법이 한 가지 더 늘어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쓴 글을 통하여 직접 읽으시는 재미와, 나의 생각을 전달받고 짐작하고 헤아리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독서량도 줄어들 연세에 그나마 읽을거리가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될 것이다. 연만하시다보니 친구도 드물어졌고, 더구나 함께 만나 이야기할 친구는 더더욱 드물 것이다. 가족이 있다한들, 그것과는 또 다르다. 가족 아닌 사람과의 소통, 그것은 생활만이 아니라 사고(思考)의 범위까지 축소된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곧 바깥세상인 셈이다. 그러므로 어르신의 글 읽기는 비록 나와의 소통만이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로서도 소중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진중해질 수밖에 없다.

 

일반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바꿔 말하자면 내 글을 즐겨 읽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지는 나도 모른다. 가끔 연락을 해오는 독자들이 있기도 하고 우연히 어느 자리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맞이하면서 인사를 나누게 되기도 하고 또 자주 소식과 안부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절절하게 기다리는 고령의 독자는 드물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단 한 사람의 진지한 독자만 있다면 성공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개인주의적이고, 바쁘고, 읽지 않고,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등등의 시대반영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고령의 어르신 독자가 생겼고, 딱 한 번 만나 뵈었다. 한가하게 어르신을 자주 만나드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메일이나 전화를 자주 하지도 못했다. 마음 같아서야 나의 아버지 또래의 연배이시니 더욱 뫼시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마음뿐이다.

 

제목으로 단 일조(一鳥)는 나의 팬이 되신 춘악선생님께서 내 이름 권천학을 머리에 담고, 명상에 들어 떠오르는 그림을 통하여 정했다고 하셨다. ‘일조라는 호를 지어주신 후로는 일조라고 부르신다. 당신께서 직접 부르시고 제작하신 우리의 옛가요 씨디를 선물로 보내주셔서 간직하고 있다. 젊어서 그렸던 유화도 손이 굳었지만 다시 그려서 주시겠다고도 하셨다. 잠시 난감함에 빠져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니, 이렇게 쓰는 글이 어르신의 마음을 거슬릴지도 몰라서 읽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 읽으시더라도 노여워하지 마세요. 춘악선생님!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해주신 고마운 분, 아버지를 생각하게 하시는 어르신께서 그저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갈등은 하고 있지만 나는 지금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복잡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어보자. 결정은 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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