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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노숙]독후감-손정숙선생님의 곡비의 노숙

천마리학 2014. 9. 27. 09:15

 

 

 

 

 

 

 

 

곡비의 노숙(露宿)

-손 정 숙(수필가)

 

 

 

시인이 아니더라도 한 마디 감동을 곁붙이 하고 싶은 시집 권천학님의 '노숙(露宿)'을 읽었다.

천 마리 학이라니 퍼뜩 자세부터 바로 앉게 하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천의 날개'로 닉네임을 고쳐달고 아예 훨훨 활개짓하는 천마리 학의 역동성을 내 뿜고 다닌다.

 

시집 '노숙(露宿)'은 머리 둘 곳이 없어 한데서 이슬을 맞고 밤을 새는 홈리스나 초라한 나그네의 한 숨 섞인 넋두리가 아니다. 편안히 한 곳에 안주 할 수 없는 내적인 감성의 성숙한 열매가 용트림하다 튀어나간 길 위에서의 이야기다.

인생의 길이 거치는 온갖 구비마다에서 펼쳐지는 자아와 대상과의 교류, 마찰과 투쟁의 시는 권시인의 인간성만큼 경쾌하고 단호하고 다정하다. 그것은 시인은 한 세대를 같이 건너는 모든 이들의 고통,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의 짐을 친히 져 주어야 한다는 그의 마음 밭에서 연유한다.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겠다고 작정한 이후,

나는 노숙(露宿)을 시작했다.

세상 귀퉁이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는 나의 거처,

세상 귀퉁이 어디에도 없을 거처,

버리기로 했다.

 

은둔과 칩거,

그러나 내내 시인으로 살아왔다.

 

……하략……

 

-서문 중에서

 

 

'노숙'에 실린 66편의 시들은 나에게도 파고드는 힘이 순하고 신속해서 음미하는데 시간이 따로 필요치 않았다.

수정궁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온 천지가 갑자기 몰아친 눈보라에 지붕이 날아가고 나무가 쓰러지고, 전깃줄이 끊어져 너덜거리는 암흑세계로 토론토의 거리를 먹칠하던 지난 년 초. 냅색에 노트북 하나 짊어지고 내 집을 찾아왔었다. 얼음무지개 영롱한 나이아가라에서 콰르릉거리는 폭포수처럼 밤새워 이야기나 실컷 흘리자며 싱긋이 웃던 낯익은 음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노숙'은 조금도 부담을 주지 않았다.

 

 

꽃자루의 행랑채

씨앗의 숨소리가 들리는

이슬의 집에서

하룻밤

 

어둠 깊은 씨방에도

하룻밤

 

태풍의 눈

기막힌 고요 속 절벽에서도

하룻밤

월식(月蝕)의 일그러진

비탈

비좁은 들창 너머

종점 없는 바람의 길로 흘러들어가는

풍찬노숙(風餐露宿)

목숨 한나절

 

-'노숙(露宿)' 전문.

 

유명한 무명시인이 되겠다고 작정한 시인의 발걸음은 명쾌하기 한이 없다.

 

 

봄이면

모자를 눌러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간다

나뭇가지에도 걸터앉고

풀잎더미에도 주저 앉는다

 

웅덩이에고여 있는 한 떼의 시간들이

태엽을 탱탱하게 조여 감아서

쏘아대는 빛 화살

 

속눈썹에 엉겨 붙은 해의 살 들이

오랜만의 외출을 눈부시게 한다

 

그늘 속을 관통할 때마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시간들이 푸득거리고

주저앉아 있던 풀잎들도 일어나

재깍초깍재깍초깍재깍재깍초깍초깍재깍초깍……

싹트는 소리로 초침을 닦기 시작한다

모자를 벗어들고 돌아온 봄외출이

불면의 의자에 앉아 따라 마시는

시간의 즙

황금잔 속의 혁명을 지켜보는

봄 그리고 밤

 

-'모자를 쓴 시간이 대문 밖으로' 전문.

 

 

그러나 시간을 따라나선 그의 발걸음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드디어 시인의 숨통이 막혀온다.

 

 

탈출하고 싶다

시멘트골조 딴딴한 허공

심장의 고동소리와 맥박소리를 엿듣는

벽 속의 귀

숨 막히는 빈 집으로부터

 

파헤쳐진 길바닥과

열려있는 맨홀속의 궁창으로부터

 

……중략……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밀려가는

합성세제 거품으로부터

시립병원 영안실로 끌려가며 내지르는 소름돋는 미움미움미움미움……

 

탈출하고 싶다

찌그러진 동전으로 채워지는 공중전화

푸른 낙엽의 거리

깡통들이 굴러다니는 도시로 부터

 

-'탈출하고 싶다' 중에서.

 

 

사위가 무겁게 가라앉은 시간. 마치 쏟아지는 별 아래 홀로이 듯 온 몸이 떨릴 때가 있다.

길을 내며 걷는 나그네는 어디서나 추위를 타는 노숙자일 수밖에 없다.

 

 

……나는 수 없이 죽었다. 죽어나간 이전의 삶을 태운 재에서 수습한 사리가 곧 시였고 그 시는 곧 효시(嚆矢)가 되었다.

 

……중략……

 

세상이 흔들리면 삶도 흔들린다. 늘 아파서 몸져누운 세상의 뼈마디가 아프다. 누군들, 늘 흔들리며 그 세상을 건너는 일이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시인인 나는 나의 삶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여야 한다. 그래서 늘 시 앞에서 경건하고 진지하다.

-‘후기중에서.

 

 

그의 곡비는 우선적으로 자신을 대상으로 쏟아내는 피 울음이다.

밴쿠버로 옮겨간 또 다른 노숙지(老宿地)에서 이 시대의 슬픔과 고통을 재가 되도록 울어주는 곡비의 울부짖음이 내 귀에 아름답게 울림은 그것이 구원의 노래 효시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