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짠순이’ 공감 * 권천학

천마리학 2014. 2. 21. 21:11

 

 

 

짠순이공감 * 權 千 鶴

 

 

우연히 종합편성채널 A의 토크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시월드라고 지칭하는 시어머니 세대와 며느리월드로 지칭하는 며느리 세대의 출연자들이 한 가지 테마를 가지고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오락프로그램이었다. 시월드 즉 시집살이세상이라고 풀면 비슷할 것 같다.

그날의 이야기 주제는 사교육비에 대한 것이었는데 일단 며느리 측에서 누군가가 일반적으로 평균 월 250만원 정도의 사교육비가 든다고 운을 떼었고,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 세대들은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원주씨가 더 놀라는 표정이었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MC는 그 자리에 며느리 편으로 참석한 전원주씨의 둘째며느리에게 이번에 딸을 명문대에 보내셨는데 한 달 교육비를 얼마 정도 쓰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며느리는 시어머니(전원주 씨)가 놀라실까봐 조금 두렵다는 말을 앞세우더니, “아이들 사교육비가 제일 많이 들었을 때는 큰 아이가 고3이고 작은 아이가 고1이던 방학 때였는데, 당시 한 달 600만 원 정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시어머니 세대의 출연자들은 모두 눈이 커졌고, 며느리 세대 출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분위기로 확연하게 다른 반응을 보여 세대차이가 있음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전원주씨, 아마 내 짐작으로는 기절 직전 까지 가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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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계 대표 짠순이로 이름이 난 전원주 씨. 그분은 평생을 연기판에서 늘 뒷전이었다. 튀지 못하는 외모로 언제나 단역이거나 조연, 조조연이었다. 푼수기 다분한 수다와 시도 때도 없이 웃어젖히는 너털웃음이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노년이 되어서 토크쇼나 행사에 자주 등장하였다. 소위 뜨기 시작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고, 고진감래(苦盡甘來)의 표본이 되었다. 드디어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이루어낸 이른 바 의지의 한국인에 속한다. 그 세월이 오기까지의 피나는 인내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사교육비가 문제시 되어온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님을 잘 안다. 하지만 한달 평균 250만원이라니, 무슨 교육을 시키기에 그럴까? 과연 그렇게 고가의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자녀교육을 시키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을까. 따라가지 못하는 부모들은 죄의식을 가지게 되고, 자식들은 불평이 늘어날 것이다.

250만원은커녕, 한 달에 백만 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춥고 어둡게 살아야하는 허리띠 졸라맨 사람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데, 소수의 화려한 생활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배신감 내지 위화감만 조성될 것이 뻔하다.

일부 잘 사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일일 텐데, 방송에서 그런 식으로 공개되니 일반인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마치 방송이 사회분위기를 선동하는 것 같아 찜찜했다. 그건 그렇고,

나도 전원주 못지않은 짠순이 과(). ‘모든 물건에는 물건으로서의 예의가 있다고 주장하며 절약을 강요하는 나 때문에 우리 식구들이 불편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내 밑에서 자란 딸이니 크게 낭비하거나 사치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눈엔 허실이 많아 보여 눈에 띌 때마다 지적하곤 했다. 지적당할 때마다 딸이 하는 말, ‘아무리 절약해도 엄마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한다. 한편으론 싫든 좋든, 내 말에 따르느라고 불편을 겪는 과정을 지나서 습관화 되어있는 것들이 가족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우리 집의 식탁이나 책상 위, 혹은 화장실에 있는 손닦이 용 화장지는 모두 반으로 잘라져 있다. 물론 온 장도 있지만 그 온 장 위엔 반으로 잘린 화장지와 반의반으로 잘린 화장지가 함께 놓여 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이곳 토론토에 처음 와서 딸네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할 때였다. 식탁용 냅킨이 얼마나 예쁜지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기에 아까웠다. 어떤 것은 그림이나 색깔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살짝 접어 책갈피에 넣어두기도 했다. 물론 크기도 커서 나는 반으로 혹은 반의반으로 잘라 썼다. 그러나 식구들은 달랐다. 조그만 식탁 위의 얼룩 하나 닦아내는데도 그 큰 냅킨 한 장 쑥 뽑아서 쓱싹! 아기의 코 한 번 닦는데도 냅킨 한 장 쑥 뽑아서 쓱싹! 옷이나 손에 묻은 음식물 한 점 지우는데도 한 장으로 쓱싹! 그저 쑥쑥 뽑아서 쓱싹!

나무를 테마로 한 연작시집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를 출판하기도 한 나로선 냅킨이 낭비될 때 마다 나무들이 죽어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에서도 나무 몇 그루가 베여나갔을까 염려된다.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탁을 차릴 때 냅킨을 4분의 1로 잘라서 각자 앞에 놓았다. 사위가 의아해 했다. 그걸 보고 딸아이는 민망스러워 했다. 내가 설명했다.

냅킨이 크니까 나누어 써도 충분하다. 찢어서 써라. 온장이 필요할 때만 온장으로 써라. 그것이 산에서 여기까지 온 나무에 대한 예의다. 또 물건이 제대로 충분이 쓰여야만 물건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것이다.”

사위는 그저 묵묵했지만 무슨 그런 예의가 다 있어?’ 하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딸은 이 에미 밑에서 자랐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그렇더라도 남편 앞에서 창피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모른 채 그냥 그런 대로 넘어갔다.

 

그 주말 저녁 식탁에서였다. 주중에는 내가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지만 주말이면 사위가 준비한다. 스푼과 포크 옆에 가로 세로 5cm 정도의 냅킨조각이 놓여있었다. 순간적으로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냥 웃고 있었다. 딸이 먼저 이게 뭐냐고 말을 꺼냈다. 사위가 종이를 아껴야한다고 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말하자면 반항의 표현이었다.

굿! 베리 굿! 유아 베리 굿 스튜던트!”

한 바탕 웃고 말았다.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가족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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