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919-할머니의 바지 깁기와 도리의 히말라야 등산

천마리학 2012. 10. 22. 23:49

 

 

 

*20111120()-할머니의 바지 깁기와 도리의 히말라야 등산

919.

Celsius 12°~ -2°, 6am 현재 10°. Mostly Cloudy.

 

아침 7, 모두 잠들어있는데 할머니 혼자 거실로 나왔다.

밤사이 엄마아빠가 거실 유리창에 도리의 백일 장식을 해놓았다. 엄마가 드디어 1년간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월요일부터 출근하게 되어서 최종마무리를 해나가는 참이다. 일을 참 잘 진행해나가는 엄마! 그리고 아빠!

 

온종일 엄마는 내일 출근준비에 몸도 마음도 바쁘고, 뒷바라지 해주는 아빠 역시 바쁘고, 할머니도 아리 바지 깁기 등 이런 저런 일로 바쁘고, 아리는 놀기에 바쁘고 도리 역시 놀기에 바쁘고···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바쁘다.^*^

 

 

 

 

아리는 어제 챕터스에서 라이트닝 맥퀸 한 대를 사줬는데도 오늘 다시 챕터스에 가자고 졸라댄다. 이유는 칙킥스와 킹도 사달라는 것, 적당히 구슬러서 The Car 영화를 보여줬다. 영화가 시작된 지 채 10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는 할머니, 이상하다. 이렇게 낮잠을 자야할 만큼 졸음이 쏟아지다니··· 평소에 낮잠자는 습관도 없는데··· 30분만 자려고 아리방으로 들어간 것이 몇 시나 되었을까? 모를만큼 잤다. 영화가 끝나자 아리가 와서 흔드는 바람에 깨었는데 두통이 심했다. 토하고 싶을 정도로 아픈데 아리는 영화이야기를 하기에 정신이 없다.

할머니 할머니, 유노? 후 워즈 원?”

글세

메이트 워즈 윈 원 타임 앤드 라이트닝 멕퀸 워즈 윈 투 타임.”

라이트닝 멕퀸이 이긴 이 사뭇 신이 났다.

할머니보다 엄마가 감기기운이 심하다. 할머니는 가끔 한기를 느낄 때 마다 콧물이 나지만 엄마는 목도 많이 아파서 말하기도 힘들어 한다.

빨리 나아야 할 텐데··· 휴가 마치고 첫날 출근부터 우중충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엄마도 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신경을 많이 쓴다.

 

 

 

 

 

2시 반경에 늦은 점심식사, 식사 후에 엄마는 집안 정리, 아빠는 아리 데리고 외출하여 챕터스 대신 라바에 헌 병을 갖어다주고 씨엔 타워쪽으로 걸어서 기차공원에 가고, 도리는 히말라야 등산 그리고 할머니는 바느질을 시작했다.

도리의 히말라야 등산은 도리가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 15개를 오르는 일을 말한다. 지난 달 쯤부터 한 돌도 채 안된 도리가 계단 오르기를 시작했는데, 도리에겐 계단 오르기가 히말라야 등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서 할머니는 그렇게 부른다.^*^

 

처음에 등산을 시작했을 때는 서너 계단 혹은 대여섯 계단을 기어올랐는데 오르다가 겁이 나서 내려오고 싶어하며 손을 잡아달라고 아악, 아악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러던 녀석이 요즘엔 혼자서 이층까지의 15계단을 손쉽게 오른다. 어떤 때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중턱쯤 올라가고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계단 입구에 엑서소서와 장난감 전화기 등으로 막아놓았더니 그 사이로 비집고 기어들어가다가 안되면 아악아악 소리질러댄다. 안아서 자리를 옮겨놓으면 큰소리로 울며 다시 기어오른다. 기어이 기어오르려고 해서 막을 수가 없다. 결국 할머니가 바짝 뒤따를 수밖에.

 

오르다가 할머니가 뒤따르는 걸 알면 방글방글 웃으며 손가락을 휘저어 할머니의 입속에 넣는 장난까지 친다.

오늘도 바느질 하고 있는 할머니의 일손을 방해하기도 하고, 외출에서 돌아온 아빠와 오빠가 샤워를 하는 이층에 기어 올라가서 한바탕 놀다가 아리에게 안겨 쫒겨났다. 결국 아빠에게 안겨 내려왔다. 그래도 좋아서 방글방글. 도리는 의지가 강하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기어이 해야 한다. 채 돌도 안 되는 아기라고 봤다간 오산이다.^*^

 

 

 

할머니는 아리 바지 두 개를 깁기 위하여 할머니의 잘 입지 않는 검정색 츄리닝을 무질렀다. 아리의 옷을 깁는데도 헝겊이 귀하다. 그것이 현대생활이다. 모두 새옷이고 모두 좋은 옷들이기 때문이다. 또 옷이 떨어져서 못입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큰 바지를 그냥 무지르기가 아까워 쓸모를 생각하다가 아리의 츄리닝을 한 개 만들고 나머지 조각으로 바지를 기울 요량으로 제단을 해서 시침질을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대충 눈짐작으로 길이와 넓이를 잘라 시침을 해놓고, 바지 두 개를 기웠다. 저녁 식사 후까지 모두 마쳤다. 마치고 나서 내일 입혀 보낼 옷을 챙기다보니 아리의 속바지 두 개가 또 무릎을 기워야할 상황이었다. 그 속바지와 츄리닝을 내일 만들기로 하고 접어 밀쳐놓았다.

 

 

 

 

 

 

처음엔 기워 입히는 것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하던 엄마아빠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할머니가 바느질하는 풍경을 모두에게 익숙하다. 할머니 또한 생전 바느질 안 해 보고 살았지만 어린 손자의 옷을 헝겊을 요리조리 궁리해가며 대어서 기워 입히는 것이 매우 보람 있게 느껴진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절약정신과 물건을 아끼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한 작전이다. 솜씨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할머니의 마음과 정성으로 해내는 일이다.

다 마치고 나면 오른 손 두 번째 손가락 끝이 멍멍하니 한 이틀 아프지만 그래도 즐겁다. 게다가 아리가 기운 무릎을 보여주면 싫어하지 않고 , 아썸!’ ‘쿠울!’ 하면서 좋아하고 즐겨 입기 때문에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