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920-엄마의 첫출근, 우현이네,

천마리학 2012. 10. 25. 02:34

 

 

 

*2011년 11월 21일(월)-엄마의 첫출근, 우현이네,

920.

Celsius 2°~ -2°, 6시am 현재 -1°. Partly Cloudy.

 

 

잠결에 접시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덜컥!

시계가 고장이 나서 알람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늦었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질질 끌다시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빠가 디시워셔에 들어있는 그릇들을 옮겨놓고 있었다.

어기적 어기적 계단을 내려오는 할머니를 보고 그릇을 옮기던 아빠가 ‘해드 에잌?’ 하고 묻는다. ‘노우’라고 했더니 ‘드유원트 드링크 썸씽?’. 다시 ‘노우’하고 전자레인지 위의 디지털 시계를 보니 5시 38분, 휴~ 안심.

늦은 줄 알았다고 했더니 ‘오우 노우, 쏘리’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쏘리’가 아니라 내가 ‘고맙다’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간밤에 컴앞에 앉아 작업하다보니 또 2시경에 잠이 들면서도 오늘아침 엄마의 첫 출근인데 늦잠을 자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던 것.

다시 아리방으로 들어가 위로 뻗어 올라간 아리를 제자리로 보듬어 내리고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6시 반경에, 그릇을 정리하고, 쓰레기통들을 정리하여 밖으로 나가 버리고··· 집안정리를 마친 아빠가 출근했다.

부엌차지는 다시 할머니 차지. 아빠가 출근하고 난 뒤 나가서 아침 식탁준비를 하였다. 케잌은 어제 엄마가 만들어놓은 홈메이드, 구워놓은 토스트.

그것들은 식탁으로 옮기고, 식탁세팅을 하고 과일(서양배 붉은 것과 노란것, 감, 블루베리, 서양생대추)을 깎아 담고 채소들(익힌 당근과 브르콜리와 컬리플라워, 생 샐러리와 꼬마당근)을 다듬어 담았다. 우유와 물을 각각 한 잔씩. 그리고 마지막에 한약을 준비해놓았다. 끄읏!

오늘부터 식사당번을 전적으로 할머니다.

아침에 아리를 스쿨버스 태워보내면서, 엄마랑 함께 스트롤러를 타고 데이케어에 가는 도리를 멀리서 배웅하고, 그 길로 먼저 살던 콘도에 사는 우현이네 집으로 갔다. 마침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서 들어가서 10층까지 올라갔다.

 

 

 

 

 

우현이 엄마는 우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하여 우현이 엄마는 출근준비로 막 나서는 중이었다. 아침시간이라 가지고 간 편지를 주고, 이번 일요일 1시, 우리집에 와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하며 일정이 어떤가 물었더니 아무 일 없다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뜸 둘 째 돌 아니예요? 한다. 부담 느낄까봐서 그런 거 전혀 아니라고 그냥 오라고 했다. 꼭 오겠다고 했다.

우현이네는 우리가 지금의 시티 플레이스의 루나(Runa) 콘도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메이플립 콘도에 살 때 만난 이웃이다. 우리가 1807호, 우현이네는 1007호, 같은 라인이었다. 가끔 실내 수영장에서도 만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일도 있었다.

아리가 돌도 되기 전, 한국에 가기 위하여 사진을 찍으러 찾아들어간 사진관이 우연히 한국사람이었다. 그 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콘도에 사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내가 칼리지 스트리트에서 ‘청운사’라는 간판을 보고 반가워 찾아들어간 절, 절이라기 보다 참선수행을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그곳의 스님과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서 건물 옆의 작은 공간에 심은 화단 같은 밭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케일을 한 아름 뜯어주셨다. 그 케일을 가지고 와서 말만 듣던 10층으로 찾아가서 나눠주었다.

 

 

 

 

 

그때의 그 초록빛 싱싱함이 얼마나 좋던지 도저히 혼자만 먹기에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가끔 마주치면 인사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도 알게 되어 거리에서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를 해왔다. 우현이 아빠의 스튜디오가 잘 되지 않는다고 했고, 우현이 엄마가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 언젠가는 우현이가 쓰던 장난감들을 주기도 했다. 우현이네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다니는 연합교회에 다닌다고 했었다.

길거리에서 우현이 엄마를 만나기도 하고, 언젠가는 스파다이너 역 구내 플렛홈에서 만나기도 했다. 우현이 엄마가 우리를 기억하고 불러주었다.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도 그렇게 해서 우현이 엄마를 확실하게 익히게 되었다.^*^

토론토에 살면서 이웃으로 한국사람을 만난 것도 드문 일이고 귀한 일이다.

우현이네를 다녀 돌아오면서 콩코드 빌딩 주변의 화단에 있는 돌 들 중에서 문득 빛이 느껴지는 돌이 있어 주워들었다. 그리고 겹겹이 둘러진 테두리 무늬가 있는 것과 까맣게 하트를 그려놓은 것 같은 무늬돌이 눈에 띄어 아리생각을 하고 들고 돌아왔다. 돌을 보면 참 신기하다. 한국에 있을 땐 수석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사로 보아넘기지 않았었는데 이즈막 이곳에 와서 살면서 자잘한 무늬돌들이 길바닥에서 자주 눈에 띄고 괜스레 그 돌에 의미가 붙여지고 우주공간의 무한함과 시간의 무한함 그리고 자연의 힘··· 등이 생각해지며 모든 것들이 하찮게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 있으면서 전엔 가끔 돌을 모아왔지만 작년에 한국에 가있는 동안에 엄마가 모두 버려서 서운했었다. 그 눈치를 채고 요즘은 버리지 않고 계단참의 진열장 위에 진열해놓았다.

낮시간을 혼자 있기 시작한 첫날, 굉장한 여유가 있을 것 같은 첫날, 그러나 의외로 시간을 빨리 가서 여전히 쫒겼다. 아리의 내의 한 개의 무릎을 깁고 내 오리털 점퍼의 안주머니를 갈아단 것 뿐인데 저녁식사로 밥과 멸치야채볶음, 그리고 가지미찜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아슬아슬.

처음으로 시도해본 가지나물이 신통치 않았다. 압력밥솥에 가지를 얹어본 것이다. 어렸을 적 무쇠솥에 밥을 하면서 밥 위에 가지를 얹어찐 가지로 간장양념해서 만들어내던 어머니의 가지나물이 그리워서였다.

밥이 다 된 후에 열어보니 가지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됐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꺼내려고 젓가락을 대는 순간 폭삭, 무너져버려서 큰 국자를 이용해야 했다. 조심스럽게 무침용 볼에 옮겨 담았는데 조금 후에 보니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었다. 밥 위에 앉아있으면서 물기를 다 품고 있었던 것. 그래도 한국가지와는 달리 둥글둥글 크고 억센 편이어서 가능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잘라 넣지 말고 통으로 넣어야 할 것 같았다. 다음에 한 번 더 해보자!^*^

 

 

 

 

 

 

4시 30분, 급하게 아리를 픽업하러 집을 나섰다. 스쿠터를 가지고 갔더니 아리는 좋아라하며 다음에도 매일 지가 말하지 않아도 스쿠터를 가져와달라고 한다. 녀석!

데이케어로 가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스트릿 카를 타고 내서(Nasaw) 근처를 지나고 있다고 했다. 바로 옆이다. 데이케어에서 우리가 도착하고 바로 뒤이어 엄마가 도착했다.

도리는 다른 한 아기와 함께 선생님과 놀고 있었는데 할머니를 보자 금방 울상이 되면서 손을 너울너울 안기고 싶어 했다. 뒤따라 들어온 엄마가 도리에게 갔다.

오늘은 도리가 짧게 잠도 두 번 자고 먹는 것도 그런대로 먹고, 친구와 놀기도 하고 혼자서 놀기도 하며 잘 보냈다고 한다. 아리가 뒤쪽아들어가 반갑게 끌어안고 뽀뽀, 도리는 버거우면서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어린 것들도 만남이 반가워서이다.

스쿠터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