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6일(토)-웃바인 경마장. 825.
오늘은 k에게 보여줄 겸, 오랜만에 웃바인 경마장에 갔다. 수시로 사소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아리를 자제시키고, 아리가 강요에 못 이겨 참아내지만 그러다보니 엄마나 할머니가 큰소리로 아리를 나무라는 결과가 되고 만다. 지켜보는 아빠를 포함해서 어른들의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지만, 아리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고 많은지 모른다. 아리를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할머니가 이럴 때 엄마아빠는 어떨까? 오늘도 마찬가지. 결국 웃바인까지 가는 차 안에서 둘 다 따로 창밖을 보며 조용했다.
차의 뒷자리 오른쪽에 아리의 카씨트가 있고, 평소에 할머니가 자리인 왼쪽이 k가 온 후로 k의 자리가 되었다. 아리가 씻 벨트를 잘 못 매기 때문에 늘 엄마아빠가 매준다. 그런데 요즘 k에게 두어 번 아리의 씻 벨트 매주기를 도와주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k는 하지 않았다. 씻 벨트 매는 일은 고사하고 차에 타는 일부터 말썽이다. 평소엔 아리가 먼저 탈 때도 있고 할머니가 먼저 탈 때도 있지만 주로 아리가 먼저 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k 온 후로 k는 아리가 차에 오를 기색을 보고는 ‘내가 먼저!’ 하거나 ‘형이 먼저!’ 하고 제치면서 언제나 k가 잽싸게 올라탄다. 그러면 기회를 놓친 아리가 울상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나 할머니가 아리를 달래곤 했다. 아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다음엔 아리가 먼저 타면 되지.’하고 달랜다. 그러나 한 번도 아리가 먼저 타게 해주는 일이 없는 건. 오늘도 마찬가지.
결국 아리가 또 야단을 맞게 되어 울음을 터트리며 올라탔다.
타는 것만이 아니다. k에게 씻 벨트 메는 것을 좀 도와주라고 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냥 앉아있다. 그럴 꼴을 보며 내색 없이 엄마가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아리의 마음을 달래는 좋은 말로 씻 벨트를 매주면, 그걸 보면서 k는 아리를 씻 벨트를 맬 줄 모르다니··· 혼잣말처럼, 자랑처럼 말한다. 엄마나 할머니는 그 말을 묵살하거나 때로 아리는 이제 네 살이잖아, 하거나 그래 k는 참 잘 매는구나 하고 만다. 이미 k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건은 정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으로. 어쩌다가 ‘k 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되니?’하면 그저 말없이 딴청이다.
씻 벨트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현관문 열기, 열고 먼저 나가거나 들어가기, 편지함 열기, 편지 꺼내기, 계단 내려가기, ··· 집 안팎을 불문하고, 어느 것 하나 아리와 대결 아닌 것이 없고, 그때마다 아리가 지거나 선수를 빼앗기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하소연 하지만 속 시원한 해결은 없다. 그때마다 아리더러 참으라고, 양보하라고··· 할 수 밖에. 결국은 아리가 야단을 맞게 되어 운다. 이미 엄마나 할머니도 더 이상 k에게 요구할 수도 없고, 나무랄 수도 없다. 그저 참고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다.
경마장에 도착하자 여러 번 와본 아리는 벌써 다 잊고 신이 났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벌써 멀리 울타리 안에서 달리고 있는 말을 발견하고는 ‘오, 저기 말, 홀씨!’하며 좋아했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말로 꼽는 아리답다. 그런데 k가 끼어든다. “아리는 말을 홀씨라고 해요. 홀스인데···” “그래, 그런다. 개도 도그라고 하지 않고 도기라고 한다. 어린이 말이다.” 할머니가 한 마디 했다. 사실은 이 말도 여러 번 째다. 집에서 말 그림책을 보면서 몇 차례 했던 말이다. 하지만 k는 어떻게든 아리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더 잘 안다는 것을 드러내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경마를 보는 중 쉬는 시간에 할머니에게 k가 목마르다고 물 사달라고 조른다. 두리번두리번 엄마를 찾는다. 누나에게 가서 물 달라고 해. 물병 있다. 하면 사이다를 사달라고 한다. 안 되는 거 알지? 하고 할머니가 잘라버린다.
아빠와 함께 외부의 관중석에서 올라온 아리가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건이 큰 소리로 나도 배고파요! 한다. ··· 할머니가 눈짓을 하고, 엄마가 잠시 자리를 떠나서 햄버거를 사왔다. 아리가 싫다고 하면서 다른 걸 요청한다. 엄마가 거절한다. k도 아리따라 다른 것을 더 요청한다. 이그! ···
k는 참 잘 먹는다. 잽싸게 자기 몫을 다 먹고나서 할머니가 반 잘라주는 것도 넙죽 다 먹는다. 집에서 하는 식사시간에도 마찬가진 k 밖이라고 해서 달라질리 없다. 이그!
물 마시는 것도 그렇다. 제 컵은 엄청 챙긴다. 다른 사람이 마시면 더럽다고 한다. 특히 아리가 손댈까봐서 아리에겐 미리 큰소리치곤 한다. 그때마다 지켜보는 어른들이 한숨을 쉬지만, 아리역시 어이없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리가 k의 본을 보기도 하는 것. 그리고 아리에게 스스로 방화벽이 쳐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도 음식도 우리집 어른들보나 많이 먹으며, 먼저 먹으며, 이 접시 저 접시에서 골라가며 빼먹기까지 한다. 이그!
그래도 모든 것을 k에게 맞춰주고, 아리와 k에게 똑 같은 기회를 주고 똑 같이 해준다. 꾹꾹 눌러 참으며 잘 대해주는 엄마아빠가 더욱 고맙고 미안할 뿐.
기수에게 부탁하여 아리가 말을 만질 수 있게도 하지만, 어린 아리를 보고는 기수 중에서 자청해서 일부러 짬을 내어 아리에게 말을 직접 만져보게도 하고 사진을 찍게도 해주기도 하는 일이 늘 있었다. 오늘도, 아리가 백마와 갈색마를 만져보는 기회가 주어졌다. k에게도 똑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사진도 건 혼자서 독사진을 찍느라고 신경써야 했다. 이그!
경마장 다녀오는 길이 항상 즐겁고 신났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왠지 찝집하고, 피로가 쌓이고, 차 안에 침묵이 계속되고, 웃음이 없어졌다.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 가는 지··· 다른 사람이 끼었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동안 스위스 쟌이나 피터 등을 겪어봤지만 항상 즐겁고 부담 없었다. 그런데 k는 다르다. 어린 건 한 사람이 온 집안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든다. 어른들끼리 아무리 친해도 절대로 그 자녀를 맡는 일은 안 된다. 특히 어린 자녀일 경우 더욱 그렇다는 것을 절감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집에 돌아오는 차에 타자마자 k가 하는 말이다. “집에 가서 해리포터 봐요!” 아무리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집에서도 그렇게 다짐하고 지적하고 약속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집은 언제나 매형이 돌아오면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본다! 이것을 그만큼 주지시켰고 실행해오는데도 불구하고 k에게는 단 한순간도 소용이 없다.
다른 날도 그저 입에서 해리포터가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 매일 아빠가 퇴근해온 저녁에 피곤을 무릅쓰고 씨리즈 1부터 보기 시작했는데도 그걸 못 참아서 5분 간격으로 엄마를 조른다. 그때마다 엄마는 매형 오시면, 하고 거절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다른 영화를 추천하여 보여주곤 한다. Ice Age, Beauty and Bist 등.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면 k는 이미 한국에서 안 본 것이 거의 없을 만큼 많이 봤다. 오히려 우리가 여기서 못 본 거나 알지 못하는 것까지 다 보고, 다 잘 안다. 아빠가 보여줬다고 하고, 티브이에서 봤다고 한다. 자기집과 다른 점은 여기는 온 식구가 함께 보는 것과 자기집에선 자기 혼자 보는 것이라고 한다. 무서운 영화가 있어서 함께 보자고 할 때도 엄마아빠가 그냥 혼자서 보래요. 그래서 혼자 본다고 한다.
“고모, 아빠에게 퍼시잭슨을 보내달라고 할까요?” k가 할머니에게 하는 말이었다. 자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 할머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글쎄··· 괜히 아빠를 힘들게 하지말자, 했더니, 그거 보내는 거 쉬워요. 보내달라고 할거예요. 하더니 정말 이메일로 요청을 한 모양이다. k 아빠로부터 퍼시잭슨이 왔고, 그걸 다운받아 함께 봤는데, 할머닌 앞부분만 보다가 머리가 아파서 다음에 보겠다고 하고 그만 뒀다.
해리포터 보기를 요청하다가 거절 당하면, 다른 걸 요청한다. 다른 영화를 보자던지, 수영장에 가자던지··· 하는 식이다.
k는 그저 자기의 욕구대로, 자기의 목적달성 밖엔 없다. 어려서만일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런 걸 그 부모가 알까? 모른다. 알려주면 이해할까? 이해한다고 치자. 어디까지, 얼마만큼 이해할까? 어쩌면 이해는커녕 인정도 안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은 어른들의 인간관계까지 상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매우 조심스럽고 힘들지만 돌아간 후에도 문제가 생기고 말 것이라는 예감으로 걱정스럽다.
할머니가 요즘 도리에게 잼잼과 도리도리를 열심히 연습시키고 있는데, 하다보니 한 가지를 먼저 익히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잼잼만을 가르치고 있다. 도리가 따라서 흉내 내기도 하고, 싫증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으면 제가 먼저 잼잼 흉내를 내며 할머니에게 보이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6시경, 아침외출을 온 도리가 열심히 동작을 취하며 옹알이를 했다. 할머니가 처음엔 잘 못 알아채었다. 자세히 보니 두 손을 펴들고 출렁출렁하면서 방글방글, 할머니를 향해서 옹알이를 하는 것이었다. 잼잼이었다. 오, 도리, 잼잼? 할머니가 맞장구쳤더니 입이 더 함박처럼 커지면서 몸까지 출렁출렁, 두 손을 흔들며 잼잼을 한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워서 동영상에 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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