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824-전깃줄위의 비들기들과 그랑쥐파크의 어린이페스티벌

천마리학 2012. 4. 14. 07:40

 

 

 

*2011년 8월 5일(금)-전깃줄위의 비들기들과 그랑쥐파크의 어린이페스티벌.

 824.

 

 

늘 그렇듯이, 새벽에 할머니 침대로 올라온 아리는 아침 7시 반이 되어도 잠에 빠져있다. 마음으론 참 안되었단 생각을 하면서도 할 수 없이 깨운다.

“아리야, 할머니 혼자 갔다 올게”

사실은 협박인 셈이다. 아리가 절대로 할머니를 안 따라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잠에 취하여 꾸물대던 아리가 어렵게 일어난다.

그렇게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학원까지 k랑 셋이서 4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간다. 아리는 일단 집을 나서면 활기차고, 즐겁다. 기특하다.

걸어가면서 아니 걷는 법이 없이 달린다. 언제나 달리면서 ‘k, 런! 런!’하고 외치지만 k는 무반응이다. 그럴 때 마다 할머닌 아리가 참 안타까울 뿐이다. 할머니가 때때로 상대가 되어주어 달려주지만 정말 힘들다. 참으로 할머니가 아리를 부추키며 즐겁게 달리고 장난치고 게임 걸고··· 그러면 k가 끼어든다. 끼어들어서도 늘 아리에겐 위태하다. 정말 관리하기 힘들고 어렵다. 그저 참는다. 참자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할 수 없는 일!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는 수시로 k에게 말도 걸고, k가 느릿느릿 뒤쳐져오면 k 걱정을 하곤 한다. 할머니와 아리가 재미있어 보이면 끼어들다가도 오래지 않아 시들해지는 k. 달리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쉬 피곤하다고 하면 뒤처지곤 한다. 그것조차, 그러거나 말거나,

k를 배려하는 아리. 그래서 할머닌 더 속상하지만 내색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학원까지의 길을 즐겁게 치러내는 아리가 대견하다.

 

 

 

 

 

 

 

 

학원 근처의 던다스 스트리트와 세인트 페트릭 스트리트의 사거리. 전깃줄에 비들기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것을 보자 아리가 소리쳤다.

“할머니, 어게인. 비들기 앉아있어.”

요사이 이 자리에 올 때마다 길가 잔디밭에 있는 비들기들과 장난을 걸곤 했었다. 평소에도 k랑 함께 다닐 때마다 있었던 일인데 그것도 k와 아리는 달랐다. 아리가 비들기들을 놀래켜 날아가게 하면 재미있어 보이는지 k가 뒤늦게 달려들어 아리를 방해하거나 독차지해버려 아리를 맥 빠지게 한다. 그럴 때 아리가 불평하면서 막으면 ‘왜 그래? 내가 하고 싶어 하는데’하면서 아리를 밀쳐버린다. 아리는 또 당하고 만다.

아리는 비들기들에게 모이를 주거나 살금살금 따라가며 이야기를 걸기도 한다. ‘하이! 비들기!’ 그러면서 k가 또 달려들어 방해할까봐서 할머니와 k를 향해서 자기는 지금 비들기를 쫒는 게 아니라 이야기하는 거라고 애써 소리쳐 말하지만 k는 들은 척도 안하고, 할머니 혼자, ‘아, 그렇구나. 알았어. 방해 안할게. 조용히 할게’하고 호응해준다. 아리가 안스러워서다. 물론 이 말은 k를 향해서 하는 말이지만 k는 그런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k의 평소 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는 또 뛰어들어 비들기들을 쫒아버려 아리의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결국 아리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아리, 비들기하고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하며.

 

 

 

 

 

 

 

 

 

정말 k와 아리는 너무 많이 다르다. 솔직히 말하면 k는 4살도 못되는 아기노릇을 하고, 아리가 10 살짜리 k 노릇을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제도 그랬었다. k가 그렇게 하는 바람에 비들기들이 모두 후루루 날아올라 전깃줄에 앉아있고, 아리는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꾸며가며 아리를 달래었다. k에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할 수가 없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해도 이해 못하고. 소 귀에 경읽기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아리야. 괜찮아, 비들기들이 전깃줄에 올라가서 기분이 더 좋을지도 모르잖아. 이따가 k형 학원 끝나고 돌아올 때 쯤엔 비들기들이 다시 내려와 있을 거야. 그때 비들기들에게 이야기하면 되지.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가자. k형 수업시간이 됐잖아.”

그런데 어제아침엔 그곳에 도착했을 때, 비들기들이 전깃줄에 일렬로 앉아있었다. 갑자기 아리가 소리쳤다.

k, k, 룩, 룩~”

k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할머니, 비들기, 룩. 보세요!”

“아하, 그렇구나.”

“할머니, 드유노우? 와이 비들기 전깃줄 앉아?”(비들기들이 왜 전깃줄에 앉아있는지 알아요?)

“글세. 왜 그럴까?”

“아이 노우.”

“유 노우? 데얼 아 낫씽, 노 모어 후웃 언 더 그라스.”

“풀밭에 먹을 게 없어서라고?”

“녜에, 할머니.”

“아하, 그렇구나. 아리 말이 맞구나.”

아리가 기분 좋아 으쓱했었다. 조금 간격을 두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보기엔 다른데···”

“Why?”

“비들기들이 지금 쉬고 있는 것 같아.”

아리가 으아해 하며 되물었다. 그제야 k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말에 아리가 ‘오우~’ 그러냐는 듯이 소리쳤고 동시에 k가 와하하 웃으면서 ‘비들기가 쉬고 있다고? 어찌 그리 기발한 생각을!’ 하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k는 늘 그런 식이다. 하도 상황판단을 못하기 때문에, 또 아리에게 가혹하기 때문에 때론 의도적으로 표가 나게 소외시켜버리는데 그럴 때마다 가만히 있다가 제 마음 내키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상관하며 끼어든다. 그럴 걸 보면, 정말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한다. 분위기 파악만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가 어떤 건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아예 그런 감각이 없다. 그만큼 어리다고 할까?.

그런데 오늘 아침에 또 비들기들이 전깃줄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아리가 소리쳤다.

“할머니, 아이 던 씽 소우.”

“뭘?”

“유 세이, 비들기 니즈, 테이크 어 레스트. 벝 아이 던 씽 소우, 비들기, 낫 테이크 어 레스트. 아이 씽크, 스윙! 비들기 스윙, 좋아해. 유노우?”(내 생각엔 비들기들이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네타기를 즐기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어제 할머니가 한 말에 대해서 다른 응답을 내놓는 것이었다.

k가 또 아리말이 어이없다는 듯, 같잖다는 듯 와하하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맞아.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할머닌 그 생각을 못했었지.”

“라잇, 할머니? 내 말, 맞어? (맞지? 내 말이 맞지? 할머니?)

아리가 재차 다짐확인을 했다. 이렇게 자기주장에 못을 박는 것도 아리의 특징 중의 하나다.

“그래, 맞어. 아리 생각이 맞아. 할머닌 그런 생각을 못 했지. 정말 비들기가 그네타기를 좋아하는구나!”

아리가 기분좋아한다.

 

 

 

 

 

 

 

 

k의 학원 오늘로써 2주간의 강의가 끝나는 날.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10개의 항목 중에서 2개가 B, 그 외엔 A, B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 것과 발음이었다. k는 2주간의 성적표와 수료증과 레이몬드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노트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뜻밖에도 레이몬드 선생님이 주셨다고 하면서 아리와 할머니에게 까지 선물을 가져왔다. k에겐 노트, 아리에겐 길이가 50cm 쯤 되는, 표면에 알록달록 그림이 프린트 된 커다란 볼펜이었고 할머니에겐 마그네틱이었다. 그동안 k를 데리고 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건에 대한 부탁을 하고, 감사함들 표시했더니 고마웠던 모양이다.

땡큐! 레이몬드 선생님!

k는 아리의 선물에 대해서 또 샘을 냈다.

“내 선물보다 아리 선물이 더 좋은 것 같아.”

볼펜을 받고 좋아하는 아리, 그 순간 건은 아리의 손에서 볼펜을 나꾸어 채더니 종이에 글씨를 써본다.

빼앗긴 아리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어이없다는 듯, 구원의 눈길로 잠시 할머니와 k를 번갈아본다.

“아리, 잠시 기다려, 형이 써보고 줄 거야. ····· k, 돌려줘라.”

그 길로, 12시부터 3시까지 어린이 페스티벌이 열리는 그랑쥐파크(Grange Park)로 갔다. 시간에 맞춰 도리를 데리고 나온 엄마와 만났다.

 

 

 

 

 

 

 

 

무료로 나눠주는 손등에 스템프를 찍고, 무료로 나눠주는 핫도그를 받고, 여기저기 판을 벌인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놀이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 참여하고 나면 선물들을 주었다. 건이 또래를 위한 놀이판은 좀 적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마냥 즐길 수 있었다. 아리는 역시 미끄럼틀이나 멍키 바 등 타고 오르고 내리거나 달리는 술래잡기 등 역동적인 놀이를 선호했다. 공 넣기. 다리 흔들기, 비누거품 내기. 낚시하기, 공 맞추기··· 등 각종 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재활용 수거시합을 해서 커다란 공을 받기도 했다. 엄마도 참여해서 도리몫까지.

옥수수 팝콘도 받았다.

그 사이에도 k와 아리를 견제하고 관리하느라고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아리는 역시 다른 사람들과도 쉽게 잘 어울리는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리가 낯선 아이들에게 말을 청하고 놀이를 청하였다. 8, 9세정도? 한 아이는 10, 11세 정도? 10, 11세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쌍둥이로 보일만큼 닮은 형제 같았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아이 어린 아리를 보더니 자연스럽게 배려해가면서 상대가 되어주며 잘 놀았다. 그 아이들도 한 아름이 되는, 파란색과 하얀색이 번갈아있는 풍선볼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배려 때문인지 아리 역시 평소처럼 거침없이 잘 놀면서 소리도 치고 풍선볼도 제법 잘 차며 마냥 즐거워했다. 돗자리 위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건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평소에도 k는 아리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리려들지 않았다. 또 달리거나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옆에 있는 물건을 좀 집어달라고 해도 싫어한다. 몸이 무겁다. 자주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아마 k 아빠가 내성적이라고 한 것은 그런 점 때문인 듯 하다.

“봐라. 저 아이들은 처음 만난 아이들인데도 아리와 잘 어울리잖아. ·····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이 어린 아리를 배려하며 공을 차잖아.”

아리의 공차는 실력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물론 각도가 다르게 날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제법 멀리도 찼다. 그럴 때마다 서로 달려가서 볼을 잡곤 했는데 아리가 잡으면 너무나 신이 나 했고, 못 잡아도 큰소리로 웃으며 신이 났다.

k가 그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도 조금만 마음을 열고, 마음자리를 좋게 가지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심으로 받아들이는지는 몰라도 k가 약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태도를 취했다.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아리와 k가 뛰어노는 것을 지켜보며 엄마가 싸온 볶음밥 간식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도리 역시 온갖 재롱을 보이며 기분 좋아 했다. 오후 5시경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