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756-하버프론트행, 아리와 음식전쟁 -5월21일

천마리학 2011. 10. 16. 06:53

 

 

 

*2011년 5월 21일(일)-아리와의 음식전쟁, 하버프론트행. 

 

 

아리가 어제그제 이틀 동안 어린이용 아스피린을 두 차례 먹어가면서도 잘 놀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제 하룻밤 아빠와 1층의 제 놀이방에서 자고는 어제부턴 다시 2층의 할머니 방에서 잤다.

비디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보고, 자기 전에 베이글을 먹고··· 평소처럼.

 

 

오늘 오전 10시에는 더펄린 공원에서 있는 야스민의 생일파티에 엄마아빠 도리와 함께 갔다. 다행히 날씨가 약간 흐리긴 했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 할머닌 할 일이 많아서, 그리고 너무 많은 식구가 가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집에 혼자 남아 할머니 일을 했다. 오후 2시경에 모두 돌아오면서 점심을 사왔다.

 

점심을 먹고 모두 함께 하버프론트에 갔다. 할머니도 며칠 동안 원고정리에 매달려 운동부족인데다 또 요즘 계속되는 비가 오거나 흐리던 날씨가 모처럼 맑으니 함께 가기로 했다.

 

 

 

캐나다의 상징동물인 커다란 비버의 모형 앞에 서 있는 아리.

아리의 밝은 모습, 햇살 또한 눈부시다.

 

 

 

아리는 스쿠터를 타고 안전모를 쓰고 나갔는데, 스쿠터 타는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

야구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로저스 센터 앞에 커다란 모형이 만들어져 있고, 스케이드 보드 타는 곳과 간단한 야외무대 등이 꾸며서 북적대었다. 금년들어서는 처음으로 맛보는 분위기다.

휴일의 마지막 날을 즐기는 하버프론트는 떠들썩. 여기저기 공연도 있고, 음식가게들도 있고, 아이들에게 무료로 풍선을 나누어주는 곳도 있다.

원형무대에서 벌어지는 서커스를 잔디밭에 앉아 구경하다가, 풍선 나눠주는 곳에 가서 긴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려 풍선을 받았는데, 아리는 아리의 페이브릿 컬러인 블루로 만든 동물모양. 도리는 손목에 차는 레이디 버그.

사람들이 북적대고 햇볕이 따가워 곧 피곤해졌다. 그래도 사이사이 아리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장난을 치고 논다.

 

 

 

어? 엄마랑 아빠랑 어디로 갔지?

 

 

5시 경에 돌아왔다.

 

오늘도 아리와 엄마아빠 사이에 또 음식전쟁이 벌어졌다.

발코니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리가 또 안 먹겠다고 해서 엄마아빠가 몹시 기분이 상했다. 엄마가 아리를 먹게 하려고 만든 토스토피자. 아리가 안 먹겠다는 이유는 치즈 때문이다. 아리는 치즈를 먹지 않는다. 아리가 안 먹어서 엄마아빠의 기분이 상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아리와 음식전쟁을 벌이는 건 할머니 생각엔 별로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서른이 넘어서도 음식을 가렸고, 아기를 낳고나서부터 고기도 잘 먹게 되고 치즈도 잘 먹게 되었다. 지금도 족발이나 닭발을 소름을 돋구기까지 하면서 안 먹는다. 순대를 잘 먹으면서.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스쿠터를 타고 아빠의 뒤를 따르는 아리.

익숙하지 않아서 염려가 많이 된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굳이 지금부터 아리에게 음식을 필요이상으로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리가 전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는 편식 때문인데 그건 서서히 자연스럽게 고쳐지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리가 안 먹는 건 당근 이외의 채소, 콩, 치즈, 그리고 어른들이 즐기는 특별한 맛이 소스나 물기가 많은 것들이다. 좋아하는 것은 두부, 멸치, 김치, 무생채, 깻잎, 밥, 생선···들이다. 이런 것들을 보더라도 굳이 분위기 상해가며, 아리에게 겁주어가며 강요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 멀어지게 하고 어쩌면 그 음식에 대한 혐오감까지 들게 할지도 모른다.

어찌됐던 오늘도 아리와 이야기하며 맛있게 먹자고 해가면서 즐겁게 정성을 들여 만들었는데 막상 아리가 안 먹겠다고 하니까 속상한 그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엄마아빠가 같이 서슬이 파래지는 건 할머니 보기에 좋지 않고 불쾌하다.

“다음부턴 베이글도 안 만들어 줄 거야.”

“할머니에게 하지.”

“할머닌 베이글 못만드셔.” 평소에 늘 그리고 이미 할머니가 베이글이며 토스트를 만들어 먹이는데. 이건 모순이다.

“할머니, 아 유, 베이글 몬만들러?” 할머니가 난처하다. 그렇다고 뻔한 거짓말로 엄마아빠를 동조할 순 없다. 엄마아빤 할머니가 동조 안 한다고 화내지만.

“으음, 만들 수 있어.” 아리가 거봐! 하는 듯한 눈빛으로 엄마를 본다.

“다음부턴 아리와 함께 라이언 슬라이드에도 안 갈 거야.” 사실 라이언 슬라이드가 있는 놀이터를 처음 발견한 것도 할머니이고, 함께 다닌 것도 할머니다. 그러니 이것도 모순이다.

 

 

 

 

써커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로저스 센터 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 유 캔 고우 투 더 라이언 슬라이더 위즈미?”

“으음··· 같이 갈게.”

아리의 표정이 또 거봐! 다. 이번엔 아빠가 나선다.

“왜 맥도널드에서 사 달라해 놓고 넛치킨도 안 먹지?”

“······”

“다음부턴 맥도널드에도 안 갈 거야.” 하고 아빠가 겁준다.

“할머니하고 가지.”

“할머닌 차가 없잖아. 그리고 할머닌 맥도널드가 어디 있는지 모르시는데?” 엄마가 응원한다.

“할머니하고 히어, 앤 데어··· 우이 얼레디 고우 맥도널드.”

할머니랑 여기 저기에 있는 맥도널드에 이미 갔었는데? 실제로 가서 먹진 않았지만 거리에서 간판을 익숙하게 봐왔고, 또 지난번 하와이에 갔을 때 몇 번 맥도널드의 음식으로 여행 중 식사를 대처한 일이 있어서 친근해지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건 아리 말이 맞다. 매일 스트리카를 타고 가면서 아리가 스파다이너 어베뉴를 지날 때마다 맥도널드 간판을 보면서 “M 민즈 멕도널드!” 하고 할머니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하곤 했다.

“할머닌 차가 없잖아.” 아빠가 지원사격이다. 그러면서 넛델라를 발코니의 바깥쪽 턱으로 옮겨 놓아버리고 한 마디 한다.

 

 

 

아리가 원하는 동물모양을 만들어주는 아저씨.

아리는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파란색을 선택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저씨의 바라보는 아리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캐나다는 어린이나 가족을 위한 행사도 많다.

또한 무료로 베풀어지는 다양한 행사가 많은 점이 좋다.

어린이날이나 가정의 날을 빌미로 

모든 것이 상업적으로, 장사꾼의 계산이 판치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이젠 아빠가 넛델라도 안 사올 거야.” 아리가 잠시 걱정스러워졌다. 평소에 할머니와 함께 소비즈에 가서 이것저것 쇼핑을 해오던 터라서, 또 말이 그렇지 엄마아빠가 먼저 사올 거면서. 이것도 모순이다.

아리 역시 잠깐 걱정스러워 했던 것도 거둬버린다.

“할머니, 유켄 워크 고우 맥도널드 위즈 미?” 이때 할머니가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으음··· 그래, 우리 걸어서 함께 맥도널드에 가자!” 해버렸다.

모두 헛웃음을 날린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할까? 이런 자리가 할머닌 매우 불편하다. 또 할머니 체면은 왜 생각해주지 않을까? 말하자면 자신들이 부모라는 것. 우리 집에선 은근히 강하다. 젊은 부부라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부부중심! 그렇다고 할머니의 존재가 아이 존재 이하로 내려가는 것. 이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일이 지적할 수 없다. 지적한다고 해서 들을 일도 아니고, 또 그들 입장에선 그게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테니까. 이런 점에서 대가족제도의 장점이 멀어지는 아쉬움을 어쩔 수 없이 속으로만 느끼고 말아야 한다.

할머니도 항상 엄마아빠 아래라는 것, 할머니도 아리처럼 모든 일을 엄마아빠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때로 아리를 다스리는 일이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번엔 도리를 위한 레이디 버그 만들기.

역시 지켜보는 아리의 눈빛이 예사롭지않다.

마침 엄마가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모처럼 할머니도 찍혔다.

 

 

 

 

 

결국 아리는 할머니에게 토스트를 만들어달라고 했고, 할머니는 토스트를 해주면 먹겠느냐고 다짐한 뒤, 토스트를 만들었다. 아리가 넛델라를 발라달라고 해서 발라서 접시에 담아냈다. 이것도 평소와 같다. 아리는 거뜬히 먹어치웠다. 어른들의 분위기는 유야무야였지만 할머니는 슬며시 2층으로 올라와버렸다.

어제와 오늘, 아리는 이틀 동안 자기 전에 먹는 것을 안 먹었다. 내일아침에 먹자고 살살 달래면서 관심을 책읽기나 비디오 보기 등 다른 쪽으로 돌렸다. 저녁에 토스트나 베이글 등,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약간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 그럴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