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89-아리에게 필요한 힘의 제어방법. 크리스 또 만나다

천마리학 2011. 3. 22. 18:42

 

 

 

*2011년 2월 28일(월)-아리에게 필요한 힘의 제어방법. 크리스 또 만나다.

 

 

 

늘 익사이팅한 아리에게 필요한 건 제어장치 내지는 제동장치다. 자신의 힘을 제어하거나 제동을 걸 수 있는 요령이 필요한 것을 많이 느낀다.

유난히 역동적인 놀음을 즐긴다. 놀면서 처음엔 자신의 역할을 언제나 좋은 쪽의 역할로 하더니 언제부턴가는 스스로 나쁜 쪽 역할을 스스로 맡는다. 이를테면 자기는 ‘굿 가이’로 하고 할머니를 언제나 ‘베드가이’로 하였다. 하다못해 할머니와 자신을 같은 도깨비라거나 배드 가이로 정할 때도 할머니는 ‘나쁜 도깨비’ 저는 ‘좋은 도깨비’의 역할을 맡았다. <Beauty and Beast>에서도 아리는 ‘비스트’이고 할머니가 ‘게스통’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달라졌다.

우리는 모두 도깨비인데 할머니는 ‘좋은 도깨비’이고 자기는 ‘나쁜 도깨비’라고 하면서, 혹은 할머니도 아리도 모두 ‘나쁜 도깨비’라고 하고 나쁜 도깨비들끼리 싸우는 거라는 설명까지 해주고는 룰까지 정해서 알려주고(주로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정하지만.^*^ 으흠, 귀여운 녀석!), 어흐응! 포효하는 소리를 내며 두 손을 복식자세로 취하고 싸움을 걸어온다.

요즘은 자기가 ‘게스통’이고 ‘베드가이’ ‘나쁜 몬스터’, 할머니는 ‘굿 가이’ 이다. 그러고는 싸우자고 덤빈다.

“아이 엠 스트롱!” 하고 덤빈다. 매우 저돌적이다. 힘도 꽤 세어졌다.

 

 

 

레고 놀이에 푹 빠져있는 아리.

 

 

 

그런데 덤비고 얼크러질 때 문제가 된다. 있는 힘을 다해서 덤비는데 정말 할머니가 뒤로 나자빠질 정도이다. 아주 저돌적이다. 그런 경우, 할머니는 아리의 공격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맞아주거나 적당히 방법을 써야한다. 아리가 내쏘는 힘의 방패막이가 되지 않으면 아리가 위험한 경우가 허다하다. 공격해오는 아리는 제 힘에 의해서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힘의 방향을 틀거나, 분산시키거나, 역이용하는 방법을 아직은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잡혀주고, 막아주고 하다보면 할머니가 상처투성이가 되고 곤죽이 된다.

아리가 힘의 균형을 잡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 부피감에 대한 인식이다.

수북한 이불더미를 부피 그대로 보고 뛰어든다. 오리털 이불이 보기엔 수북하게 북더기가 커보여도 막상 쥐어보면 아주 얄싹해서 바닥의 딱딱한 바닥에 이마를 부딪쳐서 매우 아프다. 말하자면 부피감을 인식 못하고 보이는 대로의 덩치를 생각한다.

이것 역시 가르치기 쉽지 않다. 설명을 통해선 안 되고 실제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 최선인데 잘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잘 놀면서도 할머니가 도리를 어루는 소리를 들으면 관심을 쏟는다.

 

 

 

예를 들어 소파의 등받이 위에 올라가서 할머니를 향해 뛰어내릴 때, 할머니가 피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할머니를 덮칠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뛰어 내린다.그러니 할머니가 피할 수도 없다. 피해버리면 거실바닥의 딱딱함에 다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대응하지만 그러자니 할머니가 힘들고 지친다. 어렸을 땐 손쉬웠는데, 네 살이 되고 보니 할머니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때가 많다. 속도를 내어 구석을 돌거나, 모서리 같은 곳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부딪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파서 진저리 치며 우는데 어떻게 대신 아파 줄 수도 없어 할머니의 마음은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피가 난다.

그래도 요즘은 두 주먹을 눈 아래쪽 얼굴에 대고 싸우자고 덤벼들 때의 권투폼이 제법 익숙해졌다. 역시 사내아이는 사내아이인가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도리. 그저 할머니와의 대화에 푹 빠졌다.

방긋거리며 대답하는 도리.

 

 

 

 

오늘 아침에 며칠 전에 만난 스트릿 카의 운전사 크리스를 또 만났다.

우리가 소비즈를 지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퀸즈키 쪽에서 하얀색의 스트릿카가 오는 것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아리가 좋아하는 블루 스트릿카는 아니지만 특색 있는 것이어서 아리에게 말했다.

“화이트 스트릿 카, 우리 저걸 탈까?”

그 스트릿카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우선 신호가 빨리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 신호가 막혀있는 동안 스트릿카가 달려온다. 횡단보도 가까이 왔을 때 레드라잇으로 바뀌기 직전, 화이트 스트릿카가 지나갔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스트릿카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저만큼 몇 사람들이 줄을 지어 타는 것이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아슬아슬하게 스트릿 카로 올라서는 순간,

오, 크리스!

지난 수요일(23일)에 만났던 그 운전사.

크리스도 아리를 보는 순간, 헤이, 유! 하면서 반가워했고 아리고 하이! 하고 대답했다.

“우이 캔 파운드 디스 스트리트 카. 화이트 칼러. 액츄리 아리 페이브릿 이즈 블루 스트릿 카. 벝 디스 이즈 투. 소우, 우이 아 런 런, 런 베리 파스트!”

할머니도 숨을 헐떡이며 말했더니 크리스가 “유 디드!” 하며 웃었다.

 

 

 

결국 아리가 레고놀이를 걷어치우고 스트롤러에 오른다.

가끔 아리는 할머니의 관심을 끌며 이렇게 퇴행성을 보인다.

동생이 태어나니까 옛날이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많이 신경쓰는데... 그래도 어느 구석엔가 허전함이 있는 모양이다.

저렇게 억지로 도리의 스트롤러에 기어들어간다.

 

 

 

 

크리스와 아리 사이에 또 다시 이어지는 대화.

“하오 어바웃 위켄?”

아리가 대답한다.

“굿!”

“어디 갔었니?”

“챕터스.”

“오, 챕터스? 거기서 뭐했니?”

“리드 어 북! 아이 라이크 어 북.”

“어떤 책을 좋아하지?”

“브라운 베어 앤 빅 베드 울프.”

“어느 베어를 좋아하니?”

“브라운 베어.”

“주말에 맛있는 거 뭐 먹었니? 샌드위치? 난 어제 저녁에 파스타를 먹었는데.”

“으음, 노우, 샌드 위치. 아이 잇 샐러드, 음, 피자, 음, 김 치 부 침 개. 유노우 김치부침개?”

“김치 부 침 개? 웟츠 댓?”

“이츠 어 코리언 훗, 야미.”

“오우, 코리언 훗? 아류 코리언?”

“예스.”

“쏘우 캔유 스피크 코리언?”

“예스, 아이 캔스피크 코리언, 잉글리쉬, 앤 팡세.”

“팡세? 아, 프렌치?”

“예스.”

“유 아 베리 스마크, 아리.”

스파다이너 스테이션에 도착하기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저에겐 맞지 않는 스트롤러 위에서 아기짓을 하는 아리.

스스로도 겸연쩍은 모양이다. 

어리광을 부리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한편으론 쑥스러워 한다.

 

 

 

 

스트릿 카에서 내려설 때 또 TTC 여자직원이 ‘하이! 유아 어게인. 소우 큣!’하며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계단을 내려가 블로어 라인의 서브웨이 플렛 홈에 서 있을 때 크리스가 왔다. 와! 함께 탔다. 크리스가 당번운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어디 사느냐고 물었더니 콕스 웰에 산다고 했다. 세인트 죠지역에서 우리가 내릴 때까지 이야기가 또 이어졌다.

사실 요즘 아리가 데이케어에 흥미를 잃어가고, 어딘가 침울해지는 것이 몹시 신경이 쓰여 할머니는 데이케어에 다니는 것을 고려하게 되었고, 가능한 한 아리의 기를 살려주려고 노력하면서 관찰 중인데 요 며칠 사이에 변화가 눈에 띄어 할머니의 기분이 좋다.

‘아리야, 크게 말해라.’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하이!하고 인사해라.’ 하는 것이 요즘 할머니의 주문이다. 데이케어에 가서도 선생님들의 접촉을 가능한 한 피해가며 아리의 분위기를 살려서 놀게 해주고 돌아온다.

또 데이케어에 들어서면 선생님들에게 먼저, 큰 소리로 하이! 하고 인사하라고 했더니 망설이고 주춤거리긴 했지만 했다. 게다가 며칠간 도가 선생님이 휴가 중인지 안보여서 도움이 됐다. 도나 선생님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을 때도 아리가 큰소리로 ‘하이, 도나!’하고는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도나가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크게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주춤거리던 아리가 점점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 특히 도나 선생님이 반응을 보였다. 아리는 그것마저 신경 쓰지 않고 교실로 들어간다.

‘울지마’아줌마가 있는 오이지 건물 내의 카페를 지나올 때도 큰소리로 말하라고 했더니 ‘하이! 울지마!’하고 소리친다. ‘울지마’ 아줌마는 으레히 아리를 불러들여, 우유와 쿠키, 우유와 롤리 팝 등을 꼭 챙겨준다. 그것이 버릇 될까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리의 자신감을 위해서 응하게 한다. 한때 지나가는 일이 될테니까.

 

 

 

오빠가 왜 저러지? 저건 내 스트롤러인데...참 이상해.

지켜보는 도리! 

 

 

 

또 항상 아리에게 군림하던 한 살 위인 제프리에게도 요즘은 아리가 힘을 보인다. 놀면서도 덮치고 주먹에 힘을 주어 쥐어박기도 한다. 아리의 자신감이 살아난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유도하면서도 미안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요령껏 하도록 기를 살려줬다. 그렇게 두어 주 지나는 사이 아리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역력하다. 늘 압도만 당하던 제프리가 요즘은 반대로 아리에게 압도당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리를 피한다. 이것이 꼭 옳을까? 하고 생각안하는 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요즘은 아리가 많이 회복되었다. 아침마다 데이케어 가는 것이 즐거워졌고, 가서도 자신만만, 약간 터프하다는 것을 느낀다. 또 가고 오는 사이에도 아주 명랑해졌다. 아리 스스로도 그걸 느끼는 것 같다. 이를테면 큰소리로 말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이! 하고 인사하니까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은 집 밖으로 나서면 곧잘 인사하고, 데이케어에서도 보다 활발해졌다.

사실은 숙고 끝에 4월부터 데이케어를 그만 두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고, 엄마가 이메일로 지난 금요일에 통보를 한 상태다. 엄마는 할머니가 고생하는 것이라며 매우 망서렸고, 할머니에게 사서 고생하려고 한다면서 돈이 들어도 보내겠다고 한 것을 할머니가 막았다. 물론 할머니 자신도 갈등이긴 하다. 시간을 뺏기는 것과 체력문제 때문에. 하지만 할머니는 손자의 교육도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