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4일(금)-설 음식과 할머니는 왜 고추가 없어?
오늘은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금요일. 오늘 하루만 하면 주말 이틀 동안 쉴 수 있구나, 하고. 하지만 실제로는 온가족이 있는 주말이면 더욱 바쁘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쉬는 엄마아빠가 쉬게 하려다보니, 쉬려고 했던 할머니의 계획은 사라지고 만다. 엄마는 도리 보살피느라고, 아빠는 회사일로. 오늘 하루만 지나면 주말 이틀 동안을 할머니 시간을 가져야지, 했던 기대도 사라지고 만다. 정작 주말이 되면 할 일이 더 많다. 도리를 봐주는 것도 그렇지만 오히려 아리가 집에 있으니까 할머니에게는 쉴 틈마저도 없다. 그런데 책읽기는 고사하고 자잘한 일들이 더 많아서 피곤할 지경이다. 지금, <1Q84> 3권과 <TV 피플>을 손에 잡은 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읽기를 마치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다. 사흘 전에 엄마로부터 받은 책 선물, 얼마나 할머니가 기뻤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발전 사전>. 지난 달 언젠가 신문에서 그 책에 대한 썸머리를 읽고 그 책을 읽고 싶었지. 그래서 얼마 전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아마존에 주문해서 어제 배달을 해온 거야. 받는 순간 얼마나 흥분되던지. 곧 바로 읽고 싶어서 식탁위에 놓아두었지만 아직 첫 장도 못 펼치고 있단다.
이번 금요일도 마찬가지. 한국은 어제가 설이었지만 우리는 마음뿐이고. 그래서 주말에 설을 쇠기로 했지. 설 쇰이라고 해도 약소하지만. 마침 아리의 한국 킨더 가든에서 음식 한 가지씩 가지고 와서 나눠먹으며 노는 시간을 갖겠다고 해서 겸사겸사 오늘은 음식준비를 했단다. 애호박, 얌(호박고구마와 비슷 일종), 비트, 감자, 흰살 생선. 통째로 동글납작하게 썰어서 지지고, 일부는 글라인더로 갈아서 전을 부쳤
'나도 테이블에 앉고싶어요' 아마 이게 도리의 마음일거예요. 식사시간이면 늘 이렇게 엄마옆의 바닥. 그러니까 아리가 빨리 자라서 한 테이블에 같이 앉고 싶겠죠. ^*^
지. 우유빛 나는 감자전, 연 초록의 호박전, 자주색의 비트전, 호박색의 고구마전, 그리고 흰살 생선. 모두가 어찌 그리 고운 색이 나오는지. 할머니는 늘 ‘어린애 같다’는 말을 듣지만 자연의 신비함과 능력에 할 때마다 감탄하고 고마운 마음이란다. 오전에 아리를 데이케어에 데려다주고 와서 엄마와 함께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는 곧바로 준비하지 시작해서 5시, 아리를 픽업하러가기까지 단 일분도 쉬지 않고 했단다. 나중엔 엄마가 와서 잠시 도와주기까지 했는데도 생선전과 호박전을 마치지 못해서 벌려놓은 대로 두고, 5시에 아리를 픽업하러 갔지.
그런데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리가 물었다. “할머니, 와이 유어 핑거, 벤드에이지?” 할머니의 왼쪽 엄지손가락에 밴드를 감은 것을 본 것이다. 아침에 놀이에 빠져 꾸물거리는 아리에게 옷을 입히다가 진 바지의 지퍼에 걸려 손톱 중간이 찢어졌는데, 걸리적거려서 밴드로 감아 붙였다. “오늘 아침에 아리 너, 바지 입히다가 그랬잖아. 기억나니?” 고개를 끄덕이며 “오, 쏘리. 쏘리 할머니.” 걱정스런 눈빛으로 다가와서 엄지손가락에 뽀뽀를 한다.
아리는 할머니에게 은근히 신경을 많이 쓴다. 어쩌다가 할머니가 장갑을 끼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 ‘장갑 어디 있느냐’고 챙기기도 하고, 할머니가 어쩌다가 비틀거리면 ‘할머니 아 유 오케이?’하고 걱정스럽게 확인하기도 한다. 그럴 땐 할머니는 정말 아리가 든든하고 대견스럽단다.^*^ 캐롤라인 선생님이 그걸 보고 다가왔다. “아리, 웟츠 업?” 할머니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대답했지. “오우, 아리 베리 워리드 어바웃 그램마, 어바웃 디스 원.” 캐롤라인 선생님이 아리에게 ‘와, 너 매우 할머니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말하면서 ‘아리 넌 좋은 애야’하고 했다. 그리고 다음 월요일부터는 코니가 맡게 된다고. 병가나 휴가 떠나는 선생님이 있을 때 연락하면 그때 자기가 대신 나온다고 이야기 했다.
할머니가 서운하다고 말했지. 캐롤라인 선생님은 늘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리드해나갔고, 또박 또박 지시하며 아리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편이어서, 코니 선생님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매정해보이고 딱딱한 도나 선생님과는 다르거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리가 캐롤라인 선생님에게 다가가 크게 포옹을 하는 것이다. “땡큐, 아리. 아리, 땡큐!” 캐롤라인 선생님이 아리를 깊이 안으며 고마워했다.
보세요, 디터트 타임에도 오빠랑 엄마아빠끼리만 이야기 나누잖아요. 나도 얼른 커서 디저트타임 함께 즐기고 싶어요.
아리를 픽업해서 6시 반경에 돌아왔지. 오늘은 약간, 10분쯤? 늦었지. 왜? 스파다이너 스테이션에서 스트릿 카를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킹 스트리트’로 가는 것에 이어 아리가 좋아하는 ‘블루 스트릿 카’가 뒤따라 있는 거야. ‘유니온 스테이션’이라는 행선지 표지를 한 채로. 와, 블루스트리트 카를 탄다! 그런데 이게 왠일, 오우, 그 스트릿 카가 서지 않고 손님을 태우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가고 만 거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리의 서운함은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이어서 3대가 연속으로 ‘킹’ 행이었고, 4번째로 ‘유니온 스테이션’행이 왔는데 아리는 ‘블루 스트릿 카’를 타자고 하는 거야. 그래서 두 대나 지나가도록 타지 않고 기다렸지. 할 수 없이 아리를 달래어서 세 번째 ‘유니온 스테이션’행을 탔지. “오우, 얄미운 블루 스트릿 카! 아리야 다음에 타자. 대신 집에 가면 할머니가 아리 좋아하는 한국 팬 케잌 만들어 놨어.” 그랬더니 아리의 못내 찜찜해 하던 마음이 돌아섰다. 아리는 ‘부침개’를 펜케잌이라고도 한다. “오우, 한국 펜 케잌, 야미! 아이 라이크 할머니 펜케잌!” 돌아오자마자 아빠가 좀 늦게, 지금에야 출발한다는 전화가 왔다고 엄마가 말하잖아. 그래서 다시 하던 일을 마치고 저녁식탁 준비를 했지. 생선전과 나머지 애호박전을 마저 마치고 뒷설거지를 하고 저녁
그래서 제가 앙앙댔죠. 그랬더니 아빠는 또 손가락을 제 입에 넣어주는 거예요. 아빠는 가끔 제가 떼를 쓸 때 이렇게 한답니다. 그래서 전 빨리 자라고 싶어요.
식탁과 내일 아리가 코리아 킨더 가든에 가져갈 음식 준비. 지난여름 할머니가 한국에서 사온 스테인레스 찬합에 색 맞춰서 담았지. 하는 사이사이 뜨거운 할머니 손으로 전 쪼가리를 들고 아리방으로 가서 놀고 있는 엄마와 아리의 입에 한 입씩 넣어주곤 했지.
그때마다 아리와 엄마가 하는 말. “오, 야미!” 그 말이 할머니를 피고도 잊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단다. 어떤 땐, “아리야, 이리 와.” 하고 부르면 “녜, 할머니!” 하고 쪼르르 달려오는 아리.(사실 요즘 할머니가 부르는 말에 대꾸도 없이 놀이에 빠져있다거나, 또 아빠만 있으면 할머니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 주의를 주고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아리가 그러면 할머니가 행복하지 않다고. 할머니가 아리하고 베스트 프랜드 안할 거라고 은근이 협박조다. 그랬더니 이젠 의도적으로 꾸며서 예쁘게 녜, 하고 대답한다. 녀석!^*^) “할머니, 와이?” “아~ 해.” 아리의 입에다 전 조각을 넣어준다. “오, 야미!” 소리치며 장난감을 들고 놀기를 계속한다. 할머니도 어린 시적, 한국의 왕할머니가 그렇게 해주셨지. 행복한 추억이야.
제가 가끔 왜 시무룩해지는 지 아세요? 쓸쓸하기 때문이예요. 제가 아직 어리기 때문인거 알아요. 그래서 빨리 자라고 싶어요.
그렇게 분주한데 아빠가 퇴근. “오우, 할머니 빅 웤!” 아빠 역시 할머니가 만든 한국음식 좋아하잖아. 식사시간이 끝나면 엄마는 도리를 돌보러 요람으로 가고, 아리는 거실을 종횡으로 뛰어다니고, 아빠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지. 할머니가 만류하지만 어느 새 아빠가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면서 하는 말, “할머니, 빅 수고!” 할머닌 이런 시간이 참 행복하단다. 할머니가 만든 음식을 너희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감사해하면서 즐거움이 가득 차는 우리집. 아빠가 설거지를 해주니까 할머니가 낮부터 미뤄왔던 샤워를 했지. 그런데 아리가 그 사이를 못 참고 이층에 있는 할머니의 워시룸에 덤프트럭을 몰고 온 거야. 할머니가 문을 반쯤 열어놨거든. 왜? 수증기로 집안에 습기 조절하느라고. 할머니는 늘 그렇게 하잖아. 욕조 커튼 을 젖히며 할머니가 ‘아리!’하고 불렀더니 재미있어서 깔깔깔. 그리고 나서 이내 잠잠해졌는데, 갑자기 욕조 커튼을 젖히며 나타난 아리. 홀랑 벗고 깔깔깔.
“할머니이~” “으! 아리!” “아이 원 베쓰 위즈 할머니!(할머니하고 목욕할 테야.)” 아리가 세 살 때 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작년 봄이지. 저쪽 콘도에 살 때니까. 그때까지는 아리와 함께 샤워를 했지만 지금의 새 콘도로 이사 온 후부터는 아빠가 아리의 목욕을 시켜줬지. 할머니가 힘들다고. 그런데 오늘 갑자기 아리가 할머니 샤워하는 것을 보더니 벗고 뛰어 들어온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욕조 안에 물을 받기 시작했지. 욕조 안으로 들어온 아리는 할머니에게 안겨서 물을 퐁당거리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해하면서도 가끔 심통이 난답니다. 그래서 으앙~
“아이 니드 유어 렙.(할머니 무릎에 앉을래요.)” 욕조 바닥에서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등에 따뜻한 물을 끼얹어주며 장난도 치고.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둘이서 다리를 쭉 펴고 따뜻한 물속에 앉았다. “할머니, 도도전라도” 평소에 하던 ‘도도전라도를 하자고 한다. “도, 도, 전라도, 충청감사 도감사, 서리가 육도에 판!” 할머니가 물을 첨벙거리면서 도, 도, 전라도… 물속에서 다리를 뻗고 손도 뻗고, 접고 감추고…
목욕이 아니고 놀이다. 아리가 얼마나 좋아 하는지. 자주 그런 걸 느끼지만 아리가 좋아할 때의 표현을 하자면 그야말로 ‘몸살이 난 정도’이다. 그것이 할머니도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목욕을 하다가 아리가 갑자기 할머니 고추를 보고는 제 고추를 보이면서 묻는다.
“와이 유 아 낫씽?(할머닌 왜 고추가 없어요?)” “할머니는 여자니까.” “걸?(girl?)” "응, 걸, 여자. 엄마도 여자니까 고추가 없고, 할머니도 여자니까 고추가 없지." “앤 댄, 아빠 있어?”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그렇지, 아빠는 남자니까, 아리도 남자니까. 남자만 고추가 있는 거야.” “할머니, 앤 댄, 까밀라, 고추, 없어?” 데이케어에서 좋아하는 여자 친구 까밀라를 댄다. “그렇지. 까밀라는 여자니까. 그렇지만 알렉산더는 있지. 남자잖아. 그리고 리오도…” 아이들 이름이 더 이상 생각이 안 나서 머뭇거렸더니 아리가 이어간다. “제프리도 앤 맥도.” “그렇지.” 이런 것이 곧 성교육이려니.^*^ 목욕이 끝나고 몸을 닦는데, 김이 서린 거울을 가리킨다. “웟스 댓?” “수증기. 요즘 우리 아리 수증기 잘 알잖아. 저것도 수증기야.” 고래를 끄덕인다.
에이,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그게 편하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도 바닥에 엎드려 워시룸의 문 안쪽에 붙여놓은 TTC 맵과 한글자판을 번갈아 보아가며 엉터리지만 읽기도 하고 여기저기 손가락으로 짚어 내기도 한다. “아, 히얼이즈 핀치 스테이션.” “유니온 스테이션은 어디야?” “히어.” “쎄인 죠지 스테이션은?” “……” 그러다가 한글자판을 보고 “마 바 아 …” 되는대로 주워섬긴다. 물론 다 정확하지도 않고 맞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교육이라는 것이 할머니의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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