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2-아리랑 도리랑

656-just look like 수증기!

천마리학 2011. 2. 14. 02:01

 

 

  

*2011년 1월 14일(금)-just look like 수증기!

 

 

 

아침에 집 밖으로 나서는데( -12도, 체감온도는 -22도) 차가운 날씨 때문에 할머니 코와 아리의 코에서 나오는 콧김이 보였다. 할머니가 콧김을 가리키며 이것도 ‘수증기’라고 했다.

아리가 두 살 때, 전에 살던 콘도의 거실이나 발코니에서 기차가 내뿜는 칙칙폭폭 연기를 보며, 그리고 길 건너 옆 건물의 지붕 굴뚝에서 퐁퐁 올라오는 연기를 보며, 수증기에 대해 알려준 일이 있다.

그동안 ‘김’이라고도 가리키면서도 어떻게 이해할까 고심했었다. 식탁 위에서 먹는 김을 놓고, 이것도 ‘김’? 하며 두 가지를 구별시켜 인식하게 하느라고 애를 썼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다시 ‘수증기’라는 단어를 또 알려준 일이 있다. 그리고 달리는 차 안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는 굴뚝을 발견하면 또 ‘수증기’라는 설명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증기’라는, 다소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는 한글 단어를 아리가 알게 되었다. 어쩌면 어려울 거라는 건 할머니의 생각일 뿐이다. 아리는 별로 어렵지 않게 ‘수증기’를 기억하는 걸 보면.

또 하얀 연기가 퐁퐁 올라오는 커다란 굴뚝을 보면서 ‘구름공장’이라고 표현하며, 즉석 창작동화를 지어서 들려주기도 했었다.

 

 

 

토론토 대학의 동아시아 도서관이 있는 로버츠 도서관에서

 

 

 

“하늘에서 구름 한 덩이가 떠다녔어요. 오래 동안 다니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말랐어요. 물이 먹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하늘엔 샘이 없었어요. 지나가는 다른 구름덩이를 만나서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 구름덩이가 알려줬어요. 저쪽으로 가면 구름공장이 있는데, 거기가면 물을 먹을 수 있다고 했어요. 자기도 방금 거기서 나왔다는 거예요. 몸도 축축해져서 목이 마르지 않고 또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구름덩이는 그쪽으로 날아갔어요. 정말 거기 구름공장이 있었어요. 퐁퐁 하얀 수증기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래서 구름덩이가 그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어요. ‘하이!’ 수증기 친구들이 손을 잡아줬어요. 그랬더니 정말 몸이 축축해졌어요. 그리고 구름공장의 굴뚝에 코를 댔어요. 수증기들이 콧속으로 밀려들어갔어요. 목마르던 것이 사라졌어요.

‘자, 나 따라와 봐. 그럼 너희들도 구름이 될 수 있어.’ 구름덩이가 굴뚝에서 올라온 수증기들의 손을 잡고 하늘을 훨훨 날았어요. 수증기들이 점점 구름이 되어갔어요.

‘정말, 구름이 되는구나. 고마워 구름아.’

수증기들이 구름에게 감사했어요. 구름이 대답했어요. ‘이젠 너희들도 나와 같은 구름이야. 우리 모두 친구가 된 거야. 자. 이제부터 하늘을 날아다녀보자꾸나! 구름들이 훨훨 하늘을 떠돌았어요. 아리, 봐, 저기 하늘에 구름들이 많이 있잖아?”

흥미롭게 듣던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보곤 했다.

 

 

 

 

 

 

 

이런 식으로 늘 할머니는 아리에게 지식에 대한 부분을 조금씩 키워나가면서도, 그것이 다 인식하고 기억하리란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잊고, 또 때가 되면 알려주고, 잊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호기심과 기억력과 인식력이 생기고 커지리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어느 날 아침, 데이케어에 가느라고 스트리트 카를 타고 칼리지 스트리트를 지나는데 어떤 건물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퐁퐁 올라오는 것을 보며 다시 ‘김’ 과 ‘수증기’ ‘구름’ ‘구름공장’이야기를 해봤다. 한국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기억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뭔가 생각날 듯, 생각날 듯 하면서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수증기’ 하고 말했더니 ‘바로 그것’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김’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서 서툴게 토막토막 이야기로 표현하였다. 물론 그 표현들이 토막 단어나 토막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것이 전에 들었던 기억의 창고에 남아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알 수 있었다.

 

 

 

 

 

 

이번엔 할머니의 설명이 구름을 거쳐 ‘물’까지 이르렀다.

또다시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물의 순환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저 콘도에서 추워서 물을 끓여 보일러를 돌리나봐 ……”

김이 많이 뭉쳐 수증기로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하늘을 떠돌다가 너무나 무거워지면 물이 되어서 땅으로 내려오는데, 어떤 물은 땅 속에서 우묵한 곳에 고여서 샘이 되고, 목이 마른 나무가 뿌리로 물을 마시면 나무의 몸으로 올라가서 나뭇잎에서 햇볕에 다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또 샘에 고인 물은 사람들이 목이 마를 때 마시게 되고,

또 어떤 물은 땅에 스며있다가 강이 되고, 바다로 가서 더 큰 물이 되고,

그 물이 다시 수증기로 하늘로 올라가고…

이렇게 어려운 수업이 있을까? 이해시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또 어디 있을까?하는 도단을 느끼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세 살 어린 것에게 하긴 설명도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입이 마르도록, 쉽게 쉽게 설명하느라고 때로 목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리가 지겨워하지 않고 집중해서 들어주고, 일부는 이해가 되는 지 대꾸도 가끔 해가면서…

그렇게 할머니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길다. 길고 힘들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꺼낸 ‘수증기’라는 단어를 아리가 기억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내심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아리는 또 토를 단다.

“룩스 라이크 수증기!” 해

매사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자신의 의사를 붙일 뿐만 아니라 기어이 자신의 의사대로 우기는 것,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굽히지 않는 것 또한 아리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이론이 나름대로 틀리지 않고 논리가 정연하여 은근히 놀라곤 한다.

지금도 ‘수증기’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잠시 뜸을 들여 ‘수증기처럼 보일뿐’이라고 할머니의 의견에 토를 다는 것이다.

“아냐, 정말 수증기야.”

그랬더니 다시 주장한다.

“아이 노우, 아이 노우, 벗, … 온리, 저스트 룩스 라이크 수증기. 오케이 할머니?”

녀석!

웃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어린 것에게 ‘물의 순환’이라는 과학을 가르치려들다니!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다.^*^

 

 

 

 

 

 

 

 

저녁식사 후, 아리는 또다시 가족게임의 리더 노릇을 했다.

주말 저녁이라 매주 금요일 오후부터 우리 집은 모두 주말태세를 취하면서 느긋해진다.

우리 집 주말태세는 ‣가능한 한 집안청소도 하지 않고, ‣평소의 룰에서 벗어나 최대한 각자 편안한 자세로 ‣느긋하게 가족대화의 시간인 티타임, ‣최소한 영화 한편 정도 감상하기, ‣ 가족함께 외출하기 등이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이면 아리가 원하는 대로 놀아주는 시간이 되곤 하는데, 오늘저녁엔 아리가 또 짖궂은 장난을 펼쳤다.

식탁주변에 의자며 쿳션이며 온갖 가구들을 옮겨 ‘집’을 만들고 그 ‘집’의 구석구석에 아리의 플랜에 의해서 짜여진 아리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앉는 자리도 각각 정해주고 아리가 진행하는 대로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스페이스  쉽을 그리고 있는 아리.

요즘 아리는 스페이스 쉽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답니다.

 

 

 

오늘은 아빠, 할머니, 엄마 모두를 차례로 노래를 하게 하더니 다음엔 춤을 추라고 한다. 물론 아리 자신이 먼저 선을 보이고 그대로 하라는 ‘명령’이다. 춤까지 추고 났더니 이젠 ‘케이브’로 들어가 숨어야 한다면서 식탁 아래로 기어들어가게 한다. 엄마, 할머니가 들어가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아빠가 문제다. 그 큰 덩치가 식탁 아래로 기어들어가서 지정한 자리에 엎드려야 한다.

모두 들어가 얼기설기 얽혀서 엎드렸더니 가운데로 자신이 들어가 자리 잡으며 얼마나 재미있어하는 지, 그야말로 재미가 옥실옥실한 표정이다. 그 만족함을 보는 일이 우리에겐 남다른 즐거움이다.

엎드려 있으면 이번엔 모두 누우라고 한다. 이렇게 모두 있는 만족한 재미있는 시간을 오래 끌고 싶어 부리는 아리의 수작임을 나는 안다. 지칠 줄 모르는 애너지, 애너지가 넘치는 아리! 그리고,

아리는 굿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