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620-할머니, 쌩마이클병원에 입원

천마리학 2011. 1. 1. 06:31

 

 

 

*2010년 10월29일(금)-할머니, 쌩마이클병원에 입원 

 

 

일기쓰기가 오랜만이구나 아리!

그동안 할머니가 아팠기 때문이지.

 

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23일, 아리가 엄마아빠랑 코리안 킨더 가든을 마치고 2시경에 집 앞으로 와서 할머니를 픽업하여 함께 카베이지 스트리트에 있는 리버데일 팜에 갔지. 그곳에서 할로윈 축제가 있다고 해서. 원고정리에 바빠서 너희들을 보내고 난 오전 중에 모처럼 할머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원고는 쌓여있고 머리가 뒤숭숭하던 차에 에라 가보자 하고 나선 거였지.

냉장고에서 부추부침개랑 사과와 복숭아를 한 개씩 들고. 그때까지 할머닌 점심을 먹지 않았으니까.

너희들과 함께 리버데일 팜에 가는 도중 차안에서 부침개 세 쪽쯤 먹었지. 그런데 그때부터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하는데 증상이 어딘가 이상했어. 지난여름 할머니가 한국에 가있을 때도 한번 그랬거든. 토사광란. 일종의 위경련이지. 그거 엄청 아프거든.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통증을 견디며 리버데일 팜에 갔지.

오래된 농장이었는데 벌써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와있었지.

우리 아리는 언제나처럼 그저 신나고 즐거웠지. 관, 해골, 거미줄, 귀신 등등을 설치해놓은 캄캄한 창고 안에 들어갔지. 엄마는 임신 중이니까 놀라면 안돼서 밖에 있고, 아리는 할머니와 아빠의 손을 잡고.

관 옆을 지나가면 관속에 누워있는 사람이 벌떡 일어나 으르렁대고, 또 어디를 지나가면 해골이 튀어나와 놀라게 하고, 아디는 공중에 귀신이 매달려 너울대고… 아리는 무서워서 뒤로 꽁무니를 빼며 숨죽이고 겨우 따랐지.

 

 

 

아리는 문병오자마자 양말부터 벗고 바지를 벗기시작했습니다.

왜그러냐?고 했더니 아주 태연히 할머니 옆에 눕기 위해서랍니다.

집에서 하는 그대로입니다.

할머니 불편하다고 엄마랑은 걱정했지만 아리를 만나니까 아픈것도 다 사라지고...

아리도 할머니가 아픈 것이 뭔지도 모르고...

우리사이를 누가 말립니까? 

 

 

 

연못구경도 하고, 동물구경도 하고...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비치스로 가서 일본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일본식 요리를 먹었지. 그런데 그때까지보다 할머니의 통증은 더 짧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거야.

집으로 돌아왔을 무렵엔 더욱 심해지고… 엄마아빠가 안되겠다고 간호사에게 전화하고, 엄마가 인터넷에서 단방약을 찾아보고, 달걀껍질을 구워서 가루로 만들어주어 그걸 먹기도 하고, 또 통증이 올 때마다 명치끝을 눌러주면서 통증을 갈아 앉히려고 도와주면서도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가라고 했지.

 

정말 너무 아파서 아빠하고 병원에 갔지. 한국 같았으면 혼자 견디며 딩굴었을 텐데…

주차장에서 아빠 팔을 붙들고 병원까지 가는데 정말 아파서 쓰러질 것 같았단다. 너무나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으니까. 결국 병원현관에 겨우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고 땅바닥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단다. 그래서 시작된 응급조처.

그런데 의사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해서 진정제를 맞고 조처를 한 다음 입원실로 옮겨졌지. 새벽녘이었어. 그때서야 아빠가 집으로 가고.

 

 

아리는 지금 열심히 동화를 구연하고 있습니다.

아주 신이 납니다.

온갖 흉내를 다 내면서 평소에 할머니에게 들었거나 함께 본 이야기들을

구연하고 있답니다.

 

 

 

다음날 오전에 엄마랑 아리랑 함께 다시 왔지.

코에, 팔에, 튜브를 꽂고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우리 아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는 말,

“와이 아 류 식크? 할머니?”

울먹이던 것도 잠깐, 어느 사이 양말을 벗고 할머니 곁에 바싹 붙어 누운 아리가 바지를 벗는 거야. 왜 벗느냐고 물었더니 “나도 할머니처럼 하고 할머니랑 함께 누워 있을 거예요.” 했어.

요렇게 깜찍할 수가. 다 웃고 말았지. 할머니가 환자용 가운만 입고 있었으니까.

할머니에게 읽어준다고 가슴에 책을 펼쳐놓고 종알종알!

일어났다 누었다 침대위에서 깡충깡충!

할머니 얘기! 하면서 보채는 우리 아리,

할머니 더 아프게 한다고 엄마가 뜯어 내리자 병실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우리 아리를 누가 말릴까?

할머닌 아프면서도 그러는 아리가 너무 좋아.

^*^

 

 

 

지금 아리가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 뭔지 아세요?

놀라지 마세요.

할머니가 보밋 하고 싶을 (토하고싶을)때 쓰는 그릇이랍니다.

아리의 팻션!

알아줘야 합니다.

 

 

 

장폐색증.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온통 약으로만. 수술을 할 것인지 그냥 치료로 끝날 것인지 경과를 두고봐야한다는 의사. 끝없이 이어지는 체크, 체크, 체크...

가스가 나와야하고 푸푸가 나와야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가스는 안 나오고.

걸어 다니는 것이 장에 좋다고 해서 할머닌 주렁주렁 튜브를 매달 스탠드를 밀고 16층을 열다섯 바퀴씩 돌고.

아리가 바퀴위에 올라타고 스위스 가자. 한국에 가자. 하면서 함께.

날마다 엄마는 퇴근 후 데이케어에서 너를 픽업해서 오고, 아빠도 병실로 퇴근하고. 병실에서 저녁을 먹고. 저녁에야 돌아가곤 했지. 돌아갈 때마다 함께 가자고, 함께 있겠다고 우는 우리 아리! 그 슬픈 얼굴을 보면서 할머닌 너무나 고마웠단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저녁 무렵, 너희들이 돌아간 밤중에 가스가 조금 나왔어. 다음날에 조금 더. 고비를 넘긴 거지. 수술은 안 해도 될 만큼.

그래서 수요일, 닷새 만에 퇴원을 했지. 그래도 병원에 있는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2권을 다 읽었단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을 쉬면서 보냈지.

그래서 우리 아리의 육아일기를 오랜만에 쓰게 된 거지.

 

늘 아리에게 그리고 엄마아빠에게 건강을 강조하는 할머니가 아팠으니.

^*^

아리야, 넌 정말 건강하게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