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610 -할머니기억해요?

천마리학 2010. 12. 28. 00:41

 

*2010년 9월19일(일)-할머니기억해요?

 

 

요즘 아리가 할머니에게 자주 요구하는 말들이 있다.

Do you remember ?(할머니 기억해요?) pretending(하는 척 하기) 이다.

같이 놀아달라고 요구하고는 그것을 할머니가 자기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해주지 않을 기색이 보이면 꼭 하는 말이다.

“Halmunee, Let`s play with me."

일단 이렇게 말해놓고는 할머니를 빤히 바라보면서,

레고로 높기 탑쌓기를 하자거나, 엑서사이즈 룸에 가자거나, 숨바꼭질을 하자거나 할 때, 그 말의 앞이나 뒤에 꼭 한다.

엑서사이즈 룸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 쉬운 일이기 때문에 눈치 살펴가며 주의를 요하는 일이어서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만 가곤 한다. 전에 살던 콘도에서도 일부러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했었다. 그런데 아리는 시도 때도 없이 제 마음 내키면 가자고 하니까 할머니가 난색을 표하게 되는데, 그럴 때 아리는 어김없이 말한다.

“Let`s go exercise room Halmunee. … We go to there before, Do you remember ?(할머니 기억해요?) Ah?"

 

 

 

 

 

 

또 거실에서 소파나 식탁주변을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는 것은 아리가 매우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할머니로서는 힘이 들기도 하고, 아리가 스스로 속도제한을 하거나 장애물들을 피하는 요령이 미숙하기 때문에 때로 위험할 때가 있다. 게다가 아리는 너무 열정적이어서 놀기 시작하면 맹렬해지곤 해서 할머니가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곤 한다.

그래서 자제시키고 꺼리면서 다음에 하자고 하면 기어이 말하곤 한다.

“할머니, 캐치 미! 캐치 미!”

하고는 응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계속 설명과 강요 섞인 구걸(^*^)을 한다.

“내가 할머니를 캣치하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할머니가 나를 캐치하면 할머니가 윈, 애앤드, …… We did it. Do you remember? Halmunee? Ah?”

할수없이 술래잡기를 시작하면 아리는 그만 놀이에 빠져 정신없이 즐거운데, 아리가 숨기 전에 할머니가 터치! 하면 노우노우! 숨을 헐떡이며 난리다.

“유 던 캐치 미. 유 치딩 !”

자기가 그 자리에 섰을땐 할머니가 자기를 터치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시로 룰을 저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고 바꾸고... 정말 귀엽다. 어떤 땐 할머니가 “니가 그랬잖아?”하고 따지면, 저 자신도 염치가 있어서 “프리텐딩~” 하거나 “잇 저스트 프리텐딩~” 하며 웃으며 넘긴다.

요 깜찍한 녀석 같으니라구!

흥! 하고 할머니가 토라진 척 하면 아리는 또 겁이 난다. 안 놀아줄까봐서.

이번엔 놀이를 바꾼다. 오, 아리의 끊임없는 정력!

레고 그릇을 들고 나와 하자고 한다. 할머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이번엔 높이 탑을 쌓자고 제안한다. 제 딴에는 그 일에 할머니가 흥미를 가져줄 거라고 예상하는 모양이다.

“We make a top, high, high, higher~"

하며 발뒤꿈치까지 세워가며 사정한다.

“like this, like this. you, remember that? 응? 할머니?"

할머니의 눈을 응시하며 키를 높이고 손을 허공으로 뻗어 높은 흉내를 내면서도 할머니의 표정을 살핀다. 그 눈망울과 표정을 보면 할머닌 또다시 아리의 요구에 녹아버리는 눈사람이 되고 만다.

 

 

 

 

 

 

가끔 라이온슬라이드에 가자도 한다. 할머니는 지금 몹시 피곤한데말이다.

할머니가 들어주지 않으면 또 말한다.

“아이엠 라이딩 바이시클, 앤드 고우 아웃. 쓰로 테리폭스 파크. 앤드 크로스 더 로드. 앤드 … 데어리즈 라이온슬라이드. 드유 리멤버 할머니? 응? 우이 투게더 고우 데어, 응? 드유 리멤버?”

눈을 깜빡이고, 제법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애절하게 설명한다.

그 애절함을 물리칠 수가 없어서 ‘오케이’ 한 마디 하는 순간, 아리의 표정을 보면 누구나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금방 신바람이 나서 할머니앞에서 엉덩이 춤을 추기도 하고, 양 다리를 번갈아 뛰는 아리 특유의 댄스 스텝을 추어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신발장으로 가서 평소에는 혼자서 잘 하려고도 하지 않는 신발을 먼저 주워 챙겨 신고, 자켓을 꺼내오고… 부산하다.

오, 이런 천사를 할머니가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조금만 힘든 것을 참으면, 그리고 귀한 시간을 조금만 내어준다고 생각하며 들어주면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고맙습니다, 천사와 함께 살게 해줘서!

 

이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 우리 아리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인류의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란 훗날을 상상해보며 할머니의 가슴은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아리야. 꼭 알아줘야 해!

알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