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604-할머니의 슬픈 추억여행

천마리학 2010. 10. 18. 05:04


*2010년 8월 31일(화)-할머니의 슬픈 추억여행 




잘 지내고 있겠지 아리?

이른 새벽인 오전 4시에 잠을 깨어 이 글을 쓴다.

할머닌 3일간의 추억여행을 마치고 어제 돌아왔다.

28일, 형섭이 삼촌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부산할머니내외와 함께 출발한 추억여행. 먼저 익산시를 목적지로 생각하고 호남쪽으로 내려갔다.

할머닌 제작년에 귀국했을 때도 독산동 왕할아버지와 왕할머니를 모시고 한바퀴 돈 여행을 이번엔 부산 할머니를 위해서 하는 여행이란다.

가는 길에 가끔씩 군데군데 소나기를 만나기도 했지. 논산 근처에 내려가자 어두워졌고 비도 내리고 해서 저녁식사도 할 겸, 논산에서 자기로 결정했지. 부산 할머니가 관촉사라고 하는 절ㅇ에 가보자고 해서. 은진 미륵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할머니와 부산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수학여행을 갔던 곳, 인근에선 유명한 절이지.

관촉사가 있는 마을의 여관에 들었다.

할머니는 ‘은진 미륵’에 관한 전설을 부산 할머니에게 들려줬지.

너도 한번 들어볼래?

옛날옛적 한 스님이 깊은 불심으로 커다란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지. 커다란 돌을 쪼아서 이등분으로 조각하기로 하고 몸통의 아랫부분을 먼저 만들어 땅에 자리해 놓은 다음 윗부분을 만들었지. 윗부분을 올려놓아야하는데 너무나 무거워서 도저히 올려놓을 수가 없어서 고민을 하며 보내는 어느 날 밤 꿈을 꾼 거야.

꿈속에서 어린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더래. 스님이 지켜보고 있었더니 아이들이 흙으로 불상을 이등분으로 만들어서 아랫부분을 제자리에 놓은 다음, 그 둘레를 흙으로 에워싼 다음 그 흙무더기 위로 윗부분을 굴려 올리더란 거야.

스님이 그걸 보고 아하! 하고 보니 꿈이었던 거야.

꿈에서 깨어난 스님이 어린아이들이 하던 방법으로 윗부분을 올릴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단다. 물론 할머니도 어릴 적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이제 아리, 너에게 들려주는 거야.

하룻밤 자고난 아침에도 비가 내리더구나. 우산을 받고 몸이 불편한 부산 할머니를 부축해가며 관촉사 절의 높은 계단을 올라 경내를 다 돌아봤지. 옛날보다는 훨씬 커진 모습이지. 제작년에 들렸을 땐 절 앞의 연밭에 연꽃이 피어있었는데 이번에 약간 늦어서 꽃은 다 지고 연잎만 무성하더구나.

다음엔 익산시로 갔단다.




 아리가 이렇게 하버프론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할머니는 한국에서 슬픈 여행을 하고 있었지.

왜 슬플까?

 


 

 

낯설어진 시내에 들어서서 먼저 원광대학교와 원불교 총부를 돌아보고 그 다음엔 우리의 모교인 이리여자 중고등학교를 찾아갔지. 시가지가 너무나 많이 바뀌어서 길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갔단다.

그런데 한 교정에 나란히 있던 이리여자중학교와 이리여자고등학교가 달라져 있었다. 이리여자중학교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름도 지원중학교로 바뀌어 남녀공학이 되었다는구나. 이리여자중학교 교사까지 통합하여 이리여자고등학교로 있었는데 옛교사가 있기도 하고 새로 지어진 건물도 있고 위치가 달라지기도 했더구나. 생활지도관이 ‘지초당’이란 현판을 붙이고 있더구나.

그다음은 중앙동의 옛날 살던 집. 재작년에 여기도 왔었지.

어렸을 땐 그렇게도 크고 우람하게 여겨졌던 이리우체국건물이 작고 집들도 나지막하고 옛날 느낌보다는 훨씬 초라하게 보였지.

다음 코스 역시 목천동 목상리에 살던 옛집. 양조장과 정미소를 했던 곳인데 지금은 건물도 새로 짓고 집 앞으로 흐르던 시냇물도 없어져 주차장이 되었단다. 여기도 재작년에 들렸을 땐 무슨 요양시설 같았는데 이번에 그 간판마저 없어졌더구나.

다음은 목천동의 남초등학교.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 할머닌 이 학교에서 졸업을 했고 부산할머닌 이 학교에서 3학년을 다니다가 이리 중앙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재작년 모습 그대로였는데 초등학교다운 벽그림을 배경으로 옛날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었단다.

다음은 황산, 가장 어릴 때 살던 곳. 황강초등학교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무슨 공장건물같은 것들이 들어섰는데 담장이 높이 둘러쳐있고 비가 내려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지. 동네 안 골목으로 들어가 옛날에 살던 집 앞으로 지나갈 때 쯤 자동차의 하체가 텅! 하고 부딪치기도 했지. 또 ‘류흥평’이란 문패가 달린 옆집이 바로 어릴때 할머니친구인 ‘금님’이네 집이고 흥평이란 이름이 금님이네 오빠 이름이었던 걸 떠올렸단다. 어릴 때 다니던 교회 앞을 지나 용대네집으로 생각되는 골목을 돌아나왔지. 참 많은 추억이 서린 동네를 빠져나와 이번엔 부용(芙蓉)으로.

부용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옛날 살던 집 앞을 지나, 부용초등학교, 어릴 때 다섯 남매가 주말이면 염소를 몰고 올라가 뛰놀던 보미산 까지 돌아봤지. 그때 할머니는 다섯 남매의 맞이로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까?를 도모했던 곳이란다. 그때 할머닌 작가, 부산할머닌 선생님, 큰 할아버진 의사, 작은 할아버진 공무원, 그리고 막네할머닌 너무 어려서 간호사가 되겠다고 하기에 할머니가 “간호사 그거 별로 안좋다, 차라리 현모양처가 되라”고해서 그러겠다고 했었지. 지금 보면 우린 모두 그대로 된 거야. 너무 신기하지 않니? 할머닌 가끔 그 생각을 하며 웃었는데…

보미산 가는 길에 부용중학교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보건진료소가 들어서서 부용중학교 출신이 부산할머니가 못내 아쉬워하더구나.

전주를 거쳐 남원으로. 광한루 근처의 ‘새집추어탕’ 집에서 유명한 남원의 추어탕을 먹고 광한루를 돌아봤지.

그 다음엔 순천만 생태공원. 여긴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곳인데 좋은 곳이더구나. 자연과 생태와 바다와 만, 그리고 천체에 대한 공부를 하기에 좋은 곳이어서 내년에 한국에 오면, 너희들을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단다. 아직은 네가 어린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주 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또 어릴 때부터 기억 속에 저장해두면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밤늦게 부산에 도착했단다.


30년이 넘는 교직생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승진할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질환으로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부산할머니, 아리야, 그게 바로 할머니의 바로 아래 동생이란다. 너처럼 어린시절도 있었고, 또 꿈도 많았던 부산할머니, 평생을 교직에 바치고 이젠 영광과 보람으로 빛나야할 시간인데... 몸이 불편해진 상태에서 어린시절에 함께 보낸 고향집, 옛학교, 옛동산... 을 돌아보고 싶다고해서 함께 떠난 여행. 할머닌 언니로서 정말 가슴이 미어졌단다. 




피로를 풀 겨를도 없이 다음날 아침에 할머닌 안양집으로 올라왔지.

이번 여행은 부산할머니의 몸이 불편한 부산할머니가 옛고향을 둘러보고 싶어해서 한 여행이라서 어딘가 모르게 할머니의 마음에 베인 말 못할 걱정으로 슬픔이 깃들어 있는 추억여행이란다.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도 할머닌 새로 태어날 네 동생의 이름을 생각했지.

아, 그런데 남원추어탕집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주머니에서 핸폰이 물속으로 퐁당. 안양에 도착하자마자 AS센터에 맡겨진 상태. 그래서 지금은 불통 중!

돌아오니 역시 일이 산더미. 할머닌 오나가나, 어제나 오늘이나 늘 일 투성이. ^*^

또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래도 네가 보고 싶다 아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