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564-에프터 새터데이 그리고 일등!

천마리학 2010. 6. 8. 06:58

     할머니랑 아리랑 564

 

*2010년 4월 12일 월요일-에프터 새터데이 그리고 일등!

 

 

 

책읽기를 엄청 좋아하는 아리가 요즘은 잠시 책에서 멀어지고 대신 퍼즐 맞추기와 비디오 보기에 빠졌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할머니랑 침대에 앉아서 잠깐 보는 책, ‘블루(Blue`s backyard'인데 그 책에는 봄 여름 가을과 겨울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고 색칠을 하게 되어있다. 몇 번 반복하다보니 다 시들하고 그 중에서 특히 ’미로찾기‘만을 즐겨서 반복하는 페이지라서 할머니와 함께 ’미로찾기‘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

미로를 따라 샌들, 안경, 달팽이, 쥬스, 우산 등이 있는 곳을 따라가는 것이고 마지막에 비치로 나가는 길이 있다.

 

그 다음, 비디오를 본다.

“아이 원트 워치 엘리스, 아이 라이크 엘리스!” 혹은

“아이 라이크 몬스터, 아이 원트 몬스터!” 해가며 비디오 보기를 조른다. 스스로 리와인드 시키고 플레이도 시킨다.

만약 플레이를 시켰는데 중간이면

“아이 라이크 처음부터!” 하고는 리와인드를 시킨 다음 입이 해벙그러져서 처음부터 보기 시작한다.

 

 

 

 

일요일이라서 멋진 외식을 하려고 다운타운으로 가는길. 베이 스트리트 콘도 주변의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걸어가는데,

담장을 보고 그냥 지나갈 리가 없는 아리.

 

 

 

 

 

비디오 워치가 끝나면 베게에 머리를 대자마자

“할머니, 이야기!” 한다.

"한국말로."

"할머니, 이얘기 해 주쎄요오~"

이그, 한국말 가르치기 힘들다^*^.

자꾸만 한국말을 강요해서 행여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오히려 한국말을 싫어하면 어쩌나 등등의 염려가 되지만, 하여튼 요령껏, 시시때때로 시도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 해줄까?”

“으음~ 도깨비 이야기!” 혹은 “몬스터!”……

요즘은 “좋은 고앙이(고양이를 그렇게 발음한다) 앤 나쁜 고앙이!”

그리고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든다. 이것이 아리가 잠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요즘은 토요일을 기다린다.

토요일이 되면 스위밍 풀에 가는 것과 테리 훡쓰 공원에 가는 것을 미리미리 약속하곤 한다. 그리고는 매일아침 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할머니, 투데이 웟 데이?’하고 묻거나 ‘투데이, 세터데이?’ 하고 묻기도 한다.

그렇다고 프리스쿨에 가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프리스쿨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매일아침, 엄마와 경쟁한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메고… 이렇게 먼저 끝내는 것이 아침마다 일어나는 엄마와 아리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전쟁이다.

아침시간에도 제 책상에 앉아 퍼즐을 맞추느라고 밥도 먹지 않으려고 하고 프리스쿨에 갈 준비도 늦어져서 늘 엄마와 할머니의 애를 태우기 때문인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일등 하자!’고 부추키곤 한다.

어쩌다가 엄마가 먼저 준비 완료하면 제가 늑장부린 것 생각 안하고 엄마가 일등했다고 떼를 쓰며 기어코 엄마의 등에서 가방을 벗겨내거나 겉옷을 벗게 한 다음 제가 옷 입고 가방 메고 슈즈신고....를 끝마치고는 일등!하고 소리친다.

삼일 전부터 할머니가 아리를 달래려고 빈 가방을 메어줬더니, 그때부터 빈 가방을 메고 나선다.

 

 

 

 

 

아빠의 표정이 펴졌다. 조금 전에도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지 순간포착일 뿐~

 할머니가 사진 찍는 것을 보고 잠시 멈춰 서 주었다.

아리는 앞서가는 할머니와 엄마에게 웨잇, 웨잇, 하고 소리치곤 한다.

길을 갈 때 우리식구 중의 누구라도 조금 떨어지면 큰일나는 아리,

웨이팅 훠러스! 소리치며 기어이 합류시키곤 한다.

 

 

 

 

현관에서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는데,

엄마가 먼저 하면 저도 빠질세라 따라 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제가 먼저 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다녀오옴습다방구!’하기도 한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로 갈 때 할머니가 엄마와 아리에게 ‘잘 다녀 오너라~’ ‘좋은 아침~’ ‘오늘도 좋은 하루!’ 하며 손을 흔드는데, 할머니가 몸을 숨기고 손과 다리만을 내놓고 흔들면서 인사한다. 그것이 재미있어서 아리도 되돌아서서 손과 발을 흔들며 답을 보낸다.

아리야, 이건 네 엄마가 너처럼 어렸을 때도 할머니가 했던 방식이란다. 네 엄마가 지금 너처럼 아파트의 복도 모퉁이를 돌아갈 때 할머니가 현관문 뒤에 숨어서 손과 다리만을 내놓고 흔들면 네 엄마도 얼른 되돌아서 손과 다리를 흔들어주고 가곤 했었지. 또 할머니가 한참 동안이나 손을 흔들어주고 서 있는 것을 아는 네 엄마는 1층으로 내려가 아파트 정문으로 향하면서도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곤 했지. 네 엄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아는 네 엄마는 가끔씩 길모퉁이 건물 뒤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빤짝 나타나서 그때까지 손 흔들고 서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행복하게 웃으며 마지막 손을 흔들며 가곤 했었지. 할머니도 그걸 아니까 꼭 네 엄마의 모습이 길모퉁이에서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지. 그렇게 서너 번씩 장난을 치기도 했단다.

그런데 요즘 너랑 엄마랑 아침마다 학교로 직장으로 떠나보내면서 그때와 비슷하게 반복하면서 할머니는 행복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