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552-수영장 사고

천마리학 2010. 5. 4. 23:48

     할머니랑 아리랑 552

 

*2010년 3월 13일 토요일-수영장 사고

 

 

오늘은 오전부터 비가 내렸다. 토요일이지만 엄마는 필라델피아 학회에서 발표할 준비 때문에 학교에 가고 아빠는 무라노 콘도의 페인트 때문에 가고. 그래서 하루 종일 할머니가 아리를 돌봐야 했다.

오전에 유튜브를 통해서 라이언 킹을 함께 보았다. 요즘 아리가 관심 갖고 있는 영화다. 점심때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2층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층의 로비와 정원에서 놀다가 콘도 주위를 한 바퀴 돌고 피자노바 앞을 지나가다가 피자를 먹자고 해서 피자를 먹었다. 거기서 아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키즈엔컴파니 데이케어에 다닐 때 함께 다녔던 아이인 모양인데 그쪽에서 우리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왔는데 나는 물론 아리도 잘 모르는지 건성이다. 요즘은 아리가 안보이더라고 했다. 그래서 유티의 데이케어로 옮겼다고 말해줬더니 거기가 최고 좋은 데이케어라고 했다. 길에서도 가끔 만나는 일이 있는데 상대방 부모들이 아리를 먼저 알아보곤 한다. 역시 우리 아리는 유명해.^*^

 

 

 

 

 

 

오후 다섯 시, 수영장에 갔다가 샤워할 때 처음으로 아리가 머리 감는 일을 순순히 따랐다. 수영장에 가서 샤워를 할 때마다 머리감기를 안 하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갈 때 마다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은 매번 지켜지지 않았다.

엊그제 갔을 때 마침 스파가 수리하느라고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서 수영장에서만 하고 나왔었다. 다른 날보다 좀 추웠다.

두 가지 사고를 쳤다.

하나는 샤워를 하다가 응까를 한 것이다. 일회용 수영팬티로 처리했다.

두 번 째 사고는 사우나실에서였다.

샤워 중에 여전히 머리감기를 하지 않으려고 악을 쓰고 울어대는 바람에 겨우 대충 끝내고 달달 떠는 아리랑 함께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다른 날도 따뜻하기 때문에 가끔 사우나실에서 물기를 닦고 옷을 입혔었다.

수영가방을 놓고 옷을 가지러 나오면서 손대지 말라고 당부하고 나와 옷장에서 옷을 꺼내는데 비명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봤더니 사우나의 화덕 위에 손을 댄 모양이다. 두 손 바닥을 펼쳐 들고 악을 쓰듯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살펴보았더니 다행이 많이 데지는 않고 단지 뜨거움을 느끼고 놀란 모양이었다. 빨갛지도 않았다. 그러나 울음은 강했다.

할머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리의 고통을 생각하며 속이 아팠다. 안고 나와서 수돗물에 찬물로 손을 식혀주었지만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다둑이고 달래어서 안심을 시켰더니 갈아 앉긴 했지만 놀램이 강했던지 계속 울먹인다.

“제발 할머니 말좀 들어야지, 할머니 말 안 들으니까 그렇잖아… 또 안들을 거야?”

“들을 거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아빠에게 손을 보이면서 다쳤다는 말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대충 넘어갔다. 그 순간 또 한 번 가슴이 서늘했다. 만약 손을 데였더라면 어떨 뻔 했을까? 아무리 예뻐하고 잘 보살피다가도 아차 한 순간의 실수로 다친다면 그 탓을 고스란히… 단 십 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만약 상처가 났더라면 보살피는 수고나 그 동안의 공은 사라지고 원망과 탓만 남을 것이다. 이게 부모가 아니고 할머니라는 약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휴우~

 

 

 

 

 

 

 

 

그런데 오늘을 수영장에 가고 싶으니까 가기 전부터 약속 하자고 손을 내밀며 먼저 선수를 치더니 정말 샤워할 때 할머니 품에 안겨서 조마조마 견디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언젠가 아기 때 한 번, 그 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오늘도 수영장에서 응까를 했다. 스파의 따뜻한 물속에 앉아있던 아리가 갑자기 심각하게 할머니 하고 부르는데 그 걱정스러운 표정에서 할머니는 단박 눈치를 챘다. 작은 소리로 응까 했어? 하니까 끄덕끄덕, 괜찮아 하고 안아 올리는데 할머니, 해피? 하는 것이다.

그러엄, 할머니 해피하지. 그랬더니 와이? 하고 묻는다. 응까는 괜찮은 거야. 더구나 우리 이쁜 할머니 손자가 응까 했으니까. 할머닌 아리를 사랑하잖아, 해줬더니 그제서야 마음을 펴고 웃는다.

안고 화장실까지 오는 도중에 컴백어게인? 하고 묻는다. 수영장에서 더 놀고 싶은 것이다. 그럼, 다시 올 거야. 대답해줬다. 화장실에서 처리를 한 다음 팬티를 빨아서 입혔더니 그제서야 환한 표정이 되어 다시 수영장으로 들어가자고 손을 잡아 끄는 아리.

한 마디! 아리의 응까는 아주 찰지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땐 할머니가 아리의 응까를  직접 손으로 집어들어 처리한다는 사실, 남들은 더럽다고 하겠지만 할머니닌 그렇지 않아. 우리 아리의 응까를 손으로 집을뿐만 아니가 가끔 이리저리 헤쳐가며 살펴보기도 하지. 혹시 우리 아리 뱃속이 불편하지 않은가? 혹시 무슨 나쁜 벌레라도 있을까? 해서. 이런 할머니의 마음, 아리는 모르지? ^*^.

 

그래도 오늘은 물속 계단의 손잡이 봉에 매달려 발을 벽에 대고 머리를 뒤로 젖혀 물속에 담그는 일까지 했다. 또 줄을 맨 튜브를 타고 할머니가 줄을 끌고 이쪽 끝까지 오기도 했다. 워낙 겁이 많고 또 물을 무서워하는 아리라서 이 정도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