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수필-오늘의 운세

천마리학 2010. 4. 6. 06:22

 

 

오늘의 운세 * 권 천 학

 

 

 

지난 13일, 아이티의 지진 발생뉴스를 보고 생전 남을 도울 줄 모르고 내 욕심만 채우며 살던 내가 마음이 동하여 성금을 보내기 위하여 인터넷 뱅킹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며칠 전까지 아무 일 없이 사용해오던 공인인증서의 비밀번호가 틀렸다고 나온다. 한 달 쯤 전에도 해킹을 당해 애를 먹었던 탓이라 덜컥하는 마음으로 거듭 하다 보니 보안카드 오류 3 회 이상 사용으로 사용 중지까지 당해버렸다.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은행 측에 문의를 했더니 자필로 작성한 신청서를 가지고 직접 영업점에 직접 가서 해지신청을 해야 하며, 해외의 경우 해외지점이나 지점이 없는 곳은 그곳 영사의 본인확인 공증서까지 첨부해야 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한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서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한국 측의 시스템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난감했다. 동시에 이래저래 나는 봉사도 하지 말라는 팔자인가보다 헛웃음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허탈해져 있는 사이 무심코 곁에 놓인 신문이 손에 잡혔고,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오늘의 운세’를 읽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금전유통이 막힌다’로 나와 있다.

이삼 일 걸려 해당서류 작성을 완료하여 오늘 우체국에 가서 발송까지 마쳤다. 그 일로 인해서 처음으로 혼자서 스트리트 카와 서브웨이를 타보기도 했고, 영사관도 가보고 우체국에 가서 부치는 일까지 해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또 ‘오늘의 운세’를 나도 모르게 들췄다. 첫날의 궤가 들어맞은 것이 신기해서였다. 그날의 운세는 ‘친구 형제와 의논하여 해결하라’ 이것도 맞다. 왜냐하면 은행제출 서류를 꾸미는 것도 그렇고 영사관을 처음으로 찾아가야 하는 일도 심지어 스트리트 카와 서브웨이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딸아이에게 묻고 의논해서 해결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운세’를 재미 삼아 읽는다지만 의외로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믿고 안 믿고는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일단은 한 번쯤 훑어보는 것이 바로 ‘오늘의 운세’란이 아닌가 한다. 많은 시간을 요하지도 않는다. 차 한 잔 가볍게 마신 셈 치면 된다.

 

 

 

 

 

 

 

 

이제 우편물이 도착할 무렵에 한국의 은행 담당자와 통화만 하면 되는 단계여서 다소 느긋한 중인데 딸아이가 불쑥 10불을 준다. 요즘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딸아이가 그날 의자를 중고로 팔아 받은 돈이라면서 이사준비로 온 가족이 고생하는데 엄마도 가족으로서 수고가 많으시니까 공평하게, 하고 웃으며 주기에 공돈 생겼네 하고 웃으며 받았다. 그날의 ‘오늘의 운세’는 ‘부수입이 생긴다’였다. 햐! 또 맞았다.

‘오늘의 운세’ 란에 나온 문귀들을 보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갖다 대면 어느 코에 걸리든 고춧가루 한 점이라고 얼쩍지근하게 연관 지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같은 날의 운세를 띠 별로 몇 개만 보자.

 

*쥐띠‘;상황을 잘 보고 판단하여 행동하라. 36세 되는 일 없으니 가벼운 산책을 즐겨라. 48년 활동범위를 넓히면 득. 60년 사고력이 떨어지니 휴식기를. 72년 상황을 잘보고 판단하여 행동하라. 84년 미소를 잃지 않으면 이룬다./

*호랑이띠‘;너무 큰 기대는 실망도 크다. 38년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50년 투자매매 매입에 금전운이 좋으나 망신 수 우의. 62년 자신을 너무 과시하면 불명예가 된다. 74년 구설수 조심. 86년 내 재물창고부터 지켜라./

*용띠;인내하면 도움을 받고 이루리라. 40년 상하관계에 좋은 유대를 가져라. 51년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어라. 64년 인간관계에서 심적 갈등을 겪는다. 76년 서광이 비치고 있다. 88년 오늘은 휴식하고 내일을 기약하라./

 

*돼지띠;과하면 모자람만 못한 것. 35년 들고 남을 적절히 하라. 47년 마음먹은 대로 안 되니 시간을 가져라. 59년 적절한 때를 노려라. 71년 인기가 떨어지니 사람관리에 신경을. 83년 마음의 수양이 곧 나의 발전이다.

 

어느 것 하나 해당되지 않는 사람 있을까?

게다가 같은 날의 운세 풀이 또한 신문마다 다르다. 그렇게 뜬구름 같거나 엉뚱하거나 간에 일단 운세란을 보는 것은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그날그날을 염려하거나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 알게 모르게 숨겨져 있을 것이다. 믿든 안 믿든 읽어봐서 손해 볼 일은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좋은 궤가 나왔으면 기분 좋게 한 번 웃으면 그만이고 좋지 않은 궤가 나오면 조심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운세’ 한번 볼까?

나의 ‘오늘의 운세’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도 조급함은 금물’. 지당한 말씀이다. 요즘 마감 기일이 다가오는데도 원고가 써지지 않아서 초조해져 전전긍긍하며 밤잠 못 이룰 때가 많으니. 어제 밤도 한 숨도 자지 않고 뜬눈으로 밝혔으니까. 이렇게 족집게처럼 맞아떨어지는 ‘오늘의 운세’ 믿고 그냥 느긋하게 써질 때까지 버텨? 하고 웃어버린다.

오늘도 차 한 잔 잘 마셨다! ^*^!

 

 

<2010년 1월 23일, 토, 토론토/1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