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나는 젖꼭지가 아픈 죄인이다!

천마리학 2011. 2. 21. 04:18

 

 

 

 

 

나는 젖꼭지가 아픈 죄인이다!

-굶주려 죽은 최 고은 시나리오 작가를 생각하며.

 

 

 

 

 

굶주려 죽다니.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풍요로 넘치는 비만의 시대에 굶주려 죽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설을 앞둔 2월 29일, 32세의 최 고은 시나리오 작가가 지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처음엔 ‘작가’라는 말에 소식에 귀가 쫑끗해졌다가, 며칠 동안을 먹지 못해 굶주린 시체로 발견됐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살갗이 서늘해지며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카메라가 그의 허술한 현관문 밖에 붙어있는 종이쪽지를 훑어나갔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비극을 적은 종이쪽지는 화면에서 사라졌지만, 먹먹하게 동통(疼痛)이 일던 가슴이 바늘로 찌르듯 아파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나도 모르게 식탁을 내려치며 한동안 안절부절, 꺽꺽거리다가 주루룩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죄인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죄인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죄인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이다. 공통점이라면 장르는 다르지만 글을 쓴다는 점. 굳이 갖다 붙이자면 나도 한때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상으로 쓰는 시’를 꿈꾸며 시나리오에 매달린 시절이 있었다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그와 나는 그의 작품명처럼 ‘젖꼭지가 닮았다’는 정도의 인연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토록 슬프다. 그래서 슬프다. 며칠이 지나도록 문득문득 눈물이 났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릿저릿, 젖꼭지가 아프다.

잘 산다고 부풀어있는 자본주의의 뒷골목에선 아직도 가난이 가시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가난이 소말리아나 북한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변에는 아직도 20 만 명이 넘는 걸식아동이 있고, 노숙자들이 늘어나고, 실업자가 늘어나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것들은 모두 피상적이었고, 남의 이야기였고,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했던가.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주려 죽다니. 굶주려서 지병(持病)을 다스리기는커녕 목숨까지 잃어야 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지금 내가 누리는 안온이 죄스럽고 또 죄스러웠다.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럴 수 있나. 아무리 부(富)의 분배가 불균등하다고 하지만 촉망받는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다니. 문학을 한답시고 내세우고, 굶주리지도 않고, 시시껄렁한 시 몇 줄에 거들먹대며 내가 이렇게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가.

 

 

5타수 무안타!

12분짜리 단편 영화 '격정 소나타'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가 스스로를 표현한 말이다. 좋은 영화 한편을 꿈꾸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젊음을 깎아서 견디려고 했을 것이다. 견디다 못해 끝내 죽음으로 내몰렸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창피함을 무릎 쓰고 본능적인 밥 구걸까지 하며 견뎌보려고 한 그 순간에도 그의 꿈은 좋은 영화 한편이었을 것이다. 그의 꿈은 ‘6타수 1안타’였을 것이다.

누구는 말할 것이다. 왜 바보처럼 굶어죽기까지 하느냐고. 죽기 전에 구걸이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고.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을 적당히 굴러 반들거리는 돌맹이가 된 우리네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자존심을 쉽게 저버릴 줄 아는 기성인들의 생각이다. 자존심을 가지고 글을 써보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새싹이었다. 새싹이어서 현실적응에 능숙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꿈을 향해서 가느다란 줄기를 뻗어가는 나팔꽃. 그러다보니 병도 몸도 쇠약해지고 결국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 사회가 내몰았고, 함께 숨 쉬며 사는 우리 모두가 내몬 것은 아닐까. 단독죄인은 아닐지언정 우리는 다 공범이다.

 

뉴스는 영화계의 구조적 모순을 들추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도 해명도 부족하다. 설령 자본주의를 들먹거렸다고 해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절망은 절망으로 여전히 내 가슴에 남을 터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가슴 아픈 나는, 우리는 잠시 또 그러고 말 것이다. 그것이 더 큰 절망일 수 있다.

우리가 비록 젖꼭지가 닮았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 촛불처럼 되살아난 그의 절망이 어느 구석엔가 매달려 어둠을 밝히고 있으리라는 기대로 그의 명복을 빈다.

 

<2011년 2월 18일 금 새벽2시><1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