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사주팔자, 그 해석불가의 운수풀이 * 권 천 학

천마리학 2010. 2. 25. 23:32

 

 

 

 

사주팔자, 그 해석불가의 운수풀이 * 권 천 학

 

 

 

근래 들어서도 ‘사주팔자’ ‘운세보기’ ‘작명’ 등의 이 메일들이 공격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음력설이 가까워지고 있음이 짐작케 한다. 화성을 연구하고 우주정거장을 설계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토정비결이나 운세보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들 삶이 결코 과학이나 의지나 능력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헤아려 짐작할 뿐이다.

나는 ‘사주팔자’나 ‘오늘의 운세’ 등을 믿지 않는다. 내가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살다 보니 그런 것들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하고 회의가 들기도 하면서 생긴 불신에서 비롯된 결론이다. 살아보니 나의 삶은 ‘나의 마음이 중심’이고 ‘내가 주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사주보기에 대한 에피소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초의 일이다. 그때도 어김없이 이 메일을 통한 ‘사주팔자보기’가 날아왔다. 그 중에는 무료사이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굴지 보험회사에서 회원들에게 고객서비스 차원으로 보내준 것도 있었다. 마침 한국의 집을 비워놓은 채 토론토에 살기 시작한 때여서 재미 삼아 열어보았다. 토론토에서 시작한 나의 새 삶이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하는 호기심에서였다. 생년월일을 적어 넣는 간단한 절차 후에 나온 나의 운세는 ‘4, 5월에는 문서 조심하고, 6, 7월에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금전손해를 볼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궤가 눈에 걸렸다. 마침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내가 없는 사이 한국의 집을 관리하는 일이며 이것저것 연락사항을 전달해주는 친구였다. 그날도 새해 인사 겸 무슨 연락사항을 나에게 전해준 다음 새로 시작한 사업이 어떻게 될지 걱정되어 운세를 봤더니 좋게 나와서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도 보험회사 제공 금년 운수에 대하여 농담처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한국에 나갔다. 뜻밖에도 국민의료보험조합에서 날아온 독촉장을 우편함에서 발견했다. 독촉장이라니. 몇 해 전부터 토론토에 오락가락 지내면서 영주권을 신청해놓고 있는 내내 매달 꼬박꼬박 의료보험이 통장에서 지불되어왔던 터라 내가 오히려 되돌려 받아야 할 텐데 독촉장이라니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고 알아보았더니 이게 웬일. 그 해 7월에 그 동안 초과 납부된 보험료 200만원 상당의 금액이 나에게 반환됐고, 그 후에 내가 잠시 한국에 다녀온 한두 달 동안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안내서를 보냈고, 그것을 내지 않아서 독촉장을 보낸 상황이었다. 내지 않은 보험료 독촉장은 내가 한국에 없었으니 그렇다 치고, 의료보험조합에서 통장 입금 시켰다는 반환금은 아무리 조회를 해봐도 없었다. 나도 나지만 의료보험조합에서도 이상해 했다. 조사해보니 나의 건물을 관리해주던 그 친구가 다른 통장을 만들어서 입금 받은 것을 나에겐 알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그 친구가 나의 세입자들로부터 천만 원에 가까운 월세도 받아쓴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그 동안 토론토에 있으면서 통장 입금해오던 몇몇 세입자들이 입금을 안 시키기에 그 친구에게 독촉을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었는데, 그때마다 독촉했다고 하던 그 친구가 세입자들로부터 직접 현찰로 받았던 것이다.

년 초에 대수롭잖게 보았던 사주가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금전적 손해를 보니 조심하라고? 금전적으로야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거래만 하지 않는다면 손해 볼 일이 없으니 조심은 하되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고, 문서 조심하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등기부등본만을 열심히 챙겼는데… 집 관리를 믿고 맡긴 사람이니 그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맞았을까.

 

 

 

 

 

 

아직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상태인데, 요사이 지진이 난 아이티를 돕는 성금을 보내기 위하여 인터넷 뱅킹을 시도하다가 보안카드의 비밀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용중지를 당했다. 그날 우연히 보게 된 나의 ‘오늘의 운세’가 또 다시 나를 묘하게 만든다. ‘금전유통이 막힌다’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믿지 않는다. 설사 믿는다 해도 깊이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내 인생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나’, 나의 생각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나 자신을 지켜보기도 한다. 정말 그렇게 될까? 하고.

나의 육십 평생 동안 딱 세 번 사주를 본 일이 있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던 해의 봄, 막간의 짤막한 휴가를 이용하여 마산에 사는 육촌 언니네 집에 갔다가 언니를 따라 간 일이 있다. 그 당시 마산 진해 지방에서 갑부로 꼽히던 언니네는 형부가 운수사업을 해서 부(富)를 일으켰다. 그런 걸 믿느냐고 하는 나의 질문에 ‘운수사업이야말로 운수에 달렸다’고 대답하는 언니는 몇 군데의 사주집을 단골로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마침 온 김에 네 사주도 보자 하며 강제로 끌다시피 했다. 사실 나도 호기심이 있었다.

언니를 칙사대접하며 맞이 한 그 사주장이는 먼저 나의 사주를 받아쓰고 한참을 책장을 넘기며 풀이를 하고나서 나에게 이름을 한자(漢字)로 써달라면서 백지를 내주었다. 그 다음엔 안상(案上)에 이마를 대게 하더니 나의 머리통을 이리저리 짚어보았다. 사주에 말로만 듣던 필상(筆狀) 두상(頭狀)까지 본 이른바 종합사주 끝에 나온 나의 운수는 ‘큰 건물의 주인이 된다’와 ‘남자였다면 약관에 장관까지 오를 사람’이었다.

 

 

 

 

 

 

 

두 번째는 결혼 직후였다. 역시 다른 어른들에게 묻혀 갔다. 익산에 살 때였는데 그 당시 유명했던 ‘배산 밑의 함씨’였다. 그 함씨는 한 달의 반은 배산 밑의 시골집에서 손님을 받고 나머지 반은 서울사무소에서 손님을 받을 만큼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명성 높은 함씨가 풀어낸 나의 사주는 ‘큰 인물이 될 자식을 낳겠다’와 ‘외국과 관련된 일을 하면 대성공할 운’이었다.

 

세 번째는 딸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순전히 내 의지로 간 첫 번째 기회였다. 딸아이의 학교성적이 톱 수준의 대학은 버거워도 중상 정도의 대학은 무난히 갈 수 있는 정도였는데 과 선택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서였다. 에미의 마음이랄까. 딸아이가 평생을 보람으로 일굴 직업선택을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적성검사의 결과나 학교의 조사결과도 있었지만 사주 즉 운명에 지워진 것까지 더하여 결정한다면 좀 더 완벽한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결과는 딸아이의 사주에 다른 사람에게는 한 개 있기도 드문 ‘관(冠)이 3개나 있다’였다. 그러나 그 후 그것이 곧 고3엄마의 초조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그런 쪽으로 전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살아오면서 나라고 왜 어려운 고비가 없었을까만 그때마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나 자신이지 사주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오히려 사주가 나 자신을 더욱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문마다 ‘오늘의 운세’가 있다. 실리게 된 것도 꽤 오래 된 일이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별로 보지 않았다. ‘오늘의 운수’가 처음 신문에 등장했을 때 으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때 혹은 지금도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앞서가는 지식과 소식을 전하는 진보적이어야 할 신문이 이런 것을 싣다니. 누가 이런 것을 읽을까?. 신문과는 맞지 않는 컨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신문이 잘못 선택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언젠가 한 조사에서 상당히 많은 독자들이 ‘오늘의 운세’를 제일 먼저 읽는다고 조사되었고, 그 후론 신문마다, 일간지이든 주간지이든 빠지지 않는 난이 되어버렸다. 물론 구독률을 높이기 위함임을 알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니까 따르는 것이리라.

 

나도 더러 재미 삼아 읽을 때가 있긴 하지만 언제나 귓등이다. 그 내용이 뜬구름 같거나 전혀 엉뚱할 때가 많아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또 같은 날 같은 띠의 풀이가 다 다르다. 그것을 따라잡기도 사주를 의지하고 싶은 우매한 인간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오늘의 운세’에 나오는 문귀들을 굳이 확대 해석하지 않고 보아도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의 모든 일상사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 내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결국은 자기자신의 입장에 맞추어 생각하여 믿게도 되고 믿다 보니 중독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예전에 점친 나의 사주대로 실행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직 죽지 않았고 살 날이 이 삼십 년은 남아있을 법하니 사는 날 까지 더 두고 봐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큰 건물의 주인?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 지하 1층과 지상 5층의 작은 건물이다. 그것을 큰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맞았고 작다고 생각하면 맞지 않는다. 또 그것이 큰 건물이어서 맞는다면 고작 그 정도의 건물을 ‘큰 건물’이라고 담긴 내 사주가 야속하다. 모를 일이긴 하지만 내가 더 이상 재물을 모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조막만한 그릇의 내 운명이 서글프다.

내가 큰 인물이 될 자식을 낳을 운?

그것도 지금은 알 수 없다. 이제 삼십 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딸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두고 볼 일이다. 따라서 ing, 진행형이다. 작년에 독도명칭변경을 막아낸 공로로 떠들썩했던 일을 친다면 그것 또한 불만스럽다. 고작 그 정도를 운명에 담진 않았을 테니까. 충실하게 직분을 이행하면서 열심히 임하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해내기를 기도할 뿐이다.

내가 외국과 관련 있는 일을 하면 대성공?

정말 내 운명이 그래선지 나는 늦은 나이에 이민자가 되어 타국생활을 시작했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또 나이 들어 시기야 늦은 건지 모르지만 앞으로 얼마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도 미지수이므로 이 대목도 ing, 진행형이다.

‘남자라면 약관에 장관자리까지 오를 사람’?

이건 이미 내 인생이 시대를 잘 못 타고 났음을, 돌려 말하면 여자팔자 치고 드세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그 나이를 훨씬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섰으니 끝나버린 예언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남자팔자 같은 여자팔자 타고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리더가 되고 날개를 달고 뻗어가는 세상이 되었으니 나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인간수명 또한 연장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당분간은 희망과 목표를 가져볼 만 하다. 게다가 권력 쪽으로 비유하면 그렇지만 내가 권력 쪽으로 나가지 않고 글 쓰는 사람이 되어 필(筆)을 잡았으니, 붓은 권력보다 강하다는 비유로 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큰 글을 써낼 수 있을지 그것이 나의 예언을 어느 정도 적중시키는 몫을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것 역시 ing, 진행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우리 인생에 대하여 ‘시작과 끝’은 없다. ‘시작과 끝’이라는 표현보다는 ‘흐름’의 한 부분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본다. 죽음도 곧 삶의 한 현상이거나 시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나의 사고를 나의 시에 투영시키기도 한다. 어떻튼,

그 짤막한 한 줄에 실린 글귀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첨단과학의 시대, 첨단의 뉴스를 이끄는 신문에서 뜬구름잡기 같은 운세란을 싣는 것, 그리고 여전히 그 글귀에 마음 흔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이러니 같은 이 현상에 대하여 단적으로 잘라 말해버리기에는 뭔가 무거움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하지만,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토록 오묘하고 예측 불허한 우리의 삶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으며 어찌 점 칠 수 있을 것인가? 크게 눈을 돌려 생각해보면 우리의 운명이나 운명을 실은 몸에는 우주의 본질이 흐를 것이다. 그래서 몸이 곧 작은 우주이다. 사주를 이용한 점이나 종교도 한계에 부딪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이나 운명에 작용하는 우주의 본질 때문일 것이다. 그 거대한 원리와 힘의 흐름을 어찌 작은 우리 인간의 눈과 마음으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저 현실에서 적당한 거리의 미래를 바라보며 충실하면 그것이 곧 우주의 본질에 궤를 같이 작용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 흐르고 있고 나는 흐르면서 우주의 본질을 통과하고 있고, 우주가 내 몸속에서 자라고 있고, 그리고 나는 우주의 한 부분을 이루면서 우주와의 합일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헤아리지 말라,

사주풀이, 헤아릴 수 없는 흐름의 한 가운데 우리가 지금 흐르고 있을 뿐이다.

 

<2010년 1월 26일, 화, 토론토에서 / 33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