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523-*12월 11일 금-챕터스와 PATH의 이곳저곳, 뻥튀기 예술

천마리학 2010. 1. 29. 11:26

 

 

 할머니랑 아리랑 523

 

*12월 11일 금-챕터스와 PATH의 이곳저곳, 뻥튀기 예술

 

할머니로서는 학교 가는 것도 포기하고 하루 온종일 아리를 보살펴야 하니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하루. 힘든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두어 달 전부터 시작된 요즘 허리와 등에 근육통이 낫질 않고 오히려 겨드랑이 부분까지 번져서 더욱 힘들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야 하거나 잠이 오지 않아서 일어나려고 할 때 그리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렵다. 저절로 비명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러나 그것 보다는 할머니가 지금 써야 할 원고가 더욱 할머니를 정신적으로 압박해서 어떤 땐 정말 온 신경이 화끈거릴 정도이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이 밀려나가고만 있다. 지금 코앞에 닥치고 있는 소소한 계획들과 함께 스위스 연말여행까지 있어서… 사실 스위스여행이 달갑지만은 않다. 여기까지 와선 이제 내년 초부터 시작해야지 하고 마리막 희망(?)을 핑계 삼고 있다. 어떻튼.

어떻튼 아리를 돌보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할머니로서 힘든 것을 제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한 인간을 성장시키는 일, 더구나 그것이 핏줄인 새끼를 기르는 일임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할머니 자신의 글 쓰는 일과 맞먹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글쓰기는 할머니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소원이기도 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렇다고 아리를 돌보는 일을 포기할 순 없지. 그래서.

그래서 오늘도 할머니 각오하고 아리와의 시간을 보낸단다.

아리, 알겠지?

모르면 알아야 한다. 알았지?

^*^

 

 

뻥튀기에 할머니가 새겨준 그림이랍니다.

예술이죠?

우리 할머닌 뭐든지 잘해요^*^

 

 

 

 

아빠의 7시 30분 출근에 이어 8시 30분, 엄마가 출근한 뒤에 집 정리와 아직도 덜 깬 아리과 할머니의 신체적 워밍 업, 아침 식사, 외출 준비 등.

그 사이에도 아리는 징글벨을 들려달라고 떼를 쓰며 할머니를 끌어다 컴 앞에 앉힌다.

“I need your lap."

요 깜찍한 녀석이 요즘은 컴 앞에 앉을 때나 책을 읽을 때, 놀이를 할 때, 심지어 식탁에 앉을 때도 할머니 무릎에 앉는다. 요즘 산타 클로스 팔아서 아리에게 빈 젖을 빨리는 일은 없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할머니의 젖꼭지가 아파서 아직도 그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상태이지만 이런 일로 때아닌 젖몸살을 앓게 되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어서 그 일을 그만 두게 한 산타 할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11시경, 집을 나섰다.

오늘 목적지는 ‘챕터스’와 ‘크리스마스 트리 보여주기’다.

영하 8도정도이지만 바람이 불어서 체감은 훨씬 낮아 마이너스 15도 정도로 느껴진다. 엄청 매섭게 싸늘해서 단단히 무장을 했는데도 빠꼼히 나온 아리의 볼이 염려가 돼서 프라스틱 커버를 씌웠다. 평소에 여간해서는 장갑과 머풀러를 하지 않는 할머니지만 오늘은 스트롤러를 밀기 위해서 처음으로 장갑을 꼈다.

웰링턴 스트리트로 들어서면서 어디를 먼저 갈까? 하고 아리에게 물었더니 아리의 대답은 단연 챕터스다. 역시 아리의 페이브릿 플레이스는 챕터스.

걷는 동안 두어 번 더 물었지만 아리는 단호하다.

빅 아리의 치과 앞을 지나가다가 안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캐씨와 눈이 마주쳤다. 캐씨가 수화기를 든 채 손을 들었고 할머니도 스트롤러를 한손으로 잡은 채 한 손을 흔들어 답을 보내고는 그냥 지나쳤다. 빨리 챕터스에 가는 일이 급해서다.

 

 

아이던노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얀말은 스위스에서 사촌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랍니다.

처음엔 화이트 홀쓰라고 부르더니 무슨 이유에선지 이름을 아리 스스로 '아이던노우'로 바꿨답니다.

 

 

 

 

역시 아리는 챕터스에 가면 날개를 단다. 마치 제 집에 온 것 마냥 스트롤러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명랑한 기분으로 활기차게 어린이 책이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I will right back 할머니.”

아리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 마다 할머니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브라운 베어 브라운 베어 웟두유 히어…”

큰소리로 책장을 넘겨가며 읽어내는 아리.

주위에 민망하긴 하면서도 아기라는 점을 내세워 겨우 무마하고 있는데 다행이 주위의 어른들은 책 읽는 일에 빠져 신경도 안 쓰거나 더러 바라보면서도 ‘베리 큣’하며 미소를 보내기도 하고, ‘노 프라브름’ ‘더즌 메럴’ 하고 할머니를 안심시켜준다.

 

요즘 여전히 반복 읽기다. 한 동안 오락가락 책을 읽고 나서는 또 다시 제 의자는 비워놓고 할머니 무릎으로 올라와 책을 펼쳐 들고 할머니더러 읽어달라고 한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면서도 계속 반복한다. 물론 아이에게 반복교육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지금이 아리에겐 그런 시기란 것을 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른들도 다 아는 이야기 예를 들면 춘향전이나 흥부놀부 등 다 익숙하게 아는 이야기를 해마다 반복해 즐기는 것과 같다.

오후 3시경.

이젠 크리스마스 트리 보러 가기.

그런데 아리가 두 번 피피를 자진해서 했는데 응까의 기색이 없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오늘 사흘 째, 데이케어에서도 응까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아빠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이츠 굿’ 했다. 말하자면 할머니가 힘들지 않아서 잘 됐다는 의미다. 할머니 생각은 ‘아니다 걱정이다 변비가 생길까봐’서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속마음은 같으리라.

 

 

자, 제 손등에 햇님을 올려놨씁니다아!

크리스마스 트리, 사과, 고양이, 세드 페이스, 깜짝 페이스...

할머니는 깜짝 페이스는 처음에 해피 페이스를 만들려고했는데

막상 만들고보니

뭉크의 그림 샤우팅(절규)같아서

깜짝 페이스로 이름을 바꿨답니다.

정말 그렇게 보이시나요?

 

 

 

 

 

킹스트리트에서 PATH로 들어섰다. 될수록 추운 날씨에 있는 일을 최단시간 단축시키기 위해서다. 에스카레터를 조심해서 붙들고 내려가는데 어떤 신사가 도와줄까요? 하기에 괜찮다고 했더니 곁에 따라오면서 끝까지 지켜보고는 다 내려오니까 ‘유아 웰 던!’하고 웃으며 멀어져갔다.

로이톰슨 홀까지 왔을 때다. 한 개의 계단 참이 있는 계단과 올라오는 에스카레터 밖에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곳이다. 보턴을 눌렀다. 경비원을 보낼 테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기다렸다. 이 삼 분 지나서도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행인들 속에 섞여오고 있던 한 한 손에 빈 캇트를 끌고 있는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서슴없이 보턴을 눌렀다. 그러더니 ‘여기 한 레이디가 스트롤러를 끌고 서있다.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역시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아줌마는 계단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그 순가, 역시 행인들 속에서 오고 있던 한 신사가 ‘도움이 필요합니까? 내려갈 건가요?’하고 계단 아래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쑥스럽게 그렇다고 했더니 한 계단 아래로 내려서서 서슴없이 스트롤러의 앞부분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그 아줌마는 오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었다. 신사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괜찮습니까?’하고 오히려 염려하며 묻던 그 신사가 계단을 다 내려가서 스트롤러를 안전하게 놓고는 다시 올라갔다.

아리는 그사이 잠이 들었다.

“땡큐 쏘우 마치!”

빠르게 올라가는 신사를 향해 기회를 놓칠세라 말했더니

“땡큐 쏘우 마치!”

너무나 고마워서 계단을 다 올라 선 신사를 향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마이 프레져”

그 신사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로이 톰슨 홀 쪽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자, 이번엔 페인트칠!

요즘 엄마가 이사준비로 이런 거 다 새로 하시거든요.

나도 엄마를 도와야지요. 엄마아들이니까요.

 

 

 

바로 이런 점이 다르다.

킹스트리트에서 처음 에스칼레터를 내려올 때 끝까지 지켜봐 주던 남자, 아무 말없이 요청도 없었는데 보턴을 눌러 여기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부인이 있다고 알려주는 아줌마, 내려가려고 하느냐고 물고는 서슴없이 스트롤러를 들어서 계단 아래까지 내려주고 간 신사.

아줌마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었고, 신사는 가던 방향이 다른 상태였다.

십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내가 받은 세 가지 친절사례. 이것이 바로 한국과 캐나다가 다른 점이라는 것과 이것이 따뜻한 세상임을 동시에 생각게 해준 일이다. 그 따뜻함에 추운날씨는 잊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흐뭇했다.

 

 

 

그런데 그런 제 마음도 모르고 할머니랑 엄마는 제가 붓만 들면 질색을 하셔요.

왜 그럴까요?

제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나 봐요.

심지어 우리 엄만 저더러

'가만히 있어주는 게 엄마 돕는 일이다'

하고 말씀하세요.

너무 심한 말씀이잖아요?

 

 

 

 

First Canadian Place를 거쳐 스코셔 뱅크가 있는 곳까지 거치면서 지하매장에 있는 GAP, Winners 등 스토어를 몇 군데 더터 오늘 저녁에 나눌 선물을 샀다. 아리의 실내화, 페트릭의 목도리, 그리고 나의 실내화. 하나의 액서서리는 미리 사놨다.

다시 앤드류 지하철역 근처의 스타벅스 커피숖 앞의 광장에 왔을 때 아리가 잠이 깨었다.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NEWS에 들려 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때문에 다른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아리와 함께 스타벅스 앞의 광장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정신을 차린 아리는 ‘아, CBC' 했다. 며칠 전에 갔던 CBC의 에트리움과 비슷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다시 로이톰슨 홀 쪽으로 가면서도 앤드류 스테이션을 지나칠 때, 그리고 로이톰슨 홀의 정원 옆 통로를 지날 때 아리는 ‘할머니 before I came here' 한다. 물론 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때도 한 번 갔던 곳을 꼭 짚어내는 것을 보면 아리의 기억력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녀석참!

그런데 로이톰슨 홀 옆 통로를 지난 땐 밖이 캄캄해서 정원쪽 유리가 어둠의 벽이 되어 내부의 모습을 잘 비쳐준다. 그래서 PATH는 또 하나의 지하세상이다. 추운 겨울이나 악천후가 그리 걱정이 되지 않는다.

아리는 그 어둠의 유리벽에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하나 둘, 하나 둘, 밀리터리 스타일~ 하면서 정글북에서의 코끼리 걸음을 흉내내며 유리에 비치느 제 모습을 보고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행인들이 미소를 머금거나 ‘큣’하고 한 마디씩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부인이 ‘아리?’하고 묻는다. ‘예쓰’하고 대답했고 그 부인은 아리에게 몇 마디 인사말을 던지고 지나갔지만 아리는 제 노는 일에 빠져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리 이름을 알다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익스큐즈미!’하고 조금 큰소리로 불렀더니 되돌아봤다.

 

 

 

그렇다고 그만 둘 제가 아니죠.

이번엔 제 친구 '아이던노우'까리 불러들였죠.

 

 

 

 

“How are you know for Ari's name?"

그랬더니 자기 아이도 키즈엔컴파니 데이케어에 다녀서 아리를 본 일이 있는데 요즘 안보이더라고 했다. 며칠 전부터 데이케어를 옮겼노라고 대답했더니 그러냐면서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곳에서도 아리를 아는 사람이 있다니, 우리 아리가 정말 유명인사구나^*^

그런데 웰링턴과 킹스트리트 사이의 공간에 와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놀고 있을 때였다. 아리가 갑자기 ‘할머니, 미쓰 캐런.’ 하면서 손가락으로 메트로 오피스 쪽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잘못 본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럼 부르지 그랬어? 했더니 수줍어하면서 망설이더니 미쓰 캐런에게 가보자고 할머니 손을 잡아끈다. 아닐 거라고, 지금쯤은 가버렸잖느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큰 소리로 ‘미쓰 개런, 미쓰 캐런~’하고 그쪽을 향하여 불렀다. 행인들이 지나보고 아리의 목소리는 지하세계의 메아리가 되어 조그맣게 울릴 뿐이다. 아리는 몹시 아쉬워하며 그쪽으로 가자고 조르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리가 데이케어를 옮긴 후 미쓰 캐런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5시 40분, 출산일을 앞 둔 미쓰 캐런이 근래에 자주 결근을 했던 터라 어쩌면 오늘도 결근을 했을 수도 있고 아마 출근을 했다면 지금쯤 데이케어에 있을 시간이다. 6시가 퇴근시간이니까. 아리가 열심히 동작을 하며 노래를 부를 때 누가 가르쳐줬어? 하고 물으면 꼭 미쓰 캐런 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마흐트 고모할머니 댁에서 사귄 제 여자친구들 어때요?

할머닌 저더러 프레이보이 같대요.

프레이보이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전 이 친구들이랑 재미있었답니다.

 

 

 

 

저녁 10시경, 마지막으로 엄마가 퇴근했다.

그 사이에 또 아리는 선생님이 되고 아빠와 할머니는 학생이 되어 아리의 지시대로 잠도 자고 음식도 먹고 놀이도 하고 아리선생님의 춤과 노래를 배웠다.

엄마가 돌아온 수 온가족이 레드와인을 마시면서 선물교환을 했다. 엄마아빠가 할머니에게 준 선물은 푹신푹신한 잠옷 가운이었다. 할머니는 아리에게 실내화, 엄마에게 귀걸이와 목걸이의 엑서서리 셑트, 아빠에겐 빨간색이 들어있는 체크무늬의 목도리. 집안은 어질러졌지만 왁자지껄 시끌벅적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의 행복타임이고  의 주인공은 바로 아리다!^*^

할머닌 정말 피곤했지만 정말 모든 것이 소중하고 고맙단다.

땡큐! 엄마와 아빠!

땡큐! 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