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혹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이유 권 천 학 (시인)
토론토로 이주한지 딱 일 년이 되었다. 그 동안 토론토의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 매주 한 편씩의 글이 나간다. 시, 수필, 칼럼. 또 Korean 이라는 캐나다 전 지역으로 배급되는 잡지엔 <권천학의 시가 있는 풍경>이 나간다. 이런 글들은 내가 쓰고자 하는 글들은 아니지만, 나의 게으름을 털어내는 중요한 소일거리이다. 게다가 토론토 내지 캐나다 사회와의 소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소일거리라 함은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따로 있다는 의미이다.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일이지만 역량부족인 나로선 이루어내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 놓지 않고 있다. 놓지 않고 있으면서 늘 미루고, 늘 숙고하다가 지금까지 오고 말았다. 물론 시를 쓰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의 본업은 시인이니까. 하지만 시가 마음먹는다고 써지는 것이 아니므로 그 또한 쉽지 않다. 나의 경우 시 창작은 그야말로 접신의 시간이어야 한다. 육즙(肉汁)이다. 피를 요구하고, 살아있는 정신을 요구하고, 특별한 감성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 시 쓰기는 내가 드라큘라가 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그 외의 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 중요하다. 그렇지만 무게를 어디다 두느냐 하는 문제다.
시사칼럼은 그때그때, 시사를 꿰뚫는 정확한 안목이나 판단, 그리고 온당한 의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쉽지가 않다. 애초부터 시사칼럼을 작정하고 쓴 것은 아니다.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 문학활동을 하면서 모 신문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일도 있고, 가끔 잡지나 신문사로부터 청탁을 받아 단발적으로 쓴 일이 있긴 하지만, 뜸한 일이고 주력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런데 이곳 토론토에서 신문에 수필을 내보내다 보니까 내용이 시사 쪽으로 맞춰지는 글도 있어서 신문사에서 자연 칼럼취급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기왕 나가는 글을 칼럼과 수필을 따로 쓰자는 것이다. 그래서 분류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분량이 될 때까지만 계속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어질지는 모르겠다. 지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저 생각만.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살이 있음이며, 그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사람들에게 나의 의견을 들려주고,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것이 곧 소통이다. 이 세상은 어차피 보이든 보이지 않던, 원하든 원하지 않던, 서로 연결되어있는 웹망이니까.
한 예로 근래에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곳의 한 사람이 내 블로그에 찾아왔다. 정말 예상치 않은 일이다. 그 동안 독자들로부터 여러 가지 의견을 받아도 보고 들어도 봤지만 대부분 현장에서의 일이고, 인터넷을 통한 소통도 있어보긴 했다. 그러나 이번 일처럼 가까운, 오래 전에 한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댓글을 받아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아니 처음 있는 일이다.
2년 전 내 시집을 보고 연락을 해온 사람이 있었다. 내가 사춘기 때 알았던 사람으로, 그때 그는 대학생이었다. 지금은 물리학 박사가 되어 교수로 지내다가 몇 년 전 퇴임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그 지방의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모 연구기관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거의 40년 만의 일이다. 그의 동생이 서울에 왔다가 어느 레스토랑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레스토랑 주인이 읽고 있는 시집의 저자 이름이 권 천 학, 혹시? 하고 옛일을 떠올려 지방에 있는 자기 형에게 말해준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때부터 다시 안부를 나누면서 지난 연말에는 서울에서 딸아이가 독도 명칭변경을 막아낸 공로로 수상하는 식장에 내가 정식으로 초대를 했고, 그는 부부동반으로 와 주었고 지금도 계속 소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어릴 적 살던 부용이라는 곳에 살던 사람으로부터 댓글을 받았다. 둘째 남동생과 동기동창이라고 한다. 아직은 확실히 모르지만 공직으로 러시아에 체류하고 있다고 하는 그는 우리집의 옛날 풍경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 집 정미소 앞에 노는 거위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그의 말이 나의 옛집을 더욱 선하게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내 셋째 동생과 동기동창이란 그는 옛고향인 ‘부용’의 친구들을 모아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면서 방문을 해달라는 초대까지 해주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야말로 ‘부용’의 옛집이 눈에 선했다. 너무나 좋다. 이래서 소통이란 좋은 것이다. 반가움에 대한 표현과 동시에, 소통의 장이 되어준 블로그에 그동안 미루어만 왔던 것에 나 나름의 해명을 겸해서 이 글을 써서 올린 다음 그가 알려준 카페도 방문해볼 생각이다.
사실 블로그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손자, 아리를 보살피면서 그 육아일기를 대신하는 <할머니랑 아리랑>만을 비교적 열심히 올려왔다. 그 외의 시나 수필, 특히 시의 경우 신작은 올리지 않는다. 도둑맞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시가 엉터리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 같이 나의 분신이다. 이미 발행된 시집 속에서 발췌해서 싣는다는 의미이다. 블러그 관리방법도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른다. 그저 글을 올리는 일 뿐인데도 때로는 버거웠다. 기왕 이곳에서 신문에 매주 글이 나가게 되었으니, 그 글들을 블로그에 올려 정리해두자는 생각을 늘 하면서도 미루어 오면서 요즘 겨우 이미 신문에 나갔던 글들을 올리면서 명맥을 잇고 있는 중이었다. 블로그에 ‘친구신청’이라는 항목이 있는 것도 최근에야 우연히 발견했다. 거기에 내가 블로그를 개설할 무렵부터 와있던 몇 건이 있었고, 그 중엔 전주에서 활동하는 후배문인의 이름도 올라있었는데 그것도 2009년 1월 1일의 일이었으니 그동안 묵묵부답인 나를 얼마나 서운해 했을까?. 내가 생각해도 미련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향해서 헛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늘 시간에 쫒기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디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던가? 내가 시간의 말을 잘 들어야지.
모든 글들이 대개 그렇지만 특히 칼럼은 때가 맞아야 한다. 그래야 시의적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진즉 했어야 하는 말들이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올리게 되어 순서가 뒤바뀐 셈이다. 뒤늦은 일이긴 하지만 순서가 어긋나더라도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최근의 핑계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영어학교의 여름방학만 되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써머 스쿨이 끝이 났다. 그러나 사실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나 스스로 예견하고 있었다. 또 다른 나의 계획이 있기도 하고, 또 딸아이가 오스트랄리아에서 돌아올 때까지는 손자를 돌보는 일이 전적으로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딸아이가 있건 없건 별 차이가 없음에도 나는 그걸 핑계거리로 삼고 있다. 그런데 마침 ‘부용’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댓글이 걸렸고, 나는 그동안 반복하면서도 지키지 못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되었다. 나에겐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댓글’인 셈이다.
거두절미하고, 앞으로는 대충 정리가 끝나면, 그때그때 쓴 글들을 미루지 말고 올릴 생각이다. 또다시 부지런을 떨어볼 요량이다. 내 블로그를 방문해주는 독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독자들이 방문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시의적절한 댓글’로 그런 계기가 되어준 ‘부용’의 그에게, 추억의 밑바닥에 갈아앉아 있던 ‘부용’을 떠올려준 그에게 다시 한 번 반가움과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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