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칼럼-얼마나 더 부끄러워야 할까? MBC 피디수첩을 보고

천마리학 2009. 8. 2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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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더 부끄러워야 할까?

                                                       -MBC의 PD수첩을 보고


                      권      천     학(시인)

 


 

2009년 6월2일에 방영된 MBC의 PD수첩 815회를 인터넷 매체를 통해 보면서 다른 나라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이려니 아니, 어느 후진국가의 이야기이거나 몇 십 년 전, 흑백영화시대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었으면 싶었다. 화면은 분명 컬러였지만 보는 마음도 펼쳐지는 내용도 흑백이었다.

시위, 시위, 시위…, 시위들과 맞서는 폭력, 폭력, 폭력…, 마치 우리나라는 시위와 폭력의 나라 같았다.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폭력이었고 유감스럽게도 폭력은 곧 공권력이었다.

5월 1일 노동절의 축제와, 촛불 시위와, 고노무현 대통령의 장례 및 추모행사… 등이 맞물려 국민과 정부의 대립된 시각이 예리하게 부딪치는 현장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시위대와 일반 국민들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훑어내는 경찰의 무모한 공권력은 외국 관광객이나 지체장애자, 길을 가던 행인, 여고생, 부녀자, 어린아이…들까지 싹쓸이로 잡아가고 두드려 패고, 심지어 지하철역의 입구를 틀어막아 승객들이 무더기로 볼모삼고, 저항하는 그들 앞에서 곤봉과 장대를 휘두르고 전경들의 광기를 부추기며 무술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해내었고, '사무라이 조'를 탄생시켰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곤봉에 맞아 피 흘리고, 악다구니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귀가 먹고, 경찰과 군중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길을 잃었다. 마치 전쟁 직전이거나 전쟁이 막 끝나 아직 뒷수습이 덜된 상황 같았다. 저러다가 정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어쩌려고? 솔직히 그런 생각까지 났다. 왜 저 지경이 되었을까? 몇 년 전 대통령 선거 때 경재부흥이란 희망에 표를 던진 우리 국민들이 가슴을 찧을 일이다. 경제 이전의 민생이 문제였다. 저런 식으로 경제가 일어설 수 있을까? 일어선다 한들 정말 국민들이 골고루 좋아지는 경제가 될까?

 

 

 

 

 

 

 

 

 

보고 있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오르고, 한숨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하는 또 한 가지, 그것은 전경들이었다. 아직 앳된 갓 스믈 전후의 젊은이들, 국가에게 국민의 의무를 바치기 위해서 학교를 휴학한 우리의 막내아들들이 그 무모한 폭력현장의 앞줄에 서서 돌진을 명령받고, 광기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훈련받은 개 같았고, 조종 끈에 매달려 손발 놀려 춤추는 목각인형들이었다.

왜 길을 막느냐? 이게 무슨 법에 저촉이 되느냐? 저항하는 사람들의 항의에 변변한 답조차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다가, 무조건 체포하라는 명령에 따라 로보캅으로 변신하는 그들, 폭력이 나쁜 줄 알고 있으면서, 민주주의와 폭력에 대한 현장실습에서 폭력의 구사만을 실습당하는 그들이 얼마나 난감하고 황당스러울까? 이건 단지 병정놀이가 아니다. 병정놀이라 해도 이런 불공평한 병정놀이는 바라지 않는다. 평화에 대한 이론 한 가지를 더 들을 수 있고, 민주주의의 방법 한 가지를 더 배울 수 있는 그 시간에 환각상태처럼 폭력만을 실습하다니, 저들이 내 아들들인데…

밀리고 맞으면서 항의하는 사람들, 얻어맞고 피 흘리는 저들도 내 아들들인데…,

저 일을 마치고 수도 간에 가서 핏자국 씻어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툭툭 먼지를 털고 돌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사무라이 조' 역시 아내와 자식을 둔 남편이고 아버지일 텐데, 돌아가 식탁에 앉아서 아내와 자식에게 어떻게 이야기 할까?

 

 

 

 

 

 

 

 

 

 

공권력은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 힘이다.

어른은 뒤따라오는 어린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는 지침이 되어야 한다.

시위도 할 수 있고 불평도 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국가에 대한 환상이 깨졌어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인데… "

무고하게 체포되어서 이틀간 구속되었던 여고생의 이 한 마디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찌 내 가슴 뿐이겠는가.

왜 우리의 막내아들들이 인간방패가 되어 욕먹고 돌을 맞아야하는가?

왜 우리의 남편들이 민주주의를 깨트리는 무력의 앞잡이가 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의 딸들이 국가에 대한 환상을 잊어버리고 울먹여야하는가?

왜 우리 어른들이 끝없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