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국민들을 뿔나게 하지 마세요
권 천 학(시인)
이상스럽게도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 ‘독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독재라니? 신문의 기사 제목으로도 ‘MB독재’라는 단어들이 버젓이 찍혀 나온다. 독재라니. 놀랍다. 독재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분명 후퇴한 것 아닌가? 간첩 색출에 혈안이 되고 용공, 반공을 부르짖던 시절이 아득하여 ‘독재’란 말도 아득한 줄 알았는데, 이북이나 이란 사태 등을 보면서 그 쪽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서너 사람만 모여 나라 이야기만 나오면 ‘독재’라는 말을 어렵잖게 들을 수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아니, 나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당내 정치나 정부운영은 그렇다 치고 MB가 추진하는 사업마다 국민들의 호응은커녕 적대적이 되고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인지 정치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대운하사업’이 그렇고, ‘4대강 살리기’가 그렇고, ‘롯데빌딩’건이 그렇고… ‘독재’한다는 말이 별 의미없이 나도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말이 나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심심찮게 들리는 ‘독재’라는 말, 예사롭게 주고받는 그 말이 예사롭지가 않고 심상찮은 조짐까지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아니라 나라걱정이 된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국민을 사랑하는 것이고
국민을 사랑하는 것은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지
국민들 위에 서거나 앞서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다.
어떻게 된 건지 대통령은 늘 혼자다. 발표되는 정책마다 비난이 뒤따르고, 추진하는 일마다 모두 외면한다. 대통령 혼자서 밀어붙인다. 소통이 없다. 그를 당선시킨 사람들조차 멀리 서버렸다. 정치와는 멀리서 그저 바라나 보고 듣고만 있는 처지인 나로서도 혼자인 대통령이 참 딱해 보일 때가 많다. 마치 한 세대쯤 전의 가부장적 가정의 무서운 아버지, 가족들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명령하고, 가족들은 그저 숨죽이며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그런 아버지. 아버지가 도박을 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아버지가 억지를 써도 그저 불평한 마디 못한다.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이다. 불통은 매우 위험하다. 요즘 그런 가정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그런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대단한 착각이다. 나라경영이 혼자 될 일이 절대 아니다. 비록 옳은 일이라 해도 호응이 있어야 힘이 나고 시너지가 생긴다. 호응이 있을 때 백지장도 맞잡게 되어 가벼운 법이다. 그런데 좋은 결과가 올지 그른 결과가 올지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일을 혼자의 소신으로 밀고 나가니 독단적이 되고, 소통이 안 되고 결국 ‘독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백지장이 찢어져버리게 되고 쫒겨나는 아버지가 된다면 비록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1150만명의 유권자들의 희망은 무엇보다도 경제부흥을 원해서였다. 다른 자질은 그만 두고라도 우선 경제 살리기가 급했다. 기업경영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국가경영도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록, 대통령으로는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를 밀었다. 그런데 당선 후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시작부터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는 비아냥 섞인 말들을 만들어내며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고, 경제상황은 악화일로였다. 경제문제는 비록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나, 우리가 그에게 기대했던 것은 아무데서도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기대와는 거리가 먼 일들만 계속 되었다. 비록 처음부터 삐거덕거리더라도, 나라경영이 기업경영과 달라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다소 염려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국민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의논하면서 이끌었더라면 국민들이 힘껏 대통령을 응원했을 것이다.
노랑색 무궁화
대운하 사업이 발표된 후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들끓자 4대강 살리기로 돌렸고, 끝끝내 대운하 사업을 안 한다는 발표를 분명히 해달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더니 결국은 뒤늦게 국론의 분열과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포기선언을 했다. 그러나 포기 선언 후에도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간의 불신과 불만이 얼마나 팽배했는가의 반증이다. 진즉 귀를 열었더라면 필요 없는 소모전은 없었을 것 아닌가. 아무리 소신 있는 일이라 해도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아놓고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큰 눈과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목과 어깨에 힘 들어간 근육이 없어야 한다.
4대강 살리기 역시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지금이라도 살리기인지 죽이기가 되는 것인지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해 본 후에 진행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포기했으니 다른 것은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식도 옳지 않다. ‘소통’을 말하고, ‘중도’를 내걸고, ‘포기선언‘을 했음에도 아직도 의구심을 갖는 국민들이 많은 것은 그동안 그만큼 불신을 키워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에야말로 무늬만 ’소통‘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라걱정을 함께 하는 ‘소통’이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국민들을 뿔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뿔 난 국민들의 뿔을 더 키우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한 스님이 낙동강을 도보여행하면서 쓴 글을 읽었다. 4대강 살리기의 모순을 지적하며 구구절절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자연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적극 찬성, 맞는 말이다. 현지 주민이나 현장만큼 중요한 증거는 없다. 탁상에서 하는 정치나 계산기로 두르려지는 수치로는 되지 않는다. 내 눈과 귀에 들어오는 이런 일들이 대통령 귀라고 안 들어갈 리가 없다.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고 시작한다면 다 들리고 보일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이다. 더 이상 국민을 뿔나게 해서는 안 된다.
<2009년 6월 29일 토론토에서>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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