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육아일기1-할머니랑 아리랑

417-할머니 돌아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천마리학 2009. 4. 29. 04:19

 

 

  할머니랑 아리랑 417

 

 

*1월 30일 금-할머니 돌아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아리, 안녕?

할머닌 이곳에서 설도 잘 보내고 바쁘긴 하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단다.

어제 스카잎을 할 때도 넌 함머니이 하고 다가오더니 이내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신통하게도 넌 딴 짓을 하고 있다가도 할머니가 노래 부르면 그 노래에 맞춰서 동작을 해 보이는 거야.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티브이를 보고 놀던 네가 산토끼 춤을 추어보이고.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넌 금새 우는 시늉, 손바닥에 엽서 쓰는 시늉, 그리고는 수리수리수리·····

기러기노래 춤을 추어보이지.

어떤 땐 할머니가 노느라고 정신이 없는 너의 관심을 끌려고 ‘아리, 배꼽 어디 있니? 응? 아리 배꼽? 어디 갔을까 아리 배꼽이···? 그러면 놀다가도 얼른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끌어올리고는 배꼽을 보여주는 건 여전해.

이쁜 우리 아리!

 

 

 

 

 

 

 

아리, 설 잘 쇠었니?

하긴 그 곳은 한국설을 잘 모르니까 조용하지만 그래도 네 엄마는 설을 잊지 않지.

이곳 왕할아버지와 왕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은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단다. 모두들 네 엄마아빠 그리고 너의 안부를 물어왔어.


그런데 할머닌 한 가지 고민이 생겼어.

이제 설도 쇠었으니까 돌아갈 채비를 하는 할머니가 2월3일 비행기표 예약했다고 말했지. 그 순간 왕할아버지랑 왕할머니의 실망하시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 왕할아버지께선 ‘뭐라고?’ 하셨고 왕할머닌 들고 계시던 숟가락을 탁 놓으시면서 ‘정말이야?’하시는 거였어.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살자. 그럴 수 없으면 봄이라도 보내고 가라는 게 왕할아버지의 말씀이셨어. 뜻밖의 반응에 할머닌 정말 깜짝 놀랐단다.

할머니가 안양집으로 돌아왔을 때 막네이모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는데 역시 토론토로 돌아가지 말라는 거였어. 꼭 가야한다면 기한을 늦추라는 거였어. 아리보고 싶어서 가야한다고 했더니 그 심정은 알지만 여기 가족들이 얼마나 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겠느냐면서 늦추라는 거였어. 그리고는 수시로 문자를 보내왔어. 늦추었느냐고.


정말 큰일이다. 할머닌 솔직히 말해서 여기도 있고 싶고 거기 가고 싶기도 해. 그래서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았어. 지난 연말 언제쯤 성대삼촌에게 할머니 돌아갈 비행기 표를 알아보게 했었거든.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아무런 답이 없어서 답답해졌어. 너도 할머니 성격 알지? 분명하지 않은 거 싫어하고 게으른 거 싫어하고··· 여행사로 알아보려다가 그래도 하고 다시 한 번 연락한 후에 해보자 하고 전화를 했지. 그리고 다시 알아봐주기로 했었는데 나중에 네 엄마가 비행기 표를 마일리지로 해결해버려서 비행기 표를 살 필요가 없어졌지.

그런데 알고 보니 성대삼촌의 대답이 늦었던 까닭은 왕할아버지께서 성대삼촌에게 할머니의 비행기 표를 늦출 수 있는 대로 늦추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야. 그래서 성대삼촌이 대답을 안 하고 여러 날을 보냈던 거야.


할머니 심정이 어떻겠니? 괴로운 심정 알겠지? 할머닌 가슴속으로 소리 안 나게 울었단다. 가족들의 마음이 고마워서, 그리고 가야하는 것이 서운해서····· 정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