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윤경남의 <성지의 향기>

천마리학 2007. 1. 26. 03:09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윤경남 포토에세이 <성지의 향기>를 읽고 (2006년 12월 7일 읽다)



지난 11월 23일 나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의 토론토에 왔다. 딸 아이의 출산예정일을 앞두고 온 이번 방문은 두 번째 방문이다. 물론 딸 아이의 출산이 가장 큰 일이긴 하지만 짬이 나면 온김에 캐나다의 겨울을, 그리고 겨울 나이아가라를 보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에 있을때 늘 미루기만 하는 독서를 할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도 있다. 나는 이상하게도 한국에 있을땐 이러저러한 일들에 휩쌓여 독서를 못하다가 외국에 나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지난 2004년인가, 몬트리올에 가 있을 때 정말 행복했었다. 그 여름에 난 40여권의 책을 읽고 돌아갔었으니까. 그것이 바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리라.


이번엔 토론토에 와서도 일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지만 그동안 알게 된 몇몇 사람들도 있고 또 이메일을 주고받은 몇몇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굳이 만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에게 손주가 생긴다는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남을 최소한으로 자제하고 있었다.

토론토에 온 후의 아직까지의 외출은 아기탄생을 앞두고 축하해주는 파티인 '베이비 샤워'의 초대에 응할 때였고, 그리고 만난 사람이 윤경남씨 내외이다. '베이비샤워'는 토론토대학의 로버츠도서관 아시아도서관의 동료직원들이 해주는 축하파티였다.

 

윤경남씨를 만나는 날, 윤경남씨는 바깥어른이신 민석홍장로님과 함께였고 우리는 만삭인 배를 안은 하나와 페트릭이 함께 했으니까 양가 가족모임이 된 셈이다.

윤경남씨는 이전에도 나에게 메일로 다녀온 여행지의 사진과 함께 글을 보내오기도 했었지만 실제로이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자리에서 주신 선물 중에 부끄러워하시면서 주신 것이 바로 그가 쓴 성지순례 포토에세이인 <성지의 향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속표지의 사인에 '윤경남, 민석홍 드림'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두분 돈독한 부부애와 함께 남다른 다정함이 마음을 끌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나는 평소에 기행문에 대해서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스쳐버릴 책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윤경남 씨의 정성스러움과 각별함에 대한 답례로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지의 향기>는 이번 토론토 방문에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 되었다.

 

<성지의 향기>는 필자 윤경남 씨가 이스라엘과 터키, 그리스를 거치면서 곳곳에 있는 성역과 기독교 유적들에 대해서 독실한 기독교인의 자세로 쓴 기행문이다.


나는 예수교인이 아닌데다 아직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제대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탐독해야겠다는 계획만 일찍 세워놓고 지금까지 미루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그가 방문한 성지 곳곳의 사진들과 함께 성지에 얽힌 종교적 사례들을 곁들여 놓은 기행문이어서 읽기도 수월했다. 읽는 동안 윤경남 씨는 깊은 기독교인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덕분에 필자의 기독교의 성지 순례 길을 따라 생소한 예수교 성지의 이모저모를 간략하게 훑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글과 사진을 통하여 기독교에 대하여,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지식을 얻게 되었다. 예수가 처형당하기까지의 14처의 역정이 있다는 것, 예수의 시신에서 피어난 레바논 삼나무, 은백양나무, 종려나무, 올리브를 맺는 감람나무를 비롯하여 일곱 가지의 식물이 주변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그 식물들이 그 지방 사람들에게 신앙심은 물론 생명의 양식이 되어주며, 식물이 인간과 함께 역사를 지켜오고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 그런 것들로 미루어 보건데 사람은 누구든 살고 있는 지역의 풍토와 기후 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즉 내가 늘 생각해오고 있는 '글로벌 풍수' 개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관심 있는 테마도 있었다. 예수에게 있었던 4명의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숙, 폴리캅 주교의 순교 등이 그것이다. 이미 나의 시에 썼던 롯의 아내에 대한 짤막한 언급도 있어서 새로웠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라는 예수의 말이 마음에 오래 맴돌았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물었을 때 예수가 대답하기를 율법책에 무엇이라고 적혀있는가? 반문했다. '네 마음을 다 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힘을 다 하고 네 생각을 다 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써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옳은 대답이니 그대로 실천하라 그러면 살 수 있다고 대답.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가 다시 대답하기를, 예루살램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중에 길에서 강도를 만나 얻어맞고 다친 사람이 길에 쓰러져있었는데 사제도 레위인도 못 본 척 지나갔으나 사마리아 사람만이 가엾게 여겨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자기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려가 쉬게 해 주고 간호해주었다면서 그가 바로 이웃이니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예수가 대답했다.(누가복음서 LK. 10;25~37)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그렇게 하라, 그렇게 하라.......


레위인 이야기와 폴리캅 주교의 순교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쓴 나의 시 <위풍당당>이 떠올랐다. 맨 처음 쓴 상태에서 수정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여리고로 가는 레위인이나'를 빼버렸었다. 생각난 김에 나이 시 <위풍당당>을 곁들여본다.


위풍당당  *  권천학


평화의 댐에 가면 평화를 지키는 대포가 위풍당당하다

살인을 막는다고 살인을 하는 사형제도가 철석같듯이

평화의 심장을 향해 조준되어있는 대포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의 뇌관을 겨누고 있는

총의 이념이 근엄하다

가장 조용한 침묵은 태풍의 중심에 산다?

물과 불이 함께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여리고로 가는 레위인이나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인 제사장처럼

위풍당당 저 대포, 마지막 순교의 자세일까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지

왜 평화가 올 수 없는지

평화의 댐에 가면 확실해진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경전에서 암시하는 내용을 예로 들고 오늘 날 교회의 잘못되어가는 점을 지적하면서 바로 잡기를 원하는 필자의 의견을 간간이 피력하는 부분에서는 그가 맹목적으로 믿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교회를 믿는 종교인이 아니며, 따라서 잘못 되어가는 교인들의 경향이 바로 잡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말하고 있어서, 윤경남 씨가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의식있는 교인이라는 것도 짐작케 해주었다. 그런 점은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기독교인들의 거슬리는 행동이나 경향에 대하여 같은 생각을 갖고있음을 알게 됐고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얕은 이론으로나마 다른 의견을 제기하고 있던 나와 같은 의견을 그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진들 중에는 그가 미리 나에게 보내주었던 사진들도 있었고, 빌립보 교회 터에 핀 들양귀비꽃은 내가 체코에 갔을 때 본 들양귀비 꽃을 떠올리게 했다. 나도 그때 들양귀비꽃을 사진에 담았었고 꽃잎을 따서 책갈피에 끼워 넣었었다. 이런 사소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기행문을 읽다가 만나는 작은 즐거움이리라.



 

.......................................<성지의 향기>에서 발췌한 지식들.

*골고다;‘해골’이라는 말로 라틴어로는 Calvary.

골고다 언덕에 고난의 길인 Via Dolorosa 는 1294년 예수가 유다 최고의회 기관에서 재판을 받고 로마 총독인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다음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Calvary 언덕을 오르는데 머물렀던 14곳을 춪아 순례를 시작하면서 1540년 프린치스꼬 회 수도자들이 '예수 십자가의 길'로 정했다. 빌라도의 뜰을 제 1처로 하여 묵상의 순례를 하면서 제 10처에서 제14처가 있는 성묘기념 성전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이  Via Dolorosa의 모형길은 우리나라의 경기도 광주에 있는 성지 천진암에도 만들어놓았다.

제 1처;빌라도의 뜰.

제 2처;

제 3처;십자가를 지고 가다 제일 처음 넘어진 곳. 쓰러진 예수의 모습.

제 4처;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마리아와 예수의 슬픈 모습.

제 5처;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모습을 보다 못해 십자가를 대신 져드린 곳.

제 6처;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손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린 곳.

예수가 벽에 손을 짚고 섰던 자욱.

제 7처;카톨릭 예능학교가 된 곳.

제 8처;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을 위로하신 곳.

제 9처;예수가 쓰러지신 곳.

제 10처;로마 병사가 예수의 옷을 벗겼던 곳. 시신에 향유를 바른 종부성사의 돌.

제 11처;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 못박힌 모습의 상.

제 12처;예수를 매단 십자가가 서 있던 곳.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조각상.

제 13처;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내려 놓은 곳. 성모마리아 상.

제 14처;예수가 묻힌 곳. 예수 부활 기념 성전.


* 예수의 시신에서 피어난 4가지 나무;

1), 썩지 않는 나무 레바논의 삼나무(Cidar, 성부의 상징)

2), 죽게 되는 나무 은백양나무(성자 상징)

3), 부활의 상징 피닉스와 같은 종려나무(성령 상징)

4), 추가된 감람나무 ; 예수의 주검에 바른 향유가 감람나무의 열매인 올리브이므로.


*통곡의 벽; 솔로몬이 야훼께서 거처하실 집, 예루살렘 성전(The Golden Gate)을 화려하게 지은 후 유다교-기독교-회교로 주인이 바뀔 때 마다 폐허와 재건을 거듭함. 이 성전의 서편 뜰에 있는 '통곡의 벽(The Wailling Wall)은 예루살렘의 제2성전이 파괴된 주후 70년 아브월 9일, 하얀 비들기가 이 성벽 위에 내려와 유대인들과 함께 울었고 그날 밤 성벽의 돌들도 슬픔의 눈물인 듯 밤세 이슬이 맺혀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통곡의 벽 왼편에는 남자들이 오른편에는 여자들이 탈무드의 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고 벽에 기대어 울기도 한다. 기도를 들어준다고 해서 돌틈에 소원이 적힌 쪽지들로 가득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Israel과 Palestine 사이의 An eye for an eye, a tooth for a tooth' 싸움.


* 아담의 묘 위에 세워진 십자가는 위의 4가지 나무로 만들어졌다.

* 성서시대부터 축복받은 7 가지 식물들;감람나무, 종려나무, 석류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주염나무, 보리와 밀(미가서 4;4)-번영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러 가지의 은유와 설화 간직.


* 율법의 종교를 복음의 종교로 개혁;

첫이적-나자렛 마을에서 20리 떨어진 가나(Canaaa)마을의 혼인잔치에 초대된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가 주인집 포도주 항아리가 바닥이 날 것 같아 이를 염려하며 아들 예수에게 말하자 ‘아직은 저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머니의 애틋한 눈길에 보답, 하인들에게 6동이의 물을 붓게 하고 그것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보임.


두번 째 이적; 갈릴리 서쪽 타부가에 오병이어(五甁二漁)의 기념성전이 있다. 다섯 개의 보리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 천 명의 무리들이 나누어먹고도 그 부스러기가 12광주리나 되었다.


세 번 째 이적; 사도 요한이 로마에서 드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으로 기름 가마에 던져졌을때 기름방울이 이슬로 변하면서 살아났다.


4번째 이적; 예언자 다니엘이 다리우스왕의 사자굴에 던져 넣었을 때 천사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4인의 마리아

1),성모마리아-예수의 어머니.

2),베다니아의 마리아-베다니아에 사는 예수의 친구 라자로의 여동생들(Mary and Martha of Bethany) 로 언니인 마르타는 늘 예수님을 대접한 음식준비에만 몰두하는 사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열심히 듣기만 한다. 마르타가 예수께 하소연을 하자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누가복음서 LK. 9;41)라고 대답했다. 그 몫이 다름을 의미한다.

 베다니아 마을의 한 집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집에 함께 갔을 때도 마르타는 부엌일을 돕기에 바빴고 마리아는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져와 예수의 발에 붓고 가지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린다. 그러자 그 집안에 향유냄새가 가득 찬다. 바로 마리아의 아름다운 향기다.


3), 막달라에 사는 마리아-예수가 부활하신 무덤에서 예수를 제일 먼저 만남 마리아(요한복음서 20;16)

4) 용서받은 죄 많은 마리아;(누가복음서 7;36) 예수는 베다니아의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장례일을 미리 준빟ㄴ 것으로 칭찬하셨으나 죄많은 마리아에겐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고만 말씀하셨다.

**성모마리아를 제외한 3명의 마리아를 동일인으로 보는 이론도 있다.


*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히브리시인의 노래를 베르디가 작곡)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시편 Paslms 137편)


 *사해(Dead Sea);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의 종작점. 일반 바다보다 염도가 7배 높아 소금 덩어리가 솜구름처럼 엉켜있고 물고기가 살지못하며 사람들의 피부병을 낫게 함. 수영을 못해도 둥둥 뜨므로 수영을 하다가 편히 떠서 쉬기도 한다.

예수의 조카 롯이 살던 소돔(Sodom)이 그들의 죄로 인해 하느님의 벌을 받아 유황불에 탈때 롯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말라고 한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사마리아 여인숙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묻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그때 예수가 대답하기를 율법책에 무엇이라고 적혀있는가? 반문하자

 '네 마음을 다 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힘을 다 하고 네 생각을 다 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써있습니다 하니 예수께서 옳은 대답이니 그대로 실천하라 그러면 살 수 있다고 대답.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고 묻자

예루살램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중에 길에서 강도를 만나 얻어맞고 다친 사람이 길에 쓰러져있었는데 사제도 레위인도 못 본 척 지나갔으나 사마리아 사람만이 가엾게 여겨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자기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려가 쉬게 해 주고 간호해줌. 누가 이웃인가?에 대한 예수의 대답.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누가복음서 LK. 10;25~37)


* 폴리캅 주교 화형;AD 115~156, 기독교 박해시절 총독 스티티누스 쿠아트라투스로부터 11명의 그리스도인이 처형당함. 옛 도시 서머나(지금은 이즈미르( Izmir)도시-이스탄불과 앙카라에 이어 터키의 3번 째 큰 해안 도시로 대서사시인 호머의 고향이기도 함)의 서머나교회(Smyrna Church)

*폴리캅주교 다음으로 순교의 순서를 기다리는 화가 레이몽 페레(프랑스)가 자신의 모습까지 그려져 있는 그림이 있는데 순교당한 그가 어떻게 순교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까지 그진 그림을 그렸을까? 이상해서 이메일로 그 점을 질문을 했더니 '순교당할 것을 미리 예견하여 그린 그림인데 그 그림처럼 그대로 순교 당했다'는 대답이 왔다.


*<성지의 향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친 김에 백과사전에서 찾은 내용들

*가롯 유다

별칭;이스가리옷에 사는 유다 [Iscariot, Judas,]라는 뜻으로, 가리옷 유다, 유다 라고도 한다.

요약 ;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 예수를 배반해 은전 서른 닢에 예수를 로마 병사에게 넘겨주었다.

가리옷 사람 유다의 배신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① 탐욕적이어서 제사장의 돈을 탐내어 예수를 팔았다는 설,

② 열성적으로 예수를 따르면서 예수의 신정왕국(神政王國)의 출현을 기대하였으나 그 기대가 어긋나자, 실망하여 스승을 배신했다는 설,

③ 악마가 그 속에서 역사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배반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설 등이다. 그런데 만일 유다가 자각적으로 배신했다면, 아마도 ②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그는 은전 서른 닢에 자기의 스승인 예수를 팔았다가 후회하고 자살하였다(마태오의 복음서 27:5).


*베드로-영어 피터(peter)의 라틴어로 '반석'이라는 의미.

그는 어부로서, 원래는 베싸이다에 살았으나, 예수의 공생활이 시작될 때쯤 결혼을 하여 가파르나움에 살았다. 《요한의 복음서》에 따르면, 시몬은 베타니아에서 예수를 만나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고 제자가 되었다. 한편, 공관복음(共觀福音)은 그 장소가 갈릴레아였다고 전한다. 어쨌든 성서에는 그가 출중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의 지도력은 여러 경우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제자들 전체를 대표하며, 제자들의 이름으로 '약삭빠른 종들'의 비유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다(루가 12:41). 또 예수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를 물었을 때, 메시아라고 선언한 것도 베드로였다(마태 16:16, 마르 8:29, 루가 9:20). 복음서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12제자를 열거할 때 베드로를 제일 앞에 둔다.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언한 첫번째 사도였고, 교회가 세워질 반석(그 이름 그대로)으로 선택되었다(마태 16:16∼19). 이 사실은 최후의 만찬석상에서도 확인되었다. 예수는 자신의 수난 때 세 번이나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하고, 부활 후 그에게 특별히 나타내 보였다고 한다.


흔히 수제자(首弟子)라고 일컫는다. 원래 이름은 '시몬(Simon)'이라는 그리스식 이름이었는데, 예수가 그에게 '케파(Cephas:반석이라는 뜻)'라는 아람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이름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 '페트로스'이다.


예수의 12제자 중 수제자(首弟子)라고 일컫는다. 예수 승천 후, 그리스도교의 주도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우고 네로의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로마의 초대 주교이자 제1대 교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