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Movember를 아세요?

천마리학 2022. 11. 24. 12:34

Movember를 아세요?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 15 Nov 2022 04:20 PM

 

 

권천학 시인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요즘 세상 쪽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이 귀를 시끄럽게 한다. 뭔가 잘못되어 삐걱거리는 단체들의 소식들, 정치판에서 흘러나오는 뒤틀린 소리들...  정치판 소리를 차치(且置)하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만 보더라도, 정리되지 않은 채 휘날리는 분분한 의견들, 자기주관이 제대로 서지 못한 채, 덩달아 흔들어대는 깃발아래 모여들어 또 다른 잡음을 만들어내는 등, 왜곡과 비난이 그야말로 귀를 씻어내고 싶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잡음들은 귀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산란하게 만든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조금만 더 멀리 보면, 쉽게 해결될 일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집착과 오판의 고집이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고 상처를 받는다. 칭찬이나 북돋움의 응원이 사라졌다. 독감 때문도 아니고 바이러스 때문도 아닌, 개인적인 욕심과 오판 때문이라는 사실이 더욱 착잡하게 만든다. 

날마다 서늘해져 겨울로 다가서는 계절, November,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따뜻한 마음, 따뜻한 말이 더욱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토론토의 한 기관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한 소식을 받았다.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모벰버Movember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모벰버(Movember)!

남성들의 상징인 콧수염, moustache와 11월을 의미하는 November의 합성어로, 남성의 건강을 염려하고 남성질환에 대한 인식을 환기, 확산시키기 위하여 11월 한 달 동안 벌이는 글로벌 캠페인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보내온 사진 속에는 중년여성인 그 친구가 자신과 같은 계열의 기관에서 일하는 3명의 동료들과 환하게 웃는 삭발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기이하게도 모두 콧수염을 달고 있었다. 

오똑한 콧날, 깊고 큰 눈동자들...... 캐네디언이라서 자연스럽게 풍기는 서구적 용모가 비록 머리는 깎았어도 예쁘고 애교스러웠다. 젊어 한 때 머리를 깎았던 나의 한 시절을 떠오르게도 했다.

 

나는 한 때 머리를 삭발했었다. 영화배우 고 강수연씨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1989)’에서 삭발한 것이 화제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단순히 편리함과 패션으로 깎았었다. 참 편하고 수월했다. 지방의 세미나에 갔을 때도 시골 산사(山寺)나 농촌에 갔을 때도 번거로움 없이 어디에서든 물만 있으면 쉽게 머리를 감고 툭툭 털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 토론토의 지인들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웬 콧수염? 궁금증의 안테나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핑크리본이 대표적인 여성 질환인 유방암환자를 지원하는 캠페인의 상징이듯이, 남성의 질환을 지원하는 글로벌 캠페인 ‘Movember!’ 지인의 삭발은 그 캠페인에 동참하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이 캠페인은 남녀불문, 누구라도 뜻이 있으면 동참할 수 있다. 11월 한 달 동안 남자들은 면도를 하지 않고, 여자들은 콧수염을 붙인 사진을 찍어 주변에 그 뜻을 알림으로써 확산시키고, 관심과 응원은 물론, 남성의 건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이른 바 남성운동인 셈이다. 나의 지인이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환자를 돕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얼음물 샤워), 결핵아동 및 아동병원을 후원하는 모금운동, 파킨슨병 환자 위한 기금모음, 암 퇴치 기금 마련을 위해 달린 '희망의 마라톤'의 주인공, 캐나다의 아름다운 청년 테리 폭스(Terry Fox)......  
캠페인으로 모아진 돈은 환자들을 돕고, 치료를 위한 신약개발에 쓰인다.

 

이 운동은 2003년 경에 호주의 청년들이 시작한 작은 모임에서 오늘에 이르렀고 지금은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이다.  

남성의 대표적 질환인 고환암, 전립선암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데다 그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말 못한 채 숨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것도 생각 못한 부분이었다.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세상의 반을 채우고 있는 남성, 나머지 절반의 여성이 그들의 무거운 어깨를 잠시라도 가볍게 토닥여주는 마음의 여유, 그 여유를 보여준 지인의 삭발은 매우 의미 있는 삭발이었다. 마음이 훈훈해졌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온갖 잡소리들은 일제히 물럿거라!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Movember! 
11월의 서늘함을 뜨겁게 달구어주는 모닥불이었다.

 

https://www.koreatimes.net/ArticleViewer/Article/149598